졸업으로 가는 길(2)

실은 아직도 그 과정인 것이 함정

by Siho

무사히 비행기는 런던에 도착했다.

12월 말이 다가오는 것을 눈으로, 공기로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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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무드로!

런던은 이곳 저곳, 거리며 상점, 호텔들이 트리와 붉은 미슬토 장식들로 휘황찬란했다. 그래! 내가 요걸 보려고 런던엘 들렀지 :)


딱 하루의 낭만이지만, (내일 랭커스터로 가는 버스를 탈 거니까!) 그리고 긴 비행탓에 발도 다리도 부었지만!

언제 다시 또 보랴 싶어서 밤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다음 날, 나는 플릭스버스에 오른다. 기차 멤버쉽이 끝나서 기차 삯도 거의 100파운드에 육박하는데다 일전에 타본 플릭스버스의 경험이 딱히 나쁘지 않았어서. 그리고 학교에 바로 똑 떨궈주니 이번 졸업주간동안 신세를 져야 하는 포닥 권 선배의 집에도 가기 편하므로.


아아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늘 널널하던 플릭스 버스는 오늘따라 다국적 승객들로 아주 꽉꽉 채워져 있는데, 몸에서 나는 냄새는 차치하고라도 들고 탄 음식들에서 풍기는 그 인스턴트 향신료 냄새와... 바로 내 뒷 자리에 앉은 한 승객의 입냄새가 나를 기절하게 만들었다. 말 그래도 정말 기절 하고만 싶었다. 닭장 처럼 꽉꽉 들어찬 사람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전화 통화 혹은 틱톡을 시청하고.


냄새 공격 + 소음 공해 + 좁은 자리 에 나는 거의 공황이 올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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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려줘요 플릭스...


얇디 얇은 니트의 터틀넥을 한껏 올려 덮어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으... 장장 여섯시간 반을 이렇게 가야 한다니 벌써부터 까마득 하다. 다시는, 다시는 플릭스 버스를 타지 않으리 다짐에 또 다짐을 하며. 중간에 정거장마다 내려서 나는 두뇌와 폐를 정화했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면 흡연자들이 또 거리를 점거하고 담배를 뻑뻑 피워대시는 통에. 그야말로 수난이대였다. 여섯시간 반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기나긴 나의 수행의 시간은 5배속으로 흘려보내자. 나는 학교에 내려서 추억에 취할 새도 없이 바로 선배네 집에 가는 버스에 올랐다. 몸도 무겁고 뭔가 정신이 혼미하여 어서 짐을 풀고 씻고 쉬고만 싶었다.

덜덜덜덜 수트케이스를 끌고 선배네 집에 도착했다. (선배는 사실 나보다 어리지만 포닥이라는 존경스러운 위치에 계시기에 석사 쪼무래기인 나에게는 하늘 같을 수 밖에)


"언니, 온다고 너무 고생했어요. 뭐 좀 먹어야죠? "

아니라고 아니라고, 그냥 씻고 뒤집어 자기만 하면 된다고 손사래 치는 나에게 선배는 미리 준비한게 있다면서 오래걸리지도 않는다고 무언가를 휘딱 내어 놓는다.


IMG_8013.HEIC 무슨 퀴진에 온 줄 알았다. 호텔조차 이런 웰컴서비스는 없으리라


대충 차린다더니 이건... 고급버터향이 코끝을 스치는 살살살녹는 매쉬드포테이토에, 꼬숩기 짝이 없는 연어구이, 게다가 로켓에 발사믹 소스는 정말 못참지. 플러스 무심한듯 슬쩍 곁들임으로 놓인 와인이라니. 나는 아예 눈물이 다 왈칵 쏟아질 뻔 했다. 아직도 머리 속은 아까의 번잡한 버스속 마냥 엉키고 냄새나는 채로 와글와글 하고 있는데. 이 조용한 집에서 차분히 대접받는 저녁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나는 몇번이고 연거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무어라도 내가 해주고 가야지. 이런 은혜를 입고 입을 씻을 수는 없지. 선배는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편히 쉬다가만 가라면서 자리가 누추하다 했지만 나에겐 더 없는 호텔 스위트 룸이었다. 따끈한 물로 샤워를 하고 포삭한 선배 옷을 훔쳐(?)입은 나는 꿀잠 속으로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내일은 정말 중요한 두 사람을 만나야 하니까.


내가 이 책의 거의 첫 머리에 언급했던, 거리에 나와 함께 서서 눈물을 흘리며 음악을 들었던 로즈 언니.

참고: https://brunch.co.kr/@sihopocket/26


그리고 6개월을 우당탕탕 나와 하우스 메이트로 살아준 6명 중 가장 친했던 나의 단짝! NAS 를 만나기로 했다. 맞다. 나와 함께 오이김치를 담구었던 그 친구 이다.

참고: https://brunch.co.kr/@sihopocket/62


우선 ROZ언니를 만난다. 세상에, 딱 1년 만에. 랭커스터에 도착한 첫주의 그 들뜨고 이방인 같던, 두 손 한가득 마트에서 장 본 것들을 들고 거리에 멈춰 서서 음악을 듣던 박시호는 이제 ROZ언니가 어디에 있을지도 짐작이 간다.


1파운드 호스피스 채러티 숍. 우리는 이 곳에서 1파운드(1900원)짜리 기증된 옷들 중에서 보물을 골라내기를 좋아했었지. 오늘도 만나기로 한 시간인 3시보다 조금 일찍, 채러티숍엘 들러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말 마법이라도 쓴 것 처럼 ROZ언니가, 스웨터를 거울에 비춰보고 있다. 그럼 그렇지!!


"ROZ!!! Oh My Goodness!(로즈언니, 세상에!)"

"SIHO!!!!!!! How do you know I am here!(시호야!! 나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Of course I should know!(어떻게 모르겠어!)


우리는 부둥켜 안고 방방 뛰었다. 마치 어제도 만났던 것만 같은 그 얼굴이 너무나 반갑고, "논문이라니 까마득해..."를 말하며 손톱을 물어뜯던 1년 전의 불안한 시호와는 다른, 이제 곧 졸업장을 손에 쥘 내가 어느 새 되어 있는 것이 너무 편안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늘 그렇듯 애정하는 비건 레스토랑 "WHALE TALE"에서 만났다. 맛있는 후무스 샐러드와 함께 밀린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꺼내어 꼭꼭 씹어 먹었다. 좋은 사람은 언제 만나도 늘 편안한 법이다. 밀린 이야기를 10%도 못 꺼내 놓았는데 벌써 다음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랭커스터에서 차로 한시간 반 떨어진 곳에 사는 ROZ 언니도 이제 떠날 시간이 다가온다. 아쉽다... 그래도 이 멀리까지 나를 보러 와 준 것이 너무 감사하다.


"시호, 저기 벽에 걸린 거울 너무 예쁘지 않아?"

"어디...오, 정말 그렇네요!"


*이 WHALETALE 이라는 비건 카페는 늘 지역작가들의 작품으로 벽을 채워두곤 하는데, 회화작품 일 때도 있고, 사진이나 공예품 일때도 있다. 가격대가 reasonable한 편이라서 종종 팔리기도 하는 것 같다. 좋은 상생 모델이다.


IMG_8054.HEIC 우리가 식사하는 도중에도 하나가 팔렸다


거울 하나에 5만~12만 정도까지 있는데 이 목재들은 모두 리사이클, 그러니까 버려진 나무나 폐 가구를 이용해서 만들었다고 하니 더 의미가 크다. ROZ 언니는 거울들을 하나씩 유심히 보더니

"우리, 이거 하나씩 하자. 내가 사줄게!" 라며 나에게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으아니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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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8077.HEIC 나는 앞으로의 일정도 남았으니 조금 작은 걸 골랐다


"우리, 각자의 집에 이 거울이 걸려 있다면 거울을 통해서 서로의 집을 오갈 수도 있지 않을까?" 라며 마흔의 나와 쉬은의 언니는 연신 낄낄 거렸다. 아아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나는 내가 살던 집으로 향했다. 고맙게도 언니가 집 앞까지 태워주었다.

공원을 지나, 교회를 지나 꿈에 그리던 그리운 Owen st 가 보인다. NAS가 집으로 오는 중이라고 하니 숨어있다가 놀래켜줘야겠다. 하하.


꺅 소리를 질러버렸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나의 하우스 메이트 NAS와의, 무려 3개월 만의 만남이었다. 밀린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을테니 그간의 이 HOUSE OF HORROR에서 일어난 일을 이실직고해 바치라고 하자 나스는 거의 울듯 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술술술 풀어냈다.


"SIHO! 아마 넌 말해도 안 믿을 거야. 이 5인 정원의 집에 지금 몇명이 들어차 있는 줄 알아??"

"기껏해야 ...6명이겠지? 누군가 또 애인을 들여왓어?"

"한 명이면 말도 안해! 지금 9명이 득시글 댄다고! 새로 입주한 인도 여자애가 자기 가족을 데려다 살고 있어!!"

"뭐??"

"그리고 매튜는 당연히 여자친구를... 그리고 지 동생까지. 아이고 두야. SIHO, 너 정말 빨리 잘 나갔다. 나 좀 살려줘!!!!!"

"... Hell no..."


3개월 동안 집을 참 그리워 했었는데... 너무 빨리 한국으로 돌아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금 우울한 때도 있었는데 그 생각이 말!끔!히! 사라졌다. 미안해 NAS, 하지만 너무 다행이잖아... 수다를 떨다보니 다시 숙소(친구네 집)로 돌아갈 시간이다. 드디어 내일이 졸업식이다. 너무 늦게까지 놀지 말고 일찍 잠이 들어야지. 그런데 졸업식 시간이 저녁 4시? 인가. 좀 많이 늦다. 천천히 일어나서 사람같이 단장도 하고 해야지. 아아 드디어 졸업이구나!!!


그리운 마을 친구들을 오늘 다 만났으니 내일은 그리운 학교 친구들과 우리 이탈리아 엄마들을 만날 차례. 그러고 나면 랭커스터와도 한동안 다시 안녕이겠지. 이렇게나 숱한 만남, 이별, 그리고 또 만남. 언젠가 우리는 무엇인가가 되어, 혹은 어떤 것이 되지 않더라도 다시 또 만나질거야. 그렇기에 나는 오늘, 울지 않고 그대들을 꼭 안아주고 뒤돌아설 수 있었다. 곧 다시 만나, ROZ, 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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