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어울리는 집

집주인이 없을 때도 집에서 집주인이 느껴지는 집이 좋다

by 하지희

프랑스 사람들은 집을 정말 잘 꾸민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점은 ‘예쁘게’ 잘 꾸민다는 게 아니라 ‘취향에 맞게’ 잘 꾸민다는 차이점이다. 난 프랑스에 와서 처음으로 남의 집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원래도 인테리어와 집에 관심이 많았지만,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딱히 구경할 거리는 별로 없었다. 비슷비슷한 아파트, 비슷비슷한 구조, 비슷비슷한 인테리어. 가족 구성원의 취향이 드러나는 부분이 분명 있긴 했지만, 들어서자마자 ‘아, 역시 여긴 00의 집이구나!’하고 눈에 확 띄는 집은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취향계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나라 프랑스에 와버렸다. 서점 안 베스트셀러 코너의 면적이 작고, 이해하기 힘든 마니아틱한 영화가 의외로 상영관에 오래 살아남는 나라의 집들은 확실히 달랐다. 들어서자마자 눈이 바빠진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이 집이 반드시 예쁘거나 멋지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인상이 찌푸려질 만큼 이해하기 힘든 장식품이 즐비한 집이 더 많다. 그러나 집주인은 개의치 않는다. 자신의 집이니 자신의 취향을 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프랑스도 점점 취향을 드러내길 꺼리는 집들이 늘어가고 있다. 한때 즐겨보았던 프랑스 예능 프로그램 중에 <Maison a vendre(파는 집)>라는 게 있는데, <구해줘, 홈즈>의 반대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세입자가 아니라 집주인이 주인공인데, 몇 개월 혹은 몇 년째 집이 팔리지 않자 가격 조정도 도와주고 인테리어도 바꾸면서 빨리 집을 팔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예전엔 사람들이 집을 사면 당연히 자신의 취향에 맞게 꾸미고, 팔 시기가 다가오면 적당히 장식품만 치운 후 원하는 가격에 팔거나 그대로 둔 채 조금 낮은 가격에 팔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용납하기 힘든(?) 취향의 세대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고(한국의 청년들이 체리색 인테리어에 질색하듯이), 바쁜 와중에 새로 인테리어 할 여유가 없어 다시 취향에 맞게 직접 공사하려는 사람이 줄었다. 적당히 중성적이고 무난한 집을 사서 자잘한 소품 정도로 취향을 드러내려는 구매자가 대부분인 것이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헛웃음이 나올 만큼 유난스러운 집이 많이 나온다. 온 벽을 진한 빨간색으로 칠해둔 집이라던가, 거실과 주방을 지하실에 둔 집이라던가, 문이란 문은 다 없애버린 집이라던가, 욕실 벽 전체를 강아지 사진들로 도배한 집이라던가 말이다. 진행자는 집을 둘러보며 혀를 내두른다. “나라도 이 욕실을 보자마자 도망갔을 겁니다!” 집주인은 방송 내내 어깨를 축 내린 채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집 인테리어를 하나둘 바꿔나간다. 그렇게 취향이 드러나지 않은, 무색無色의, 팔기 좋은 집이 탄생하고 집주인은 드디어 집을 팔 수 있게 된다. 집이 팔리기 전 집주인은 새 인테리어가 끝난 집에서 잠깐 살게 되는데, 소감이 어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대부분은 이렇게 대답한다. “예쁘고 좋긴 한데, 내 집이 아닌 것 같아 어색해요.” 그럼 진행자는 이제 이사 갈 일만 남은 거라고 어깨를 두드리며 활짝 웃는다.


한 집에서 평생 사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때문인지, 시간과 돈이 부족해서인지, 취향이 다들 비슷해지는 것인지, 예전만큼 눈에 확 띌만한 개성 넘치는 인테리어를 점점 찾아보기 힘들다. 나도 집을 구한다면 되도록 하얗고 꾸미기 좋은 집을 선호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난 프로그램 속 회괴망상한 집들이 좋았다. ‘도대체 왜’ 이런 인테리어를 했냐는 질문에 수줍게 웃으며 자신의 취향을 밝히는 집주인과 그의 손길이 닿은 것이 티가 나는 집이 사랑스러웠다. 내가 정말 질색하는 형광 보라색으로 칠한 부엌도 귀여운 할머니와 함께일 땐 예뻐 보였다. 집이 사랑받고 있다는 게 느껴졌으니까.



올해의 유행 컬러로 새롭게 칠해지고, 싸고 부실하지만 무난히 예쁜 소품들로 꾸며진 집 한가운데 서 있는 집주인의 어색한 모습에 왠지 나도 서글픈 심정이 되었다. 아직 집이 팔리기 전이지만 이미 이 집은 집주인의 집이 아닌 형태가 되었다. 그래서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집이 팔리지 않는 결말이 나오면 나도 집주인도 처참한 표정을 짓고 만다.


사정이 이러니 여전히 오로지 취향에 맞게 꾸민 집을 가끔 만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자주 이사 다녀야 해도, 돈과 시간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집을 가꾸는 이들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나도 실현 가능성은 없을지 몰라도 내 취향이 마구 들어간 집을 가끔 그려본다. 요즘 유행은 밝은 바닥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주 진한 색의 나무 마룻바닥을 깔고, 스타일이 뒤죽박죽이어도 모던한 액자와 앤틱 한 금빛 거울을 같이 걸고, ‘굳이’ 통유리로 주방과 거실을 구분해보고 싶다.


집주인이 없을 때도 집에서 집주인이 느껴지는 집이 좋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변함없는 집이 좋다. 다른 어느 집에서도 만나볼 수 없는 그 집만의 독특한 조합을 가진 집이 좋다. 특이하고 재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사는 집을 앞으로도 자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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