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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름모 Jan 04. 2024

[12/28] 미음과 이응이 많았던 하루

6일 차

어제 늦게 잤더니 아침에 매우 피곤했습니다. 8시 30분쯤 일어나서 대충 정리를 하고 일찍 씻었습니다. 자기 전에 U와 J와 L경장님이 천백고지에 갈 계획을 세우길래 같이 가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오후에 E언니를 만나기로 해서 좀 늦을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10시 15분까지는 짐옮김이 서비스를 이용해야 해서 얼른 짐을 쌌습니다. 


1100고지를 가기 위해 준비를 마치고 J의 차를 탔습니다. 닭볶음탕이 맛있는 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S가 ‘원필’이라 불리우는 남자에게 쪽지를 준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운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녀의 설렘을 보며 평균나이 27세들은 귀엽다는 말을 연거푸 했습니다. 닭볶음탕에는 마늘이 많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제주는 마늘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 제주에서는 마늘을 마농이라고 합니다. 제주에는 미음과 이응이 많아요. 밥을 먹고 우리는 천백고지를 향해 달렸습니다. S는 2세대 아이돌 노래를 틀었습니다. 좋은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올랐습니다.

천백고지

천백고지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습니다. 제주의 땅에는 유채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산으로 올라가니 눈이 쌓여있었습니다. 눈과 숲 구경을 하며 구불구불한 도로를 올라갔더니 천백고지에 도착했습니다. 천백고지에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한라산이 보였습니다. 한라산을 눈으로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우리는 눈싸움을 했습니다. 어제부터 쭉 지켜봤는데, 제 생각에 U는 L경장님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L경장님도 U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밝은 U와 L경장님은 꽤 잘 어울렸습니다. 그들의 후일담이 궁금해졌지만 모르는 채로 이렇게 남겨두는 것도 꽤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썰매도 탔습니다. 자연 눈썰매장이라 불릴만한 곳이었습니다. 언덕 앞에서 썰매 파는 아저씨는 색깔별로 구비된 썰매를 대여해주고 계셨습니다. 오천원을 주고 썰매를 대여서해는 언덕길을 오르고 올랐습니다. 오르는 길에 서로 눈을 뿌리기도 하고 힘들다며 한숨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얼마 만에 타보는 눈썰매인가요. 20대가 된 이후로 타 본 기억이 없습니다. 30대를 맞이한 L경장님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제 미래 같아서 괜히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다들 썰매를 미친 듯이 타는데 저는 체력이 부족해서 중간에 숲길 구경을 다녀왔습니다. 키 큰 나무들과 눈 구경을 했습니다. 돌아오니 J는 고작 한 번 와봤다고 언덕길에 레벨을 부여한 뒤, 마지막으로 높은 언덕에서 썰매를 타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노래를 들으며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두 명씩 짝을 지어 썰매를 탔습니다. 저와 S는 중간에서 발라당 뒤집어져서 엉덩이로 썰매를 끌며 끝까지, 끝까지 내려갔습니다. 눈밭에서 뒹군 것이 정말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꽤 즐거워보인다

천백고지 투어를 마무리하고 J와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J는 오늘이 제주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L경장님 차를 타고 L과 교사 3인방이 가는 빈티지샵에서 내리기로 했습니다. 거기에서 택시를 타고 위미로 갈 예정이었어요. E언니와의 약속은 3시로 미루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양해를 구한 뒤 택시를 탔습니다. 가는 길에는 당이 떨어져 초코바 하나를 먹었고 곧 좀 졸았습니다.

E언니를 만났습니다. 며칠 전에 봤다고 이웃 주민 같더군요. 같이 짬뽕을 먹고 언니에게 생일 선물을 줬습니다. 카드를 미리 못 써서 그 자리에서 쓴 뒤 전달했습니다. 언니와 C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언니는 A, B, C라는 남자 셋 중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요, 제 눈에는 전혀 고민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니는 C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진진처럼 언니도 B나 A를 선택할 수도 있는 노릇이죠. 그게 세상이니까요. 밥을 먹고 어리석은 물고기에 가고 싶었는데 문을 닫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쉬웠지만 다른 카페에 갔습니다. 커피를 한 잔 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언니랑 이야기 나누는 게 새삼 편해졌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누군가를 만족시키려 하는 제 습관이 언니와 있을 때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E와 위미에 왔다

커피를 다 마시고 언니가 제 게스트하우스까지 차로 데려다주었습니다. 518 도로가 결빙으로 막혀 어차피 가야 하는 길이라고 언니가 말해줬지만 저는 여전히 너무 고마웠습니다. 차를 타고 가며 우리가 외로움과 괴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언니가 이별 후 비를 맞으며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마음이 속상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한 시간이 좋았습니다. 게스트하우스 근처 주유소에서 내려 함께 담배를 피우고 헤어졌습니다. 언니가 저를 꼭 안아줬고 저도 그렇게 했습니다. 언니와 헤어진 이후 편의점에 가서 초코바와 음료를 산 뒤 게스트하우스로 출발했습니다. 캐리어 옮김 서비스를 하니 정말 편하더군요.


코코코게스트하우스는 꽤나 먼 곳에 있었습니다. 들어가니 고양이밭이었습니다. 여기서 분명 고양이가 튀어나왔는데 곧 다른 곳에서도 고양이가 튀어나왔습니다. 선반 위에도 고양이가 있고 탁자 위에도 의자 위에도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다 다르게 생겨서 구별하기도 쉬웠습니다. 방을 안내받고 짐을 푼 뒤 카페동으로 이동했습니다. 괜히 이것저것 끄적이다가 따뜻한 물을 마셨습니다. 기타가 있어서 눈독을 들이다가 다른 게스트들이 방으로 모두 돌아간 뒤 뚱땅뚱땅을 시작했습니다. 


제주에 와서 기타를 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기뻤습니다. 김사월의 노래를 연습하다가 녹음을 하고 넬의 노래도 연주했습니다. 혼자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니 행복했습니다. 통기타 소리가 좋았습니다. 여유롭고 따뜻했습니다. 그 시간을 돌아보니 참 좋았던 것 같네요.

정수기 위에 올라가 있어 물을 조심조심 떠야한다
기타

방에 돌아와서는 이런 저런 정리를 하고 책도 읽고 싶었으나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양치도 못 하고 잠들어버렸습니다. 여기저기로 많이 이동하고 썰매도 타서 몸이 죽어버렸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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