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유럽 가자!

무모한 도전, 내가 유럽을 꿈꾸는 이유

by 김느리


10년 전, 나는 유럽여행을 떠났다. 독일에서 스위스로 가던 기차에서 '꼭 엄마랑 같이 다시 와야지' 다짐했던 어렸던 20대의 나는, 직업을 갖게 되었고, 결혼을 해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폐암 3기 진단을 받게 되었다.


소세포 폐암. 폐암중에서도 가장 무섭다는, 환자의 90%가 발병 후 1년 이내 사망, 남은 환자 중 또 80%가 그다음 1년 이내 사망한다는, 정말 끔찍한 병. (*일반적 통계이고, 5년 10년 건강히 사시는 분들 계시니 혹시 투병 중인 분들이 계시다면 힘내십시오. 기적은 있으니까요.)


눈이 퉁퉁 부운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 죽는 것은 괜찮은데, 우리 손주 크는 거 못 보게 되는 것이...'


아기 사진을 보내주면 휴지로 핸드폰 화면을 수차례 닦아 눈을 크게 뜨고 보고 또 보던 엄마가,


네가 하고 싶은 거 있음 엄마가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더라도 다 지원해줄게 하며 딸에게 용기를 주던 엄마가,


내가 아기를 수술로 낳고, 모두 아기를 보러 갔을 때 혼자 내 옆에서 우리 딸 고생했다며, 내 손을 잡아주던 내 엄마가, 암 3기 진단을 받으신 것이다.


항암치료받으며 엄마 머리를 밀어줄 때, 울 엄마 두상도 예쁘다며 깔깔댔지만, 거울 속 내 입술은 눈물을 참아내느라 다 터져있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한 것은, 혹시 엄마도 그러진 않았을까?


death valley - 왜 인간은 늙고 병들고 죽게 되는 것일까


최악이 아닌 차악으로 병명이 바뀌다


엄마가 금방이라도 떠나게 될까, 전화하는 모든 통화를 녹음하던 어느 때, 이제는 익숙해진 의사 면담에서 조직검사 결과가 바뀌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고, 엄마의 병명은 평편상피세포암으로 바뀌었다. 역시 끔찍하고 지독한 폐암 3 기지만, 그래도 소세포암은 아니라는 안도감에 우리는 앞으로 5년은 더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적 같은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0년 전 유럽에서 했던 그 다짐, 엄마와 꼭 유럽에 다시 가겠다는 그 다짐을 지키고자 나는 엄마에게 제안한다!


우리, 크로아티아 같이 가자!


크로아티아는 사실 참 심심한 나라인 것 같다. 작은 광장, 예쁜 성당, 아름다운 국립공원, 하지만 참으로 평화롭고 조용한 그런 나라.

크로아티아의 광장


'엄마, 우리 공기 좋고 진짜 평화로운 곳에서 쉬다 오자. 아무 고민 걱정 없이 그냥 요양하듯 말이야.


아기도 올 가을이면 만 3세가 돼서 현지에서 유치원 보낼 수 있고, 나도 교환학생 가더라도 학점 최소한으로 들으면 되니 우리 같이 가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 셋이, 맛있는 것도 해 먹고, 근처 유럽 다른 나라로 여행도 떠나며 딱 4~5개월 평화롭게 살아보자!'


어떻게 보면 참 철없는 딸의 당돌한 제안에 엄마는 고민하셨지만, 결국엔 좋다 하셨다.


인생은 추억 만들기라고.




가족이 큰 병에 걸리면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은 바뀌게 된다. 이제까지 돈 천 원 돈 만원에 벌벌댔다면, 조금은 더 대담하게 돈을 쓰게 된다.


짜증도 줄게 된다. 이제까지 엄마에게 잔소리도 투정에 짜증도 득실득실하게 내던 나는 엄마 앞에서 순한 양이다. 엄마는 그냥 내 옆에 숨만 쉬고 있어도 소중하고 감사하고 눈물 나는 존재니까.



아픈 엄마, 4살 아기, 학생신분의 나.


유럽에서 한 학기 살기, 가능할까?


사실 맘 카페에 조언을 구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대학생 엄마인데, 암 환자인 엄마랑 4살 아기 데리고 한 학기 동안 유럽 교환학생 떠나려 하는데, 살기 좋은 나라나 도시 추천 부탁한다고. 그런데 대부분의 댓글은 나의 무모함에 대한 질책이었다. 시체 송환하는데 1억 넘게 드니 잘 생각해보라는 댓글도 있었다.


'내가 생각이 없는 건가?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소심해지려 하던 나에게 다시 용기를 준 것은 역시나 엄마였다. 죽기 전에 오로라를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이태리 로마는 꼭 다시 가고 싶다는, 트레비 분수에서 손주 젤라또를 사주겠다는, 자다르의 석양이 기대된다는 떨리는 엄마 목소리.


"홈쇼핑에서 유럽 패키지여행이 나와서 봤는데 동유럽투어는 꼭 해야 해. 부다페스트하고 체코 하고, 너무 가보고 싶어."


재잘재잘, 사춘기 소녀 같은 우리 엄마의 귀여운 수다가 나를 용기 내게 했다.


유럽도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뭐 못 갈게 뭐 있어! 그래, 나 간다! 도전한다!

그래, 떠나자!


엄마는 나의 유럽 교환학생 도전의 첫 번째 꿈이 되었다. 공기 좋고 평화로운 작은 마을에서 쉬다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근처 유럽으로의 여행. 잘 먹고, 잘 쉬는 그런 삶을 엄마와 또 아이와 우리 셋이 살아보고 싶다. 10년 전, 20대의 내가 꾸었던 꿈. 꼭 이루고 싶은 마음이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이제까지 모아둔 돈에, 이번 겨울학기 월급 들어온 거 보태고, 아끼고 아껴서 돈을 마련해보자.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더라. 애 키우는 게, 아기 하나 제대로 된 사람 만드는 거 정말 쉬운 거 아니라고.


그래도 이렇게 내가 건강하게, 평범한 어른으로 자라나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수 있게, 평생을 키워주고 지원해준 우리 엄마를 위해.


이제는 내가 뭐든 해 줄 차례이다!


물론, 나는 3월에 있을 교환학생 면접을 성공적으로 봐서 합격해야 하고, 엄마도 3개월마다 하는 ct 추적 검사를 통과해야 만한다. 하지만, 믿으려 한다. 나는 합격할 것이고, 엄마도 병이 재발하거나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엄마가 5년이 아니라 10년 20년 진짜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돼서 당신 손주 대학 가는 것 까지 보실 거라 믿는다. 믿는 대로 이루어질 테니.


우리 엄마의 시간은 참 빠르게 간다.


깊은 병을 앓고, 큰 수술과 이어지는 항암 방사선 치료에 엄마의 몸과 마음은 다 상해버렸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일상을 살고, 매일 함께 동네 산을 오르며 엄마는 다시 태어나고 있다.


"엄마, 나랑 유럽 가자!"


용기 있게 제안할 수 있어 나는 기쁘다. 무모하지만 설레는 이 도전을 나는, 아니 우리는 꼭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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