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는 싶은데, 용기도 명문도 없다
마음에 바람이 들었다. 잔뜩 들떠서 피식 웃음도 새어 나온다. 나 유럽에 가려고 한다. 아직 30개월밖에 안 된 아들을 데리고, 유럽 크로아티아 자다르라는 작은 항구도시로 5개월 동안 교환학생을 떠나려 한다. 아니, 떠나고 싶어 준비하는 중이다. 아기를 데려간다고 반대할 것이 뻔한 가족들을 어떻게 설득할까? 돈은 어떻게 마련하지? 아이가 잘 적응해줄까? 영어권도 아닌 동유럽의 크로아티아? 왜?
가고는 싶은데 아직 가야만 하는 이유가, 명분이 없다. 만약 아기가 아프기라도 하면, 만약 사고라도 나면? (Oh, no! 상상조차도 무섭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난 지중해에 몸을 던질 거라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재빨리 지우며, 왜 목숨 걸고(?) 가야 하는 이 여정을 내가 시작하고 싶은지 그 이유를, 명분을 찾아보려 한다.
2010년부터 영어강사로 일을 하다, 2014년부터는 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비즈니스 영어, IT 관련 영어를 가르쳤다. 거진 10년을 영어만 가르치다 보니 머리가 굳더라. 주변 사람들과의 건설적인 대화의 부재, 내 의견을 조리 있게 피력할 수 있는 기회의 부재, 무엇보다 나를 공부하게 만드는 존재의 부재가 내 뇌를 굳어버리게 한 것 같았다.
수년째 같은 과목을 가르치며 발전이 멈춰버린 강사로써의 나도, 시간강사로 수년을 더 일한다 해도 뭐 연금이 있어, 교수가 되기를 해, 아무것도 이뤄낼 게 없는 똑같이 반복만 될 삶에 넌더리가 났다. 무엇보다 변화가 필요했다. 이 아줌마도 꿈으로 인해 가슴 떨리는 삶 좀 살아보자!
무언가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최고 교육기관인 대학에서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특정한 하나의 학문을 전문적으로 파야 하는 석사과정보다는 철학, 인문학, 사회학 등 다양한 교양과목을 들을 수 있는 학부가 괜찮겠는데 하는 생각으로 발전했고, 나는 대학교 학사편입을 준비하게 되었다.
대학을 고민할 때 고려한 것은 학비였고, 전공을 결정할 때 생각한 것은 편입시험의 유무였다. 완벽한 영어성적으로 1차 합격, 대부분의 편입 지원자들보다는 많은 연륜과 경험으로, 어떻게 보면 말빨로 2차 면접에 합격하고 나는 유일하게 지원한 대학에서 편입의 합격을 이뤄냈다. 무언가 배울 수 있다는 편입 성공의 기쁨은 사실 찰나였다. 강의, 육아, 집안일이라는 사이클에서 벗어나자, 수업, 육아, 집안일이라는 쳇바퀴를 달리고 있었고 거기에 과제와 시험이 추가되었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것은 흥미가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대학교육은 과거의 그것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고, 그다지 참신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이론을 달달 외우고, 영어 원서를 사전 찾아가며 독해하고, 주어진 분량을 제대로 읽어오지 않은 학생들과 큰 의미가 없는 토론을 하기도 했다. 나도 강의실 제일 뒤에 앉아 졸기도, 과제를 대충 때워서 마감시각 1분 전 겨우 제출하기도 했고, 교수님의 질문에 완벽한 동문서답을 시전 한 적도 많다. 그렇게 졸업을 위한 학점 채우기를 하며 한 학기가 지났다.
그리고 다음 학기 수강신청은 망했다. 이 아줌마의 느려 터진 손가락은 20대 학생들의 PC방 컴퓨터 속도를 절대 따라갈 수 없나 보다. 원하는 수업은 모두 정원초과, 초과, 초과. 수강신청 정정기간에 클릭질을 잘해야 수업 몇 개라도 따내는데, 정말 한숨이 났다. 뭐 하는 짓이냐, 이게.
사실 큰 변화가 될 거라 생각했던 공부는 또 다른 쳇바퀴의 시작이었다. 이럴 거였으면, 관심 분야를 깊이 연구할 수 있는 석사나, 조금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내 분야인 영어교육의 박사과정에 지원했어야 했나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학교에 오고 가는 도로 위 3시간도 나를 지치게 했고, 이제 30개월, 한국 나이로 '미운' 4살이 되어 반항심 가득한 아들에게 버럭 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에도 나는 자괴감을 느꼈다.
'모두 엉터리 같아! 그냥 이렇게 평범하게, 누구나 그렇듯 전형적인 아줌마가 되어가는 걸까?'
아이에게 버럭하고 뒤돌아서 후회하는 것도 지겨웠고, 사랑스러운 내 아이와의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에 감사하기보다는 지쳐하고 힘들다 말하는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왜 나는 주어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있지? 제발 감사 좀 하면서 살자고. 하, 아직 멀었다. 나라는 인간, 참 바보 같다.' 자기 비하도 점점 잦아졌다.
무료함의 정점을 찍고 있던 방학의 어느 날, 무심코 들어가 본 학교의 국제교육원 홈페이지에서 교환학생 모집글을 보게 되었다. "뭐지? Oh, my GOD!!!" 대학시절의 꽃!! 교! 환! 학! 생! 소리 질러!!!!!!!!!!!!!!!!!!!!!! YEAH!!!!!!!!!!! 갑자기 내 눈이 번쩍했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어떤 학교들이 있지?'
미국, 캐나다, 유럽, 남미, 동남아 등 읽기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세계가 엑셀 파일에 예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오, 캘리포니아!! 오예, 샌프란시스코!! 정신없이 도시와 학교를 살펴보다 쿵 내려앉았다. 생활비 (숙박비 포함) 월에 $2300? 아 돈을 어쩌냐. 못 가겠네... 좌절도 잠시, 아냐 아냐, 싼 곳도 있겠지. 마우스를 클릭 클릭하며 쭉 적힌 정보들을 훑는 나였다.
정리를 해보니, 영어권 나라와 몇 북유럽 국가들은 월 생활비가 많이 들었고, 아름다운 몇 유럽 나라들은 난민 문제로 인해 여행주의 지역이라 고려조차 할 수 없었다. 남미는 아기와 함께하기는 두렵고, 동남아보다는 조금 더 멀리 나가고 싶었다. 그래! 유럽이다.
유럽의 중심인 독일, 물가가 비교적 저렴한 동유럽의 체코나 헝가리, 날씨가 따뜻한 이태리 혹은 스페인? 행복한 고민이 이어졌고, 내 나름대로 살기 좋은 도시를 추려냈다. 그래, 유럽에서 아이도 유치원 보내고, 나도 공부도 하고 머리도 식히고. 우리 신랑도 휴가 이어서 한 2주 여행도 함께 하고. 룰루 랄라, 머릿속이 온통 핑크빛이던 그 순간, 나는 얼음이 되었다. 토익이 만료되어 있었다.
"3월 초에 추가모집이 있을 예정입니다. 지금 1차 교환학생 선발은 끝났고, 추가로 모집하는 학교들 공고가 뜰 예정이니 확인해보세요."
담당 선생님의 친절한 목소리에도 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남들이 지원조차 안 한 남은 학교들, 다 별로인 곳만 남겠지? 미리미리 알아보고 준비할걸...'
후회가 밀려왔다. '에이 교환학생은 무슨, 애 데리고. 돈만 많이 들고, 애 아프면 어쩌겠어' 애써 포기할 이유를 찾다, 며칠 뒤 올라온 추가모집 학교 정보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연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내가 가고 싶은 유럽. 뭔가 멋있고 간지 나는 유럽. 독일, 벨기에, 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 크로아티아, 체코가 남아있다! 독일 클라우스탈은 작은 도시인 것 같은데 5명이나 선발한다고? 독일에 다른 모든 도시의 대학은 완전 마감인데, 왜 이 곳만 여유롭게 비어있지? 완전 별로인 곳인가? 벨기에는 여행객들이 인종차별을 겪는 곳이라니 패스, 스웨덴 하고 핀란드는 너무 북쪽에 있네. 추울 것 같아. 체코는 영어가 안 통하니 별로고, 네덜란드는 조금 비싸네. 크로아티아? 여긴 뭐지?
크로아티아는 나에게 참 남의 나라였다.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어디에 있는지도 애매한 그냥 모르는 유럽의 나라. '축구선수 모드리치의 나라'라는 것이 내가 아는 크로아티아의 전부였다.
수업을 하다 보면 남학생들이 축구선수의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 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 영어수업이므로 100% 영어를 수업 내내 사용하고, 학생들에게도 영어 이름을 짓는 것을 추천하는데 작년 어떤 수업에서 남학생들이 적어 낸 이름들이 정말 특이했던 것이다.
'뭐야 이건? 라키티치? 마티치? 비디치? 모드리치? 이거 뭡니까?'
남학생들이 지은 축구선수의 이름으로 나는 생전 잘 보지도 않는 축구로 유명한 선수들을 꽤 알게 되었고, 얼마 전 뉴스에서 모드리치라는 선수가 발롱도르를 받았다는 기사를 보고 '오~ 나 저 선수 아는데' 하고 신랑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그가 크로아티아 출신인 것도 이번에 교환학생을 연구하다 알게 된 것이다.
아, 하나 더! 꽃보다 누나가 크로아티아에서 촬영되었던 것도 이제 알았다. 하나둘씩 크로아티아에 대해 연구를 하다가 이 나라가 참 안전하고, 아름다우며, 기후도 좋고, 사람들도 친절하며, 대부분의 국민들이 영어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범죄율이 낮은 나라, 물가가 비교적 저렴한 나라 이기도했다.
오, 여기 끌리는데?
하지만 정보가 너무 없었다. 특히 수도인 자그레브가 아닌 자다르라는 작은 도시는 여행하기 좋았다는 블로그 글 몇 개일 뿐이었다. 특히 내가 머물며 공부하는 동안 아이를 보낼 유치원 정보는 더더욱 없었다. 출산율이 참 낮은 나라인 크로아티아. 핀란드나 스웨덴처럼 복지나 육아, 유아교육 쪽으로 유명한 곳도 아니고 로컬 유치원에서는 크로아티아어를 사용할 텐데, 근처에 국제유치원은 있는지, 비용은 얼마나 하는지 그 어디에도 정보가 없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맘들이 모이는 멤버 수가 270만에 육박하는 카페에도 크로아티아에 사는 맘들은 거의 없었고, 질문을 올려도 묵묵부답이었다.
게다가 크로아티아는 쉥겐 국가가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 입국 시 꼭 심사를 받아야만 하는 곳이고, 내륙으로 길이 연결되어 다른 유럽으로의 이동이 용이하지도 않은, 유로화가 아니라 쿠나를 사용하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한 유럽여행에 메리트는 없는 나라였다.
어떻게 보면 참 별로인데도 계속 끌린단 말이야. 아직 교환학생이 결정된 것도 아닌데, 아이에게 모드리치 유니폼을 입혀서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는 상상을 하는 김칫국 드링킹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갈 수나 있냐고. 신랑이, 시댁에 허락은 해줄까? 돈은 어떻게 충당하지? 아이가 적응은 잘해줄까? 비자는? 아이 유치원은? 어디서 먹고살아? 수많은 고민과 걱정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이어지는 순간에도, 내 마음은 벌써 크로아티아에 가 있었다.
'그래, 조금 더 알아보자. 내가 크로아티아에 가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자고! 그러고 나서 가족들을 설득해보는 거야.'
아직은 실현될 가능성이 많이 낮은 크로아티아 교환학생 with 4살 아기. 그래도 한 번 도전해보려고 한다. 지난달 본 토익시험 점수도 뭐 꽤 잘 나왔겠다, 교환학생 영어면접 때도 완전 아줌마 열정을 불태워 좋은 점수를 받아보지 뭐.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나를 가슴 뛰게 하는 이 도전이 있어 참 행복하고 가슴이 벅차다. 나 갈 수 있을까?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래, 한 번 부딪혀보자.
크로아티아 교환학생 도전기,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