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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반년, 겨우 반년

엊그제 입학했는데 졸업준비라니

by Siho


10월에 랭커스터에 왔으니 벌써 만 6개월이 지났다.

반년이나 이곳에 살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꽤 오래 있은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시차 적응 중인 것 같기도.


이제 다음 주면 모든 강의와 실습은 끝난다. 등록금을 그렇게 비싸게 받고서 고작 6개월 만에 수업이 끝나다니 한국의 대학원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영국 석사 과정이 돈을 조금 쉽게 번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 든다.


영국에 오면 그때 그때 많은 이야기를 쓰고, 릴스며 유튜브도 꾸준히 업로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리도리. 절대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민망하게도 유튜브는 랭커스터 소개 영상 하나만 올린 그대로이고, 릴스도 상반기에 열심히 올렸지만 언젠가부터 여력이 없다. 에세이 2개가 마감되는 4월이 지나면 논문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소식을 전하기가 조금 더 쉬워질까.


돌아봄의 시간엔 씹을 거리가 필요한 법, 정성스레 피시 앤 칩스를 튀겨와 키보드 옆에 모셔두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무슨 상관이지?)


자, 돌이켜 보자. 6개월이란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1) 다양한 사람-경험-시야

나, 41년 동안 41개국을 여행했는데. 도시로 치면 아마 100곳이 넘을 텐데. 꽤 많이 보고 듣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경험해 왔다고 생각했는데도 타국에서 여행자로서가 아닌 이방인으로서 '생활'이란 걸 할 때는 또 다른 이야기더라.


처음에 영국에 와서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매일 수업을 나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영어도 무엇도 아닌 사실 사람들의 냄새였다. 후각이 특별히 발달했다는 이야기를 내가 적었었던 것 같은데.



인도 사람, 중국 사람, 유럽 사람, 미국 사람... 각 나라 사람들 별로 특유의 냄새가 있다. 이제는 냄새로 어느 정도 출신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

머리가 띵할 정도로 유난히 (꽃향기) 향수를 많이 뿌리는 민족도 있는가 하면 잘 씻지 않는 민족도 있고, 글쎄, 나는 한국인이라 한국 사람의 냄새를 맡지 못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우리나라 사람의 냄새는 어떨까? 어릴 때 배웠던 것처럼 정말 마늘과 양파 냄새가 나는지 궁금하다. 한 가지 내가 느낀 것은 한국 사람들은 꽤 청결하다는 사실이다. 자주 씻고 머리에 떡이 질세라 열심히 머리를 감고, 매일 샤워하고 또 화장도 열심히 하고 선크림도 열심히 바른다.


반면 여기 사람들은 - 여자친구들은 화장도 하고 꾸밀 땐 또 열심히 꾸미는 것 같지만 불편하게 스스로를 유행에 껴 맞추거나 맞지 않는 것 같은 옷을 입거나 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러기보단 어쩌면 정말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이 편안해하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편인 듯.

물론 그게 조금 과하여 조금은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하는 순간도 있지만 피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성이 있어서 보기 좋아 보인다.


이렇게 압축적으로,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겪을 만한 일이 얼마나 있을까. 국제 레지던시, 국제 캠프, 해외 세미나 같은 것들을 여러 번 참여했었지만, 사실 그것은 명확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과의 짧은 기간적 관계라고 해야 할까, 서로 좋지 않은 일을 모습을 보일 일이 별로 없고, 특히나 레지던시 같은 경우 서로의 바운더리를 확실하게 지키는 예술가들끼리 모여서 그런지, 그만큼 부대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분위기가 주이다. 사실 레지던시에서 만났던 예술가들을 보면서 그 나라 사람들은 다 저럴 것이라고 넘겨짚어서는 안 될 일이다. 나 또한 누군가가 날 보면서 한국의 예술가는 저렇구나라고 느끼면 굉장히 부끄러울 것 같다. (안될 일)



2) 인권의 무게 (초상권)

한국과는 다소 달라서 조금 놀랐던 일이 있다면 아마 장애에 대한 인식과 사진, 즉 초상권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장애에 대한 이들의 생각과 관념에 대해서는 조만간 따로 이야기를 풀기로 하고 초상권문제가 나에게 몇 번 있었던 이슈이니 그 이야기를 꺼내보자.


워크숍이나 수업에 가면 나는 사진으로 기록을 많이 하는 편이다. 영국에서의 교육 시스템, 참여자들의 리액션등이 궁금하기도 하고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도 자료로 사용될 수 있기에 찍을 수 있는 한 많이 찍으려 한다. 그런데 두 번 정도, 강하게 제지당한 일이 있었다. 장애인 극단의 공연을 보고 나서 관객과의 피드백시간이었다. 피드백들이 하나하나 감동적이라 무심코 영상을 찍고 있었는데 "승인하지 않은 영상을 찍는 일은 멈춰 주세요"라고 극단의 대표가 정색했다. 아, 민망해라. 당시에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그렇게 까지 세게 말해야 했나...'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이건 너무나 큰 나의 실수였다. 이놈의 기록병이 화근이다.


부끄럽지만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커뮤니티 퍼포먼스 수업의 일환으로 한 극장에서 65세 이상의 중, 장년 분들과 함께 연극수업을 하는데, 2주 뒤면 발표라 한 장면 한 장면의 캐치가 중요하다. 도저히 사람의 이름도 외우기가 어렵고 매 장면을 필기하는 것도 (영어니까) 어려워서 비디오 촬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문제는 우리 교수가 수업 시작 전 "제가 오늘 여러분의 수업 참여영상을 촬영할 건데요, 외부 유출용이 아닌 우리 학생들이 보고 공연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라고 공지를 한 것을 듣고 내가 안심을 한 것인데, 미리 공지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핸드폰으로 수업을 열심히 촬영했다. 그런데 쉬는 시간, 한 참여자분이 나에게 와서 말했다. "시호, 교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은 촬영에 대해 우리가 승인을 하지 않았는데, 어디에 쓰려고 찍는 거예요?" 아, 이런...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교수님이 다가왔다. "아, 시호는 저의 서브 역할로 촬영하고 있는 거예요. 미리 공지 때 말씀드리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참여자는 다시 차를 마시러 사라졌다. 교수님이 나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시호. 이게 별거 아닐 수도 있는 거지만 이 분들은 사진을 찍힌다는 것이 굉장히 민감한 문제야. 어디에 어떻게 사용될지, 누가 이런 올라간 사진을 보고 스토킹을 할지, 숨어 살고 있는 사람을 사진 한 장으로 찾아와 해코지를 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진을 허락 없이 찍는 것에 굉장히 예민해"


아이고, 아는데 왜 또 그랬을까. 정말 민망하고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더불어 한국에서 참여하는 모임에서 동의 없이 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던 주최 측의 모습들이 생각났다. 아무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자료로 쓸 거라며 사진과 비디오를 마구 찍어가던 모습. 이제는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나도 어느 행사에선가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하니까 한번 더 부끄럽다. 이렇게 얼굴 붉어지며 또 배웠다.


3) 요! 리!

한 잡지에서 대학원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약 47% 학생들이 학교 생활동안 요리 실력이 늘었다고 한다. 그봐!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비싼 물가 탓에 어쩔 수 없이 하루 두 끼는 해 먹게 되는데, 세상에 한국에서도 이렇게 많이 요리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안 먹던 김치를 담그기까지 하고, 주변 친구들에게 김장을 알려주는 지경까지 되었으니 말 다한 듯.


또 배차김치 담금
대학 무가지 "학생의 돈은 중요해(Student money matters)"에 실린 내용


4) 당연하게도 '동료' 들.

감사하게도 지원한 대부분의 학교에 합격하고 난 후, 학교를 선택할 때 처음에는 학교 이름을 보다가 > 런던을 갈 것인가 외곽으로 갈 것인가 지역을 보다가> 교수를 보다가 > 결국에는 내가 만나게 될 동료들이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들이 모일 것인가? 의 지점에 다다랐을 때 이 학교를 골랐다.


York대학도 좋은 곳이지만 - 시어터 전공. Goldsmith - 아트 앤 이콜로지.. 작가 님들이 오시겠지?? 그렇게 크리틱만 하루 종일 한다던데 나는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사회와 환경, 정치변화를 위한 공연예술. 이 주제를 보고 모인 친구들이라면, 학교 생활 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현실에 대한 자각과 우리가 나아갈 길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 그리고 이 생각은 옳았다. 예상하지 못한 부분은 과 동기가 세 명뿐이라는 거였다... 하하하. 이 중 몇 명을 팀원으로 섭외할 응큼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어리거나, 너무 멀리 살거나, 이미 직업이 확고한 이 동기들은 그냥 '가족'이 되었다. 소규모 인원인 만큼 우리는 늘 자주 어울린다. 그리고 모두가 영국 사람인 터라 나 혼자만 외국인이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비 영어권 동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지만… 그래서 더 이 악물고 하게 된다. 나만 못 알아듣는데 나에게 맞출 수 없을 테니까.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우리 동기들 왼쪽부터 50대, 30대, 20대, 그리고 나 40대 (꺅!)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관심사의 사람들이 모였을까? 신기하다. 무사히 졸업할 때까지 우리 돈독하게 잘 뭉쳐 있기를.



5) 긍정적인 마인드

오전 08:00시. 아침 지하철에 오르면 누군가 한 대 칠 준비가 되어 있는 표정의 사람들만 서울에서 보다

눈이 마주치면 방긋 웃으며 "오늘 날씨 너무 좋다, 기분 어때?"를 묻는 사람들을 보는 게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됐다. 눈이 마주치면 '저거 왜 쳐다보고 난리야' 하고 불쾌해하는 게 아니라 입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는 게. 속마음이야 어땠건 웃는 얼굴을 보면서 기분이 나빠질 리가 없다. 그냥 나도 웃게 된다. 그러면 괜히 한마디 더 칭찬도 건네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이제 지나가는 사람에게 "당신 목도리 너무 멋진 것 같아요!"라고 눙칠 수도 있게 되었다.


이 한 껏 긍정적인 사람들에 대한 한 가지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

언젠가 시내에서 장을 보고 버스를 탔는데 내 앞자리 아저씨와 약간 술이 취한 듯한 조금은 나이 들어 보이는 아저씨가 갑자기 싸움이 붙은 거다. 버스는 출발도 못하고 그냥 서 있었다. (역시나 불평하는 승객도 없다)

여기도 싸움이라는 게 나는가 싶어서 그 둘을 흘끔흘끔 보고 있었는데, F로 시작하는 육두문자가 오가고 네가 먼저 나를 밀쳤네 네가 내 발을 밟아서 그랬네 하고 험악한 소리를 하더니, 술 취한 아저씨가 내려버렸다. 아마 버스기사가 주의를 준 것 같다.


자, 다음 장면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나라 같으면 한 명이 따라 내려가 주먹다짐을 하거나, 창문을 열고 쌍욕을 쏟아부어주었겠지??? 예상대로 내 앞에 앉은 아저씨가 창문을 연다. 그럼 그렇지. 이제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려나.

"Bye~(어쨌든 잘 가게)"

아니 이게 뭐야.


밖에서 술 취한 아저씨가 이 아저씨를 보더니 씩 웃는다. "Bye! (응 너도 잘 가라!)"

어유. 밍밍해. 조금은 자극적인 엔딩을 못내 기대한(?) 나는 황당했다. 방금 전까지 죽일 듯 서로를 밀치던 이 둘의 쿨하디 쿨한 인사라니. 모두를 두렵게 한 육탄전을 그냥 하나의 3분짜리 에피소드로 만들어 버린 두 분의 신사적 헤어짐(?)에 아주 놀라버렸다. 와... 저럴 수가 있나.

이런.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네.


느낌상 '잃은 것', 아니 잃은 것 이라기보다 포기한 것? 내려놓은 것?이라고 해 둘까. 아무튼 내려 둔 것 편은 다음 주로 미뤄야겠다. 적다 보니 얻은 것이 이리도 많아서 포기한 것은 생각이 안 날 정도였나 보다. 하지만 예상컨대 다음 주에 포기한 것, 내려놓은 것을 쓰면 이보다 더 많을 지도 모른다. 하하하.



*보태기

얻은 것 또 하나. 한편에 꽃을 키울 여유. 아니 식물연쇄살초마인 내가 꽃을 피워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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