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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S Dec 30. 2022

‘막노동’을 우습게 보지 마라. 엄연한 수학적 사고다!

[] 국어 문제와 수학 문제


금 본위 체제에서는 금이 국제 유동성의 역할을 했으며, 각 국가의 통화 가치는 정해진 양의 금의 가치에 고정되었다. 이에 따라 국가 간 통화의 교환 비율인 환율은 자동적으로 결정되었다. 이후 ㉡ 브레턴우즈 체제에서는 국제 유동성으로 달러화가 추가되어 ‘금환본위제’가되었다. … 다른 국가들은 달러화에 대한 자국 통화의 가치를 고정했고, … 기축 통화인 달러화를 제외한 다른 통화들 간 환율인 교차 환율은 자동적으로 결정되었다. (중략)

미국은 결국 1971년 달러화의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한 닉슨 쇼크를 단행했고, 브레턴우즈 체제는 붕괴되었다.

그러나 붕괴 이후에도 달러화의 기축 통화 역할은 계속되었다. … 세계의 모든 국가에서 ㉢ 어떠한 기축 통화도 없이 각각 다른 통화가 사용되는 경우 두 국가를 짝짓는 경우의 수만큼 환율의 가짓수가 생긴다.


12. 미국을 포함한 세 국가가 존재하고 각각 다른 통화를 사용할 때,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에서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환율의 가짓수는 금에 자국 통화의 가치를 고정한 국가 수보다 하나 적다.

 ② ㉡이 붕괴된 이후에도 여전히 달러화가 기축 통화라면 ㉡에 비해 교차 환율의 가짓수는 적어진다.

 ③ ㉢에서 국가 수가 하나씩 증가할 때마다 환율의 전체 가짓수도 하나씩 증가한다.

 ④ ㉠에서 ㉡으로 바뀌면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환율의 가짓수가 많아진다.

 ⑤ ㉡에서 교차 환율의 가짓수는 ㉢에서 생기는 환율의 가짓수보다 적다.     


[이것만은 … ]

*판단이나 행동에서 중심이 되는 기준. (         )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때에, 그 조직이나 양식, 또는 그 상태를 이르는 말. (         )

*기업의 자산이나 채권을 손실 없이 현금화할 수 있는 정도. (         )

*유통 수단이나 지불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화폐. (         )

*달러를 화폐 단위로 하는 돈. (         )

*어떤 활동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 (         )

*서로 엇갈리거나 마주침. (         )     


세 국가하나씩 증가할 때가짓수

<철수 쌤의 슬기로운 국어공부I>에서 철수 쌤은 대학 시절 수학 과외로 용돈을 벌어 쓰기도 했지만, 이제는 수학의 간단한 문제조차 풀 수 없다 했다. 근의 공식이니 인수 분해니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어떤 문제에 적용되는지 알 수가 없다. 수학을 손 놓은지 벌써 30년인데다가 지금은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이니 안다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더욱이 철수 쌤은 수학 교사가 아닌 국어 교사이다. 그러니 수학 문제를 못 푸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고 부끄럽지도 않다.

그런데 철수 샘은 이 문제를 보는 순간 학창시절 수학 시간에 배운 ‘조합(서로 다른 n개에서 순서를 생각하지 않고 r개를 택하는 경우의 수)’이 떠올랐다. 즉 아래 표를 생각했다.



그리고 지문에서 ㉠, ㉡, ㉢을 확인하고 ‘환율’과 ‘교차 환율’이 무엇인지 파악한 뒤, 지문을 거의 보지 않고 문제를 풀었다.

그럼 철수 샘은 수학 영역의 조합 문제를 풀 수 있을까? 학창 시절에 는 풀었지만 지금은 못 푼다. 조합의 가장 간단한 공식조차, 있다는 것만 알고 잊어버린 지 오래다. (설명을 하면서 인터넷에서 찾아 보니 그 공식은 ‘nCr=n!/r!(n-r)!’이란다.) 물론 공식들을 활용하지 않고 위와 같은 표를 만드는 ‘막노동’을 하면 되지만, 그것으로는 풀이가 불가능한 문제들이 수학 영역에서는 출제된다. 이를 이해하면 국어 문제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왜 하필이면 문제에서 ‘세’ 국가라 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조합의 공식을 활용하지 않고 위에서 말한 표를 생각하며 ‘가짓수’를 짧은 시간 안에 알 수 있는 경우가 3이기 때문이다. 조합의 공식을 이용하지 않으면 ‘네(4)’만 돼도 시간이 많이 걸리며 그 이상이면 머리가 터진다. 예컨대, ③을 보자. 만약 문제가 ‘네’ 국가였다면 위 표의 ‘A,B,C,D’ 경우와 같이 조합을 생각했다가 ‘하나씩 증가’하는, 즉 ‘다섯(5)’, ‘여섯(6)’ 등이 될 때의 조합을 계산해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국어 출제 선생님들은 수학 공식을 몰라도 짧은 시간 안에 수학적 사고로 해결할 수 있는 ‘수’를 생각하며 지문을 구성하고 문제를 낸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수학 문제가 아니고 국어 문제인 것이다. 철수 쌤이 이 문제에서 수학 문제를 푼 것이 아니라 수학적 사고라는 국어 능력으로 글을 읽은 것이다. 대수능 국어 영역은 최소한 고등학교 1학년 공통 과정의 모든 교과 개념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출제한다 하지 않았는가? ‘조합’도 그 중 하나다.

위에서 말한 수학 풀이법 중에 하나인 ‘막노동’에 대해 철수 쌤의 생각을 말하고 싶다. 위에서 그린 표를 생각해 내는 것은 수학적 공식을 이용하지 않는 막노동이다. 그런데 그것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막노동이라 하더라도 수학적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 표에서 Ⓐ, Ⓑ, Ⓒ를 보자. 이것들을 기준으로 놓고 다른 항목을 짝짓는 것은 경우의 수를 따지는 수학적 사고이다.

이 문제를 보여주며 수학 선생님에게 경우의 수를 찾을 때 막노동을 하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공식을 이용하면 되는데, 이 문제는 막노동으로 해도 큰 차이 없어요. 빠짐없이 경우의 수를 찾을 수 있도록 치밀하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철수 쌤이 위에서 그린 표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수학 교사들도 하는,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칭찬을 해 주셨다.

수학 문제와 국어 문제는 공식을 이용하지 않아도 풀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국어 영역 출제 선생님들은 이 점을 고려해 문제를 만든다. 그렇다면 학생들 또한 막노동에 의한 수학 풀이를 능숙하게 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국어 공부이다.

    

미국을 포함한 국가각각 다른 통화를 사용환율기축 통화교차 환율

문제에는 풀이를 위한 조건들이 있다. 그것은 풀이의 단서이자 힌트이다. 예컨대 위 문제에서 ‘미국’, ‘세 국가’, ‘각각 다른 통화 사용’ 등이 그것이다. 이 조건들은 결국 ‘기축 통화’, ‘환율’, ‘교차 환율’을 판단하는 데 단서가 된다. 지문의 ‘국가 간 통화의 교환 비율인 환율’, ‘기축 통화인 달러화를 제외한 다른 통화들 간 환율인 교차 환율’을 보면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이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아래의 벤다이어그램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지문에 ‘기축 통화인 달러화’라고 했으므로, ‘미 통화’가 기축 통화이다. 이를 감안하면 ‘B 통화 : C 통화’는 ‘환율’이면서 ‘교차 환율’이고, ‘미 통화 : A 통화’, ‘미 통화 : B 통화’는 ‘환율’이지만 ‘교차 환율’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위 표로 바꿔 이해하면 다음과 같다.     



이는 앞에서 배운 내포와 외연을 생각하며 이해하면 도움이 된다. 즉 다음과 같이 생각하며 글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철수 쌤에게 배우는 한 학생이 이 문제에 대해 질문하다가 ‘환율’과 ‘교차 환율’을 혼동해서 문제를 잘못 풀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은 적이 있었다. 그때 철수 쌤이 학생에게 해 준 것이라고는 외연과 내포에 관한 설명뿐이었다. 여러분들도 잘 기억해 두기 바란다.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① … 하나 적다. ③ … 하나씩 증가할 때마다 하나씩 증가한다. ④ … 많아진다. ⑤ … 적다

국어 영역에서는 계산 결과가 구체적인 수인 경우는 잘 출제하지 않는다. ④와 ⑤처럼 많다/적다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만 문제를 낸다. 그러나 ①과 ③처럼, 1,2,3 정도의 작은 수로 계산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출제될 수 있다.

①의 경우 위 벤다이어그램에서 보듯이 환율의 가짓수는 3이다. 교차 환율은 하위, 환율은 상위에 있는 개념인데, 하위 개념의 수는 상위 개념의 수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금에 자국 통화의 가치를 고정한 국가 수’ 또한 3이다. ‘미국을 포함한 세 국가’이기 때문이다.

③의 경우 위 표를 다시 보자. A, B 두 항목이 둘씩 짝지어지는 경우의 수는 1이다. A, B, C 세 항목일 때는 3으로, C 항목 하나가 추가되었는데 가짓수는 2가 증가했다. A, B, C, D 네 항목은 어떤가? 가짓수는 6으로 3이 증가했다.

이를 바탕으로 다섯 항목, 여섯 항목일 때를 추리해 보자. 구체적인 가짓수가 얼마인지를 알아내려 하지 말고 ③에서 말하는 ‘하나’와 비교해 보자. 하나보다는 많지 않겠는가? 세 항목에서 네 항목으로 늘어났을 때 3이 늘었지 않았는가? 이렇게 1, 2, 3 정도의 구체적인 수를 알아내고 비교하는 정도는 공식 같은 것을 활용하지 않고 막노동으로도 짧은 시간 안에 생각해 낼 수 있기 때문에, 국어 영역에서는 출제된다. 이 또한 국어 문제와 수학 문제가 다른 점이다.

④의 경우 지문에 ‘각 국가의 통화 가치는 정해진 양의 금의 가치에 고정되었다. … 다른 국가들은 달러화에 대한 자국 통화의 가치를 고정했’다고 되어 있다. ‘금’에서 ‘달러’로 바뀌었을 뿐이니, 가짓수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수를 생각할 필요없이, 많다/적다/같다 정도로만 구별하면 된다.

⑤의 경우 위 벤다이어그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교차 환율의 가짓수’는 1이고, ㉢에서는 ‘기축 통화도 없’으므로 교차 환율이 존재하지 않으면서 환율만 존재하는데, 그 가짓수는 3이다. 따라서 ⑤는 적절하다.   

  

② ㉡이 붕괴된 이후에도 여전히 달러화가 기축 통화라면 교차 환율의 가짓수

지문에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한 닉슨 쇼크를 단행했고, 브레턴우즈 체제는 붕괴되었다.’고 하였다. 금 태환에 대해 원래 지문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었다.

     

미국의 중앙은행에 ‘금 태환 조항’에 따라 금 1온스와 35달러를 언제나 맞교환해 주어야 한다    

 

이에 따르면 ‘금’과 ‘달러’는 같은 것이며, ‘닉슨 쇼크 단행’은 달러가 기축 통화가 아님을 의미한다. 또한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는 기축 통화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수 쌤은 ②에서 ‘여전히 달러화가 기축 통화라면’이라는 말에 주목을 한다. 왜냐하면 경우의 수를 판단할 때 조건을 생각하는 국어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②에서 판단해야 할 것은 교차 환율의 가짓수이다. 그것을 판단하려면 기축 통화라는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한다. 기축 통화라는 개념이 없으면 교차 환율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이를 앞에서 개념 정의는 개념으로 이루어진다고 철수 쌤이 설명한 것으로 이해해 보자. ‘교차 환율’은 ‘기축 통화’로 정의하는데, ‘기축 통화’의 개념이 없어지면 ‘교차 환율’을 정의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②에서 ‘여전히 달러화가 기축 통화라면’이라는 전제가 없었다면 ‘교차 환율’의 가짓수는 0이거나 그 자체를 판단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철수 쌤이 이 문제를 접한 순간에는 ②에서 달러화가 기축 통화라는 것을 조건으로 주지 않아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지문에 ‘붕괴 이후에도 달러화의 기축 통화 역할은 계속되었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 붕괴된 이후에도 달러화가 기축 통화 역할을 했다는 것이 지문에 있는데 굳이 또다시 말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곧 그 조건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함의(含意)를 파악하는 국어 능력 때문이다. 함의는 명제 상호 간에 존재하는 관계의 하나로서, 명제 P가 참이면 반드시 명제 Q도 참이 되는 경우에 P가 Q에 대하여 가지는 관계이다. ‘철수 쌤은 교사이다’를 생각해 보자. 이 말 속에는 ‘철수 쌤은 학교에 근무한다.’, ‘철수 쌤은 가르친다.’가 함의되어 있다. 이를 앞에서 설명한 필요충분 조건을 적용해 이해할 수도 있다. 즉 학교에 근무한다와 가르친다는 두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교사이니, 교사라고 하면 학교에 근무한다와 가르친다는 것은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되었다는 것은 기축 통화가 없어졌다는 것을 함의한다. 그러니까 지문에서 말한,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되었는데도 달러화가 기축 통화 역할을 했다는 실제 상황은 함의에서 벗어난 예외였던 것이다.

함의를 알고 있는 학생의 경우 조건을 주지 않았다면 ②를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교차환율의 개념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학생이 잘못한 것일까? 아니다. 함의를 생각하며 문제를 푸는 학생이 더 국어 능력이 뛰어난 학생인데, 그 학생을 잘못했다고 하면 그것이 잘못이다.

출제 선생님들은 지문에 설명되어 있느냐 없느냐를 기본적으로 따진다. 그러면서 논리적으로 맞느냐 그르냐도 따진다. 위 문제와 같이 안 주어도 될 것 같은 조건을 주는 것은 논리적으로 따지면서 문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주어진 조건을 이해하며 글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만은 … ]의 정답

본위(本位), 체제(體制), 유동성(流動性), 통화(通貨), 달러화(貨), 기축(機軸), 교차(交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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