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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느리 Aug 25. 2020

철학을 논하라

지혜를 길러주자

삶이 지칠 때마다 꺼내 읽게 되는 박웅현 작가의 '여덟 단어' 중, 세계적인 설치 미술작가 서도호 씨를 인터뷰하며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교육을 비교해 본 파트가 있다 


미국에서의 기초 사진 강의 중, 두 명씩 짝을 지어 재주껏 커뮤니케이션을 하라는 미션에 종이를 밟고 구멍을 뚫어 의견을 피력하는 등의 신선하고 충격적인 수업을 했다는 것. 시각언어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사람들을 위한 수업이 놀라웠다는 그는, 한국의 수업이었다면 선생님이 학생들의 그림을 보고 "여기 지워봐, 눌러봐, 살려봐" 하며 검토를 받았을 것이라 이야기했다고 한다.  




나도 대학원 시절,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논문 주제를 찾기 위해 밤을 새우며 고민을 하고 좌절하던 중, 내가 전공하는 영어교육분야에 모든 연구들이 이미 다 한 번쯤은 진행이 된 것만 같은, 더 이상은 할 연구가 없을 것만 같은 막막함을 느꼈다. 수십 개의 논문을 읽어봐도 관심이 가거나 집중하고 투자해서 진행해보고 싶은 주제를 찾지를 못했던 것이다. 


대학원의 몇 교수님들께 상담을 신청하고 교수님을 찾아뵈었는데 한국인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즘은 이게 트렌드예요. 이런 식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이러한 방법론을 쓰고, 연구를 해 나가 봐요. 이런 식으로 결과가 나올 거예요. 됐죠?"


"네, 교수님"이라고 답은 했지만 별로 흥미가 가지 않는 주제였다. 


지도 교수였던 미국인 교수님께 가서 도움을 청했고 교수님께서 물으셨다. 


“What do you think?”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교수님은 절대로 어떠한 주제에 대해 떠 먹여주지 않으셨다.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상담을 요청할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도 칭찬을 들었다. 


“hmm. that’s a good start!” 좋은 시작이다 


내가 의문이 가는 점은 생각하게 하는 질문으로 방향을 잡아주셨고,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을 통해 끊임없이 연결되는 주제를 이어서도 생각해보고, 영 아니면 버리고, 또다시 생각하고 조금 더 깊게 생각하며 멋진 논문을 써낼 수 있었다. 


졸업식 때 수석졸업으로 강단에 나가 우리 동기들 대표로 졸업장과 공로상을 받기도 했는데 나는 그것이 교수님께서 던져 주신 질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What do YOU think?





나는 어렸을 때 쳤던 학습지 테스트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문제를 푸는 나를 보며 속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엄마 얼굴도 또렷이 기억나고. 시험지 제일 위에 큰 글씨로, 다음의 문제들을 3분 내로 푸시오!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고 정신없이 문제를 풀어 내려갔는데, 애국가를 한 소절 쓰라는 문제도 있었고, 아주 간단한 수학 문제를 푸는 것도 있었다. 학습지 선생님은 웃음을 참았고, 엄마는 안타깝게 나를 바라보았다.


바로, 그 큰 글씨 바로 아래 작게 “가장 마지막 문제만 푸시오”라고 적혀있던 것을 내가 놓쳤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음 날부터 그 학습지를 시작했다. 물론 문제를 풀어나가는 학생의 신중하고 차분한 자세도 중요하지만, 그 당시 어렸던 나는 기분이 상했다. 


'이게 뭐라고! 그 작은 글씨들 못 볼 수도 있지.' 그 학습지를 하면서도 내가 괜히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이걸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고, 반항심도 생겼다. 결국은 나를 설득해주시고, 학습지 과제를 함께 하며 재미를 찾아준 엄마 덕분에 꿍했던 마음을 버리고 그 학습지를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이를 어떤 교육기관에 보내고 학습지를 시키는 것에서 끝나면 안 되고, 끊임없는 질문과 관심의 표현을 통해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이다.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은 무엇일까


바칼로레아 (Baccalaureate), 프랑스의 고등학교 졸업시험이자 대학의 입학시험을 부르는 표현이다. 대부분의 질문이 깊이 생각하게 하는 논술형 문제들인데, 20점 만점에 10점만 넘으면 합격이고, 이 시험에 합격한 학생들은 원하는 대학교에 지원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원하면 대학공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프랑스이다. 


대학공부가 성공을 위한 필수 관문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와는 문화 자체가 다르므로 프랑스의 학생들은 정말 순수하게 학업의 관심이 있고, 특정분야를 공부해보고 싶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열 그리고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학생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그리고 행복하고 유쾌한 삶을 살기 위한 창의력과 깊게 생각하는 능력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우리나라는 수능시험을 통해 점수 줄 세우기를 하고 다른 경쟁자들과의 눈치게임을 통해 어느 대학에 지원할지 고민하게 한다. 일 년에 한 번뿐인 수능 날, 몇 부모들은 기도를 하고 삼천배를 하며 자녀의 성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막연히 보면 철학적인 사고를 하게 하는 프랑스의 교육이 좋아 보이고 많이 앞서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런 시스템을 비난하기도 한다. 경쟁률도 낮고 누구나 대학 공부할 수 있으면 누가 과연 열심히 할까 싶은 것. 전 국민 모두가 그냥 평범하게 경쟁심 없이 살아가는 것이 과연 현명할까 의문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프랑스에는 그랑제꼴(Grandes Écoles)이란 엘리트 교육 과정이 있는데, 보통 대학에 다양한 학과가 있는 것과는 다르게, 한 분야만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소수 정예의 교육 기관으로 최고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며 전문가를 양성한다. 바칼로레아 상위 4%만이 그랑제꼴 준비반에서 2년간의 필수교육을 받을 수 있고, 불합격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는 엄격하고 어려운 시험이다. 이렇게 한 분야에 큰 관심이 있고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따로 교육을 받는 프랑스이다. 특정 분야에 능력이 있는 혹은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모여 정말 제대로 공부를 이어가는 것.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 역사와 큰 연관성이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프랑스 시스템을 당장 우리나라에 도입한다고 성공을 예측할 수는 없다. 당장 그들의 교육을 도입하고 따르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생각하게 하는 교육과 시험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아이의 삶을 위해 도움이 되는 진정한 교육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대학 입학시험이란


우리나라 수능에 나온 영어 시험지는 원어민이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주 어려운, 선별을 위한 문제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학생들의 창의성과 생각하는 사고보다는 단편적인 사고에 머무르게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학생들은 중 고등학교 때부터 달달 외운 것들, 책을 씹어 먹을 정도로 보고 또 봤던 내용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려 애쓴다. 즉 암기를 잘하는 학생들에게 유리한 시험을 보는 것이다. 학원에서 찍어준 내용이 나오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휙 답에 체크하고, 어딘가에서 봤는데 명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문제 앞에서는 머리가 터질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암기 위주의 공부를 하는 대한민국과는 다른 프랑스의 졸업시험 문제 몇 개를 한 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

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노동을 덜한 게 더 잘 사는 것인가?     


위 문제에 대한 답변이 졸업 및 대학 입학시험이라니 정말 흥미롭다. 2018년 2월 프랑스의 교육부 장관이 바칼로레아 개혁안을 제출하여 기존과 같은 필기시험과 전공분야의 구두시험으로 구성되게 되는데, 학생이 직접 고른 전공과목에 공통과목 (불어, 철학, 역사-지리, 제2외국어 2개, 체육)을 공부하게 된다. 


프랑스 학생들도 전공과목에 대해서는 심화학습을 하고 연구 및 프로젝트도 진행하지만, 그래도 인류와 철학에 대한 관심과 그의 중요성을 놓지 않는 프랑스 교육과 평가는 대한민국의 그것보다 많이 앞서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교육이나 생각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조금 더 행복하고 나은 삶을 위해 우리의 생각을 바꿔나갈 필요는 있다. 내 아이와 철학적인 질문과 답변을 통해 조금 더 통찰력 있고 생각이 깊은 아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와 아빠가 던지는 흥미로운 질문이 내 아이의 생각의 깊이를 넓히고 더 나아가 삶의 행복을 쉽게 찾아내는 현명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우리나라의 교과과정에 맞게 아이를 교육시켜야 하지만 부모의 교육도 그를 따를 필요는 없다. 


앞서 살펴본 다른 나라의 가정에서의 교육을 살펴보며 우리가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부분은 부모가 채워주면 되는 것이다. 부모가 된 다는 거, 참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한 아이의 엄마, 아빠라는 사실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행복하게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의 미소를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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