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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름모 Jan 04. 2024

[12/26] 튀어 오르는구나

4일 차

아침에 늦잠을 잤습니다. 9시에 일어났습니다. 평소에는 8시에 눈 뜨는 것도 힘들고 9시도 그랬는데 제주에서는 어째 9시가 왕창 늦잠인 것만 같습니다. 생활패턴을 여기서 만들어 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침에는 조식을 먹으며 사장님과 돌고래, 고등어, 개, 고양이, 프레리독, 햄스터, 쥐 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돌고래 투어에서 비롯된 이야기 주제였습니다. 짐을 맡기고 나와 병원에 들러 주사를 맞았습니다. 친절한 의원이었습니다. 술을 마셔도 되냐고 여쭤보니 제 팔뚝을 때리시며 안된다고 해주셨습니다. 애정 섞인 매를 맞은 게 오랜만이라 기분이 좋았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급한 사람도 없어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전 매번 뛰어다녔는데요. 정해진 게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다들 느리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다정하고 남을 괴롭히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소리 지르는 사람도 없습니다. 경상도 할매들은 소리부터 빽빽 지르는데요.


곧 돌고래를 보러 가는데 아침에 나눈 이야기가 자꾸 생각납니다. 왜 사람들은 돌고래를 예뻐하고 고등어는 예뻐하지 않을까요? 활엽수 사장님은 외모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에게 사랑받는 동물들의 공통점을 활엽수 사장님과 함께 생각해 봤는데 1) 인간 친화적이고 2) 똑똑하고 3) 충성심 높은 것이라고 결론 지었습니다. 그리고 *프레리독은 왜 설치류인데 dog으로 끝나는지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스페인 사람들이 프레리독의 울음소리를 듣고 개로 착각하여 dog이라는 어미를 붙였다고 합니다.


커피 폭행

이어 씁니다. 어제 에스프레소바 이후로 일기 쓸 시간이 없어서 정리를 통 못했습니다. 저는 라떼만 한 잔 주문하고 에스프레소를 주시는 이벤트에 참여했는데, 콘파냐까지 사장님께 선물 받았습니다. 옛날에는 이걸 커피폭행이라고 부르곤 했는데요. 

야무진 벨트와 따봉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 돌고래투어를 하러 동일리포구로 갔습니다. 가면서 여러 노래들을 들었는데, 기억에 남는 건 노엘의 You Know We Can’t go back입니다. 자유로운 기분이 들어서 사진도 잔뜩 찍고 두 팔을 벌리며 노래를 하기도 했습니다. 돌고래투어에 아무래도 제가 가장 먼저 도착한 것 같았습니다. 멍하니 방파제 산책을 했습니다. 곧 시간이 되어 구명조끼를 입고 배에 탔습니다. 저 빼고 모든 탑승객들은 연인 혹은 가족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과 앉고 싶지는 않았는데 혼자 앉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배는 빠르게 달렸습니다. 그냥 배를 타고 있는 것만으로도 꽤 좋았던 것 같습니다. 무슨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배가 어떻게 물 위에 떠있더라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곧 돌고래가 보인다고 선장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곳은 정말 말 그대로 ‘앞바다’였습니다. 제주남방큰돌고래가 11마리인가 12마리 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걔네들은 가끔 물 위로 지느러미를 내밀었고, 15명 정도 되는 인간들은 그 지느러미 하나를 보겠다고 기린마냥 고개를 쭉 빼들고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나는 돌고래를 찾으며, 찍으려고 하면 안 나온다 / 점점 멀어진다 / 잘 안 보인다 / 귀엽다 등의 인간중심적인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선장님은 배를 이리저리 돌리며 34000원어치의 구경을 시켜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눈썰미가 좋은 약 20% 정도의 사람들이 여기에 돌고래가 보인다느니 등의 소리를 하면 그 작은 배에 올라탄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야무지게 먹고 행한 것들

돌고래 투어를 하려고 모였으니 목적에 준하는 행동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0분 정도 돌고래를 본 것 같습니다. 나 또한 별 다를 거 없이 캠코더를 접었다 폈다 하며 돌고래를 담으려 애썼습니다. 튀어 오르는 것도 봤는데요, 그냥 [튀어 오르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아침에 활엽수 사장님과 함께 돌고래와 고등어 얘기를 한 뒤로 맘이 편하질 않았습니다. 돌고래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돌고래가 우리 때문에 ‘집’을 침범당한 느낌을 느낄까 봐 그랬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진짜 멀리에 배를 멈추고 보았던 거라 다행이었습니다. 우리 같이 살아가는 거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싶었습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요. 돌고래를 구경하며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선장님이 [녀석들이 잘 안 올라오네요. 좀 올라와주지. 올라와주면 좋을 텐데 아쉽네요] 등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확 [쟤네가 뛰고 싶음 뛰고 나오고 싶음 나오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 잘 있구나- 저는 그 정도면 됐습니다. 돌아가는 배에서는 선장님이 스피드보트 묘기를 보여주셨는데 저는 멀미가 났습니다. 내려서 마시멜로우를 구워 먹고 군고구마도 먹었습니다. 혼자 와서 야무지게 다 챙겨 먹는 제가 좀 웃기고 대견했습니다. 내려서는 뿔소라 색칠하기를 하려고 했는데 다들 안 하고 가버려서 저 혼자 2개나 색칠할 수 있었습니다. 돌고래 투어 사장님과 잠깐의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 마을이 해 넘어가는 게 예뻐서 해넘이마을이라 불린다고 했습니다. 12월 30,31일에 해넘이 축제를 한다고 했습니다. 곧 사장님께서 알려주신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산방식당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막걸리를 시키면 수육을 주신다

온밀면을 먹을까 했는데 역시 시그니처를 먹어야겠다 싶어서 냉밀면과 막걸리를 시켰습니다. 활엽수 사장님이 알려주신 꿀팁인데, 막걸리를 시키면 작은 수육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다 먹지는 못 했지만 쫄깃한 면발이 참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원래 맛이 있고 없고 잘 느끼지 못하는 스타일이라 맛을 평하는 일이 잘 없는데(특히 면 종류는) 맛있었네요. 수육은 차가워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5시 34분쯤 해가 진다고 해서 해넘이를 해넘이 마을에서 보고 싶었는데, 구름이 많아서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근처 카페에 갔습니다. ‘감저카페’라는 곳이었는데요. 제주도에서는 고구마를 감저라고 한다고 합니다. 옆에는 갤러리가 있었는데 김용원 작가의 개인전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좋았습니다. 엽서를 2장 샀습니다. 거침없는 붓질.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었는데, 밑그림을 붓이 벗어나더라도 괜찮아 보이는 그 손짓이 그렇습니다. 동물들은 어찌나 잘 묘사되어 있는지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15세 김용원 작가의 작품들


음료를 마시고 여러 공상들을 하다가 활엽수로 이동했습니다. 캐리어를 찾고 3번의 시도 끝에 택시를 잡았습니다. 택시기사님과 여러 얘기를 나눴습니다. 제가 [제주에서 돈 제일 많이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여쭤보니 [사기를 쳐야지]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니 그런 거 말고….라고 말씀드리니 [일류사기꾼이 되면 돈 많이 벌 수 있어. 뭐든 일류가 되어야 해.] 저는 택시기사님한테 [어떻게 다들 일류가 되겠어요?]라고 반문했습니다. [우리 아들이 일류야. 핸드볼 국가대표야.] 역시 끝은 자식 자랑입니다. 그나저나 대단하지 않나요? 진짜 검색해 보니 진짜 핸드볼 국가대표이셨습니다. 키가 192cm라고 하십니다. 괜히 일류가 되라고 하신 게 아니네요.


이어 씁니다. 여기까지는 일찌감치 메모를 해두었는데, 이제부터는 기억을 더듬어서 써야 합니다. 아. 택시에서 내려 숙소에 발을 들였습니다. 집이 상당히 작아서 당황했습니다. 짐을 풀고 거실에 나와 앉으니 스탭과 게스트가 말을 걸었습니다. 대충 나이, 사는 곳, 오늘 뭐 했는지 등의 질문이었습니다. 곧 연박을 한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고 거실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우르르 들어온 사람들이 소파에 앉기 시작하고 곧 포트럭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묵는 숙소는 제가 제주에 온 기간 중 유일하게 포트럭을 하는 숙소였습니다. 꽤나 피곤했기 때문에 일찍 들어가려고 했으나 다들 나쁜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아 꽤 오랜 시간 거실에 남아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몇 명의 게스트를 써보겠습니다.


안양에서 온 K와 C는 서로 중학교 친구입니다. 인스타그램을 교환했더니 DM이 옵니다. 저는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요. 감당하지 못할 선택을 또 해버렸습니다. 저는 또 냉소적으로 행동하네요. / 천안에서 유치원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는 U와 N과 S를 만났습니다. S는 저보다 한 살 어렸는데 저는 그 애가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맑고 건강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 홍천에서 온 M은 제 전남자친구를 닮아 깜짝 놀랐습니다

새벽까지 담소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피곤했는지 코를 자꾸 고는 것 같아서 중간중간 깼습니다. 26일은 이렇게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별일 없었습니다. 다음날은 용머리해안에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다른 계획은 없었습니다.

                    

내가 아이들의 편지를 부러워하니, 특수교사인 S가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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