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성, 노을, 감나무, 하멜
이번에는 강진이다! 일단 2주살이를 하러 갑니다..
계획표는 이렇지만 원래 계획이라는게 바뀔려고 세우는거지. 암.
일단 탐조, 산책, 휴식이다.
아 글 쓸려니까 갑자기 하기 싫어져서 그냥 잘까 살짝 고민했지만
계획에도 있었네! 쓰고 자야지!
부산에서 3시간 반이 걸려서 출발하기 전에 뜸을 들였다.
오래 운전하는게 요즘 영 힘들어서.
근데 오는 길에 풍경이 너무 예뻐서 좋았다.
황금색 논을 만난 건에 대하여..
왜 이 시기에 논을 황금들녘이라고 하는지 알겠더라.
진짜 노랑이 아니라 황금이었다.
함양에서는 살짝 초록+노랑이었는데
지금은 노랑+적갈색이라고 해야할까
황금들녘을 보다니!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 강진에 가게 되다니!
산의 나무들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초록색 산에 노랑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린 듯이
노란빛이 조금씩 스며드는 계절이다.
점점 퍼져나가고 있다.
나는 가을을 좋아하나보다.
초록색, 빨간색, 노란색 알록달록 섞인 산이 좋다.
하루 중에서도 해질녘의 노란색 빛을 좋아한다.
대학생 때 사진수업 시간에 사진이 죄다 노랗다고
교수님께서는 싫어하셨지만
어쩌겠어, 난 좋은 걸.
나는 누리끼리하고 따듯한 색감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하루 중에서도 해질녘의 노란색 빛이 비춰질 때,
그때가 하루 중 가을인가보다.
그렇게 3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강진 청년마을 어나더랜드의 숙소 성하객잔
어나더랜드 숙소는 남상객잔, 성하객잔 두 곳이 있다.
남상객잔은 읍내에 있고
성하객잔은 읍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어서
고민해보고 고르라고 했지만
성하객잔 하기 너무 잘했다!
바로 앞에 병영성이 보이다니!
성벽 느낌 좋다..
부산에서는 금정산 위로 올라가야 보이는데
여기는 그냥 평지에 있다는 것도 신기하네.
금정산성과 병영성의 기능이 달랐던 거겠지..?
숙소에서 왼쪽 뷰
오른쪽 뷰
은행나무가 줄줄이 서 있는데
점점 노랑노랑 물들어가는 걸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뒷집에서 키우는 대추.
함양에서도 강진에서도
뒷집에서 대추를 키우네.
배롱님이 병영, 강진읍내까지 동네 한바퀴를 둘러 구경도 시켜주시고
가볼만한 곳들을 소개도 해주셨다.
강진읍 장날은 4일, 9일이라
4일(금)에 잠시 구경갈 예정.
엄청 규모가 커서 구경할게 많을 것 같다.
날씨가 추운데 따듯한 옷을 많이 안가져와서
장날에 사야할지도 모르겠다.
하나로마트가 축협에 하나 있고
파머스마켓이라고 하나 있는데
축협 하나로마트 구경 왔다.
온김에 장도 보고.
함양에서 재미를 붙인 것 중에 하나는
하나로마트의 로컬푸드 직매장인데
여기는 못생긴 호박을 할인해서 팔더라. 신기!
못난이 호박도 팔 수 있으니 좋구만.
이런 부산물 파는 것도 처음 봤다..
아 축협이라서 파는거구나!
동생이 이런 장기류 좋아하는데
집에 가기전에 몇개 사가볼까..
가는 길, 오는 길을 다르게 안내해주셨는데
오는 길에 아까 강진에 오면서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그 누리끼리한 노랑색 해질녘 빛이 벚꽃나무길을 비추는데
너무 예쁘고 그림 같았다.
30리 벚꽃길이라는데 벚꽃의 자리를 해질녘의 노란빛이 채워준 느낌.
숙소에 도착하니까 노을이 너무 예쁘게 지고 있었다.
노을 찍다가 만난 뒷집 멍뭉이들
조금씩 변하는 구름의 모양과
하늘의 색이 아름다웠다.
여기는 내 방.
이 방 저 방 노을이 어떤 모습인가 구경하다가
내 방 창문 밖에서 만난 고양이 가족.
내가 창문을 열 때마다
어른 고양이 한마리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고
아기 고양이는 뽀르르 차 밑으로 숨어버렸다.
이렇게 아름다운걸 건물 안에서만 보고 있었는데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밖으로 나섰다.
역시.. 이거 볼려고 시골 사는거지..
숙소에서 나와서 조금 걸었더니 이런 뷰를 볼 수 있었다.
쫌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병영성 위로 올라갔을텐데
곧 사라질 것 같아서 오늘은 여기서 만족.
다음 노을을 만날 때는 병영성에 올라가야지.
병영성 위에서 노을을 기다려야지.
이 산은 뭔가 삼방산처럼 생겼고
얘는 아마 월출산인 것 같은데
돌산이라 그런지 뾰족뾰족한 모습이 신기했다.
오늘의 노을은,
강진에 온 나를 환영해주는 것 같았다.
따뜻한 환대.
축협하나로마트에서 산 것
서리태 두부 맛있을 것 같애!
오늘은 집에서 가져온 연두부 먹는걸로ㅎㅎ
호박죽도 ㅎㅎ
가지가 고소하니 맛있었다.
가지 먹으니까 또 함양 생각나고..
뉴런이 그렇게 연결이 되어버렸나봐..ㅋㅋㅋ
배도 부르고 산책 나가고 싶은데
어두울 것 같아서 고민을 잠시 했지만
그래도 나가야지
맨드라미..?
병영성은 배롱님이 추천해준 별 맛집이었는데
오늘은 구름이 많아서 별이 많이 보이는 날은 아니었다.
불을 끄고 가만히 하늘을 보고 있었더니
소리가 들렸다.
풀벌레 소리, 두꺼비 소리,
날아가는 새소리, 동네 개 짖는 소리 ㅋㅋ
저 별 엄청 밝다! 반짝이는데?
잉? 움직이네? 아 비행기구나
까만 밤하늘에는 별만 있는게 아니었다.
비행기도 있었다.
한 두대도 아니고 여러대가 있었는데
사진에서 하늘에 점이 아니라 선은 비행기인 것 같다.
구름도 조금씩 움직여서인지 사진이 잘 나오진 않았는데
어두운 밤에 나무들의 모습이 웅장하고 멋있었다.
병영성 위를 계속 걷기엔 너무 어두워서
동네 한바퀴를 하기로 했다.
병영 정류장
강진은 처음 와봤는데
생각보다 가볼만한 곳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어디를 가봐야할지 고민이다.
역시 내 선택의 기준은
자연, 새
근데 하멜기념관은 가봐야할 것 같다.
하멜표류기 책도 읽고싶어졌는데
갖고 온 책이 많은데..
일단 기념관부터 가보는걸로..ㅎㅎ
여기도 간판 정비사업을 해서 간판들이..
획일적이고 안 예뻤다..
간판 정비사업을 한다면
예전 간판의 모습을 살려서 해주면 좋을텐데
예산이 그만큼 안되는거겠지..?
그래도 아쉽다.
이렇게 손글씨로 써놓은 가게 이름이 얼마나 예쁜데.
혹시 저 하늘색 물 근처에 가면
오리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갔는데
어두워서 그런건지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오리 대신 하멜선생님을 만났다.
네덜란드를 그리워하는 하멜선생님이라는데..
하멜선생님은 본인이 우리나라 곳곳에 이렇게나 많이
남겨질 거라는 걸 알았을까?
여수에서 처음 하멜등대를 보고 하멜이라는 사람을 알게 됐던 것 같은데
강진이 찐이었다.
하멜 기념관 꼭 가고
하멜표류기는 생각해보고..
한바퀴 돌아서 걸어오는 길에
갑자기 다른 길이 나왔다.
예쁜 돌담길.
여기가 아까 배롱님이 말씀해주신 곳이구나!
하멜 선생님이 네덜란드의 돌담 쌓는 방식을 알려줘서
여기에 그 돌담이 많다고 했다.
빗살무늬방식이라고.
밤에는 이렇게 조명까지 켜주니 너무 낭만있잖아.
안 걸을 수 없지.. 조명에 홀려서 좀 더 걸었다.
강아진지 고양인지 모를 발자국들도 만나고
메인 길에만 조명이 있고 여기는 없음
시골에는 집집마다 감나무가 있는 것 같다.
사과나무, 배나무는 없어도
감나무가 있다는건
키우기 쉽다는 건가?
그렇게 비교적 쉽게 얻은 감이라
모두다 따지 않고 까치밥으로 남겨두는 건가.
빈 집, 빈 건물이 몇 곳 보였는데
여기는 책방하면 딱 좋겠다 싶었다.
내 책방하면 좋겠는데 세가 얼마려나.
근데 여기에 책방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나는 어떤 책방을 원하는건지 의문이 들었다.
여기에 책방을 열면 어떤 사람들이 오게될까.
나는 커뮤니티처럼 활용할 수 있는 책방을 만들고 싶었는데
여기에 사는 사람들 중 누가 내 책방에 와줄까?
내가 진짜 하고싶은건 뭘까
사람들이 오길 바란다면 시골에 차리면 안되는건가
여러가지 고민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집에 와서 책상에 혼자 앉아있으니까
비로소 내가 내 집이 아니라 낯선 곳에 와 있다는게 실감이 났다.
낯선 공간에 오니
어릴 때 엄마, 아빠가 수시로 방구조를 바꾸던게 생각났다.
우리집은 나에게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새로운 자극을 줄 수가 없었던거다.
그래서 나는 9월 한달을 그렇게 누워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마음이, 체력이 힘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엄마 아빠는 집을 바꿀 수 없으니
집 안에 있는 가구, 소품들을 옮겨서
구조를 바꿈으로써 새로운 자극들을 받았던 것 같다.
너무 익숙하고 편해서 무한한 안주를 하게 만드는 우리집.
나도 부산집에 가면 구조를 바꿔봐야겠다.
어릴 땐 엄마 아빠가 편한 구조를 왜 자꾸 바꿔서
불편하게 만드나 했었는데,
나도 결국 엄마 아빠와 같은 사람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살아보는 건 또 처음이다.
자취라고 해도 될까.
혼자 살면 마냥 외로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어떤 감정이 들지 알아보면 되겠다.
시간이 많아지니까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되지만
뭔가 하고 싶은데
뭘 하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