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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름모 Jan 04. 2024

[12/27] 맞는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아

5일 차

아마도 기억을 더듬어 쓰고 있기 때문에 앞 전 일기처럼 자세하게 쓰는 게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육인방 구석 침대 2층에서 눈을 떴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코를 골지는 않았나 걱정을 했습니다. 늦게 일어났기 때문에 느지막하게 겨우 씻을 수 있었습니다. 씻고 머리를 말리고 있으니 U언니가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습니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곧 산책을 가려고 했는데 C가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충 준비를 하고 사계 해안 쪽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산책 중 만난 바다

 가면서 여러 일상적인 대화들을 했습니다. 가는 길이 예쁘다고 K와 C는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도로를 따라 쭉 걷다가 해변에 도착해서 사진을 좀 찍고, 다시 올라왔습니다. 올라오는 길에 복귀하는 S를 만났습니다. 건강히 전역하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U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특수교사 3인방과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부지런히 준비를 했습니다. 얼마 전 나무네에서 산 노란 재킷을 입었습니다. 특이하게도 따뜻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12월 29일인데요.

갈치를 잘 바르는 S

U의 렌터카를 타고 용머리해안 근처에 있는 올레마당이라는 식당에 갔습니다. 가서 평소에 먹지도 않는 생선구이를 먹었습니다. 그래도 제주에 왔는데 생선구이는 먹어줘야지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불만이 없었습니다. 역시 생선구이는 왜 먹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 그냥 퍽퍽 퍼먹을 수 있는 게 좋습니다. 그때 시선 끝에 닿는 텔레비전에서 배우의 사망소식이 나왔습니다. 일행들과 함께 그 소식에 함께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고를 접한 저는 어떤 생각을 했어야 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줄입니다.


밥을 먹고 나서는 그들이 가는 카페까지 차를 타고 갔습니다. 저는 소품샵을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그 3인방은 책방 겸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E언니에게 줄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날씨가 좋아 산방산이 매우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활짝 품을 내어주고 있는 것 같은 산방산을 옆에 두고 천천히 걸었습니다. 신인류의 노래를 들었던 것 같네요. 중간중간 돌담에 카메라를 올려두고 사진도 찍고 즐거웠습니다. 소품샵에 도착해서 인센스 홀더와 스틱을 샀습니다. 쇼핑백을 들고 터벅터벅 걸어 사계해안으로 갔습니다. 이제부터 용머리해안에 가는 것 말고는 정해진 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카페로 들어갔습니다. 커피와 소금빵을 시키고 이것저것을 했습니다. 12월 26일 일기도 그 카페에서 적은 것입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연락도 좀 하고 책도 조금 읽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버려 바닷가로 이동했습니다.

산방군과 산방산

사계해안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어요. 이름의 의미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사계(沙溪)'에서 '사(沙)'는 해안의 모래, '계(溪)'는 마을 동쪽을 흐르는 시내 /라고 합니다. 대규모 사구지역이라고 하네요. 해변이 참 예뻤습니다. 모래사장을 천천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사진이 너무 찍고 싶어 졌습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어떤 커플에게 사진을 부탁드리고 저도 찍어드렸습니다.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어 다음 타깃을 물색했습니다. 삼각대를 들고 혼자 돌아다니는 여성분을 발견해서 부탁드렸습니다. 여전히 결과물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찍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며 용머리해안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네이버지도를 믿고 걸어가다 보니 너무 예쁜 길이 나와 행복했습니다. 좌측에는 산방산을, 우측에는 사계해안을 낀 산책로였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대가로 이상한 길을 안내받았다는 걸 곧 깨달았습니다. 백년초가 선인장인걸 알고 계십니까? 무슨… 백년초밭을 지나가느라 바지에 가시가 다 묻었습니다. 여기는 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인디아나 존스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찌저찌 꾸역꾸역 길을 찾아 올라와서 평지를 걷고 있는데, 아까 그 삼각대 여성을 만났습니다. 저도 모르게 반가운 척을 해버려 그 분과 소품샵에 같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B언니에게 줄 머리끈과 엽서를 하나 샀습니다. 그분도 용머리해안에 간다고 하셔서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입장료는 쿨하게 연상녀인 제가 결제했습니다. 들어가서 걷다 보니 멍게와 해삼을 팔더군요. 멍게와 해삼, 소주 한 병까지 2만 원으로 네고에 성공했습니다. 용머리해안에 앉아 바다 1m 거리에서 술을 마시니 꽤 좋았습니다. 한라산 17도 소주가 순한 한라산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하는데요. 순한 한라산을 받았습니다. 동행인 M은 24살이고 광주 옆 담양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원래 호텔경영학과를 나왔는데 전공이 맞지 않아서 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같이 용머리해안을 돌았고 간간히 사진도 서로 찍어줬습니다. 용머리해안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용의 머리를 닮아 그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모래와 자갈이 수천 년 동안 쌓여 생성된 암벽인데, 엄청나게 큰 암벽이 모두 자잘한 모래와 자갈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무언가 저에게 있는 문제들도 시간이 모두 해결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만원에 산 흉내낭만과 용머리해안


해안 관람을 끝내고 배가 고프지 않아서 카페에 갔습니다. 바닐라라떼를 한 잔 마시고 M과 함께 흑돼지를 먹으러 갔습니다. 감기약 때문인지 아까 용머리해안에서 마신 소주 기운이 안 가셔서 술은 먹지 않았습니다. 초벌구이가 되어서 나와 맛있었습니다. 흑돼지는 쫄깃해서 맛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와 거의 하루종일 함께 있고 대화하며 느낀 건, 그 사람과 저는 정말 다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으레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나 동행하게 된 사람과 잘 맞아서 인연을 이어갔다-라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M과 저는 매우 매우 달랐습니다. 불쾌하거나 불편한 건 아니지만 이어지는 느낌이 잘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와 이어질 수 있는 친구들의 소중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저녁을 다 먹고 서로 택시를 잡는데 M의 택시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걸어가면 30분이라고 걸어간다고 해서 그녀를 보내고 저는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꽤나 일찍 귀가한 편이라 사인방으로 들어갔더니 새로운 게스트들이 있었습니다. 대구에서 온 22살 친구들이었습니다. 또 진행병이 도져서 그녀들이 무안하지 않도록 말을 걸었습니다. 대충 짐정리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씻고 나오니 또 거실에 도란도란 모여있더군요. 앉아서 S와 주로 얘기했습니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인데 참 밝고 귀엽습니다. 그 친구는 포트럭에 맘에 드는 남자가 있다며 그를 ‘원필’로 칭하고 제게 귓속말을 했습니다. 주로 저 남자가 너무 맘에 든다, 말을 걸고 싶다, 죽을 것 같다 등이었습니다. 귀여운 S와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담배를 사러 멀리 있는 편의점에 다녀왔습니다. 이상하게 입맛이 돌아서 빵과 우유도 사 먹었습니다.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에는 H와 전화를 하며 N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궁 속으로 빠져버린 그와의 사이를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돌아와 정리를 하고 있으니 N에게서 답장이 왔습니다.

보름달을 몇 년 만에 먹어본 것인지 모르겠다

곧 전화를 했는데, 제가 N에게 돌아오지 않는 관심에 대한 투정을 부린 것 같습니다. 내가 주는 만큼 무언가 마음이 돌아오지 않아 서운한 게 티 났을 겁니다. 그는 저에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내가 좋으면 좋은 거지 N이 저를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건 N이 할 얘기가 아닙니다. 저는 그 사람이 얘기하는 거의 모든 것들에 여러 의미부여를 하다가 지쳐서 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많이 정리하며 잠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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