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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 꾸역의 힘

[억척이와 이별하기]는 대차게 실패했다

by Siho
살면서 스스로 '너 정말 억척스럽구나' 하고 혀를 차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종종? 아니, 실은 꽤 많이.


- 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해야 할 때, 바로 들어가기 아까우니 유럽을 찍고 간다며 이삿짐을 대형 트렁크 2개에 넣어 끌고 다니며 유럽을 유랑한 일. (나중에 너무 힘들어 한 나라에서 한 번씩 한국으로 소포를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 같은 게, 이를 테면 5만 원 하는 재킷을 날씨 문제로 더 이상 입지 않아 배송비 2만 원을 내고 한국으로 보냈는데, 그 재킷은 한국에서 5만 원에 다시 살 수 있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순수한 바 To the 보 아닌가?... 한심 하기론 따를 자가 없다)


- 택시를 타면 만원, 버스를 네 번 갈아타면 5천 원 일 때, 5천 원을 절약하려 버스를 타고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강의 시간에 늦는 일 (다행히도 이제는 몸을 사리느라 이런 행위는 하지 않음)


-이고 지고 들고 입에 물고(?) 여행하는 일. 이제는 여행이 좀 단출해질 때도 됐는데 여행에서도 일을 놓지 못하는 성격 탓에 노트북 필수, 촬영해야 하니 고프로 장착, 사람 처럼 입어야 하니 각종 옷들과 신발, 삼각대 등등... 비행기가 지연되거나 하여 경유시간이 짧은데 다시 체크인을 하거나 해야 하는 경우에 다 다시 꺼내야 하는 전자기기들. 아, 언제쯤 럭셔리하게 지갑과 여권만 들고 여행해 볼 수 있나.


말하자면 끝도 없지만 작년 부로, 나는 이런 억척에 이별을 고했다. 아마 치앙마이 여행에서였던가? 너무 짐이 무거워 허리와 어깨가 몸에서 분리되어 나갈 것 같은 고통과 약 3개월간의 파스 떡칠, 물리치료, 침 치료 등의 후폭풍을 겪은 후로 내 인생에 억척은 더 이상 없을 예정이었다. '더 먹고 싶어도 덜어라.'' 더 사고 싶어도 참아라.' '여행 짐을 많이 가져가면 현지에서 지출이 줄겠지 하는 오산은 접어라(무조건 어차피 더 사게 되어있음)' 등등. 그러나 지방이들과 더불어 나와 퍽 오랜 시간 동거해 온 이 '억척이'와 이별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유학을 오면서 억척이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쌍둥이로- 두 배가 되었다.

해외 유학은 학비며 기숙사비, 생활비가 적잖이 든다. 그 중에서도 영국은 물가가 우리나라의 두 배에 육박하니... 지인들이 '생각보다 너 돈 많이 모았구나!' 라며 부러움 반 놀라움 반의 반응을 보일 때, 나는 내가 20대에 결혼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않)은 것과 30대에 할 줄 알았지만 또 안(못) 한 것과, 그렇게 마흔이 됐는데 결혼준비금과 웨딩홀, 하객 네임리스트, 일자까지 혼자 다 잡았는데 [예비 신랑]만 없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거 어차피 늦은 거 조금 더 늦어도 되지 않나? 그런데 공부는 더 늦어서는 곤란하지. 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떠나왔다보니 영국의 생활은 밝고, 찬란하고, 풍요로운 나날이기보다는 삶을 우선은 영위하고 보는 인컴 + 아웃컴 = 똔-똔의 평범한 삶 어디께를 자주 헤매었다.


읽은 분들 중에 더러는 이 상황에 공감할 수도, 더러는 '이 작자가 행복에 겨워 춤을 추는구나. 유난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대학원 커뮤니티 사무실에서 가끔 토마토 통조림이며 쌀 같은 것들을 지원받아 들고 오는, 학교 내 무료 식사 이벤트에 미적미적 줄을 서는, 외식은 한 달에 한두 번이 안 되는, 그런 중년 유학생인 것이다. 구구절절 속 아픈 이야기는 굳이 잘 안 적어서 그렇지... 그 와중에도 빛과 광명을 찾으려, 내가 한 선택의 의미를 다지려, 그리고 수많은 감사한 순간과 기회들을 기억하려 여기 이렇게 끼적일 뿐.


지난주 연재에 나의 유학으로 인해 잃은 것얻은 것을 생각해 본다고 했는데, 실은 그것보다 나의 억척스러움이 유난히 더 드러나 보였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그냥 인가 싶기도 했던 한 주 간이었기에 이 이 이야기를 먼저 적는다. 지난 주, 본디의 계산대로면 이 시기에 들어와야 하는 수입이 있는데 상대회사의 문제로 지급을 받는 일시가 계속 늦춰지면서 카드가 연체되고 한도가 깎이고, 학비는 못 내고 있었고, 기숙사비용 또한 내지 못해 독촉 메일이 화살처럼 매일 날아와 쌓였다. (다행히 지금은 해결되었다)


길지도 않았던 칠 일간, 늘 부풀어 있던 자존감이 바람이 실실 샌 풍선처럼 인상을 한 껏 찡그리며 쭈그러들었다. 그럼에도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불 필요한 상처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 잘 못이 아닌 이유로 생전 처음 겪는 카드 빚, 독촉 메일 같은 상황에 놓이는 스트레스를 나는 학업과 병행할 수 있는가? (아니).


누군가는 이런 상황쯤 되면 잠시 학업을 멈춘다거나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좌절하고 있는 나에게 억척이 1과 억척이 2가 어디선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속삭였다.


'시호야. 너 잘하는 거 있잖아. 겁나 억척스러운 거'

"뭐?"


누가 말하는 거지?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너 생활력 하나는 난 인정한다'

'잘하고 있어. 그냥 계속해. 꾸역꾸역'


잘하고 있다...

나는 그 말이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차곡차곡이라기엔 너무 피 말리고 고생스러웠던, 힘겨웠던 일주일이기에

꾸역 꾸역이 맞을 것이다.


내 적성(인지는 모르겠으나), 특기, 장점, 강점?

꾸역꾸역.


어찌 될지, 어디로 갈는지,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맞다고 느끼고 해도 되는지

어떤 것도 확답은 없지만

여전히 오늘도

꾸역꾸역 쓰고

꾸역꾸역 담아 둔다.




-

어쩌면 나는 아직 억척이들과 이별하지 못할 것 같다. 미안하지만 나의 안위를 위해 아직은 보내 줄 수 없다.

저기, 쿨하지 못해 미안해.


그런데 사실 쿨내 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는 어쩔수 없이 따뜻한 감정을 구석구석 숨김없이 가득 품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억척몬이니까.


굴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영어가 안 들려도 꾸역꾸역 적어보고

종업원이 나의 오더를 잘 못 알아듣고 이상한 메뉴를 가져다줘도 꾸역꾸역 먹고

그렇게 버티고 뻗대다 보면

졸업은 오겠지

JOY의 순간도 오겠지.



쓰다 보니

그동안 홀대한 나의 동반자 억척이들을 불러다

맛있는 그린 카레를 대접해 주고 싶어진다.



졸리고 피곤하지만

꾸역꾸역 냉장고 문을 열어 재료들을 꺼낸다.


기다려. 금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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