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출판에 도전하며 좌충우돌한 끝에 주고받은 이메일 '질문과 답변'의 한 대목이다. 퍼플(pubple)이 출판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POD부서인 줄 알게 되었는데, 플랫폼에서 전자책으로 보는 데는 e퍼플과 소통해야 하는 것을 겨우 알았다. 용어를 제대로 알았더라면 하는 반성이 이번 프로젝트의 최대의 성과였다.
'브런치'에 모아 온 글들이 100여 편, 자천타천으로 책을 한 권 발간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수필로서는 미완성이거나, 수필에 포함하기에는 애매한 취미를 다룬 댄스 에세이 내용이 반반이었다. 댄스클럽회장으로서 댄스 에세이 발간이 우선이었다. 댄스라는한정된 취미이다보니 관심 있어할 독자는 많지 않아 보여 클럽회원들과 공유할 생각이었다.
한 권의 수필집은 양적으로 250쪽 이상이어야 할 것 같아, 이질적인 두 개의 주제 즉 댄스와 일상의 수필 글을 한 권에 묶어 원고를 배열하고 목차도 편성했다. 표지디자인은 큰 딸이 도와주고 막내딸은 책의 성격에 대해 결정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분량은 적더라도 댄스 에세이면 댄스이야기만 다루는 편이 낫다는 막내딸의 엄중한 조언에 뜨끔했다. 서정 수필은 따로 모아 제대로 수필집을 내면 되지 않을까? 나의 고민의 한 구석을 정확히 짚었던 느낌이었다. 글은 퇴고할 때마다 수정은 할지언정 아예 삭제하기 힘든다는 진실이 떠올랐다. 아깝기는 한량없지만 '하모니의 리듬 - 댄스 에세이 -'라고 한 부제목을 고려하더라도 한쪽 팔은 잘라내야 하는 결단이 필요했다.
책이 출판되었다 하더라도 누가 읽겠는가도 걱정거리다. 글쓰기 모임에서 많은 책들을 선물로 받았다. 출판기념회라고 하여 축하하고 축하받는 행사가 관례이다. 배포해야 할 곳이 많으면 1000부를 인쇄하기도 한다. 적지 않은 출판비용에 지인에게 선물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서점에서 팔리는 양은 극히 미미하다. 쌓여만 가는 수필집과 잡지를 언제 읽을지도 기약이 없다. 한가롭게 수많은 수필책을 완독 하기가 쉽지 않은 세태이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현대인에게 책이 뒷전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헛치레 일이 내키지 않아 출간은 전자책으로 하기로 했다. 주문 생산방식인 POD가 합리적인 것 같았다. 바로출판이라는 교보문고의 전자책출간사이트를 주목하게 되었다.
처음 만드는 책이므로 전문가에게 맡기고 자문을 구하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다. 하지만 새로운 출판방식이 버젓이 트렌드로 잡혀가는데 과거 방식을 따르는 게 진부하게 느껴진다. 전자출판을 설명해 주는 유튜브영상도 보고 직접 해보는 과정에서 나의 약점을 알게 된다. 원고를 복사하고 붙여 넣기를 넘어 클릭 한 번에 PDF 파일로 변환되다니 책이 저절로 된 느낌이었다. 필요한 때 언제든지 주문 인쇄도 가능하다. 겉표지는 디자인이 문제이지만 제시된 템플릿을 이용할 수도 있다. 마침 딸의 도움을 받으니 쉽게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만으로 전자출판을 도전하면서 곳곳에 막힌 부분이 많았다. 주로 컴퓨터 기능에 대한 소소한 장애가 느껴질 때마다 내게는 새롭게 익숙해가는 과정으로 여기며 기꺼이 문제를 풀어가기로 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가? 교보문고에서 기본 가이드문자를 받아보았다. 출판이라고 물으니 종이책과 전자책 둘 다 가능하다고 했고, 종이책은 바로출판을 통해 POD출판이 가능하고 전자책은 제휴사인 e퍼플을 통해 출판사 없이 출간이 가능하다. 무료이다. 먼저 개인 작가는 교보 파트너시스템에 회원가입을 하고 승인을 받는 데 2~3일 소요되었다. 교보문고 바로출판 POD운영팀에서 알림톡이 왔다. 파트너가 된 셈이다. 서비스 소개에 대한 공지사항이 담겨있었다. POD란 Publish On Demand의 약자로 도서를 인쇄용 파일(PDF)로 보유하고 있다가 고객 주문 발생 시 주문 수량만큼 제작 배송하는 주문제작형 출판서비스이다. 교보문고는 도서의 제작과 유통을 지원할 뿐이라고 붉은 글씨로 강조한다. 저작권, 출판권, 배타적 발행권한은 저작자에게 있다. 폰트 서체 이미지 등에서 저작권을 구별하여 사용하는 일이 쉽지 않을 터이니 일반적인 서체를 사용한다.
워드문서로 옮겨놓는 일이 첫 번째 난관이었다. 구글문서와 클라우드에 익숙하다 보니 예전에 사용하던 아래아 한글은 사라진 듯 한컴에서 한글워드를 구입해 사용하여야 했는데 어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워드문서로 작성하면 한글워드문서를 호환사용할 수 있으나 한글워드로 작성된 문서는 MS사의 워드문서에서 오작동을 염려하기도 했다. 원고를 추리며 교정도 보아가며 한편씩 글을 배치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제목을 정하고 대분류 중분류 소분류를 하라지만, 초보 편집자에게는 역순으로 소제목의 유관 정도를 살펴 묶고 목차를 정했다. 국판으로 할 것인가 사이즈에 관한 고민의 시간도 길었고, 표지 디자인과 본문에 대한 세련된 배치는 새로 배우기는 포기했다. 서문과 작가소개와 이미지 선정 페이지를 설정해 놓으면 자동으로 페이지 쪽 번호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작업 과정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저작권을 염두에 둔 출처표기등 완벽을 기했어야 한다. 바뀐 내용의 본문에 따라 목차도 수도 없이 손을 보아야 했으니 시간낭비처럼 보였다.
교보문고 담당자와 이메일로만 소통하면서 가제본을 받아보고 서체와 폰트크기 조잡한 책등(세네카)등 실망이 적지 않았다. 쉽다고만 하던 유튜브와 홍보안내글이 결코 내게는 쉽지 않음을 절감했다. 비로소 안내가이드를 충분히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고 책 출판 프로젝트 자체가 넌더리가 날 정도였다.
짧은 안내문구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일하는 방식부터 과거와 판이하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메일로만 소통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내키지 않고 두렵지만, 젊은 그들에게는 비대면 소통이 깔끔한 법이다. 사용이 거의 없던 이메일 받은 편지함도 정리해 가며 조금씩 일을 위한 소통방식에 적응해 보았다. 즉문즉답은 거의 없다. 시간의 이격이 있을 만큼 묵혔다 답하게 되는 게 e메일이다.
어렵게 전화연결하고 목소리와 감정표현까지 신경 써야 했던 구식의 일처리가 거추장스러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과거 직장생활을 하는 중에 주창했던 '시스템이 일을 하는 구조' 속에서 일이 처리되고 있었다. 시스템에는 컴퓨팅과 업무 플로우가 녹아들어 있어 시스템에서 돌아가는 입력작업이 표준화되어있어야 한다. 편법과 편의를 고려하는 아날로그 정서는 끼어들 곳이 없어야 시스템답게 돌아간다. 막힌 곳을 전화로 겨우 연결하여 묻는 때는 오히려 진땀 나는 순간으로 변했다.
시대에 뒤처진 이가 겸손하게 묻는 정도가 아니라 비굴하기까지 했던 것 같아 가급적 전화로 묻는 일은 안 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필연적으로 디지털시대는 감성을 배제해야 했다. 부족한 아날로그는 이메일을 주고받아야 할 일이 아닌 곳에서 새로운 일을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