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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름모 Jan 04. 2024

[12/29] 친구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7일 차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으려고 카페동으로 이동하니 윤사장님이 계셨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어제 저녁에 혼자 기타 치셨죠? 기타 소리 한 번 들려주세요]라고 하셨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나왔던 거라 정신이 없어서 기타를 치지 못했는데 그게 내심 아쉬웠습니다. 밥을 먹고 얼른 준비를 마친 뒤 나왔습니다. 꽤나 추웠지만 전 꼭 치마를 입고 싶었습니다. 스타킹도 검은 것만 가져와서 신지 않았습니다. 숙소를 나서서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었습니다. 오늘의 일정은 어리석은 물고기에 가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세화를 천천히 걸으며 떡집에서 떡도 사 먹고 문구점도 가고 네컷사진도 찍었습니다. 꽤 잘 나와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분명 11시 30분쯤 나온 것 같은데 12시 34분 버스를 타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102번 급행 버스였습니다. 제주 버스 시스템이 몇 년 새 꽤 발전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버스를 타서는 졸았습니다. 몸이 약간 뻐근하고 개운하지 않아서 노래를 들으며 쉬었네요.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했더니 위미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해서 어리석은 물고기를 향해 걷는데 갑작스럽게 책방을 만났습니다. 독립서점은 서점 주인의 메모를 보는 게 별미입니다. 빈티지샵도 같이 있었는데 12월 31일 자로 문을 닫는다고 전부 50% 세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살까 고민했지만 짐이 많아지는 게 힘들 것 같아 깔끔하게 포기했습니다. 2분 정도 더 걸으니 어리석은 물고기를 드디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주에 온 이유가 딱히 있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꼽자면 이곳이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물고기. closed가 아니길 간절히 빌며 다가갔더니 open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문을 열었습니다.


아름다운 공간

보헤미안. 보헤미안. 에스닉한 내부와 고양이 한 마리가 저를 반겼습니다. 짐을 내려놓고 메뉴판을 받았습니다. 따뜻한 짜이와 호떡을 주문했습니다. 짜이 냄새와 달달한 냄새가 곧 내부를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팔찌 제작을 하시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 그 공간이 참 예뻤습니다. 여러 색의 실들이 나무 선반에 꽂혀 있습니다.

태어나 먹어본 짜이 중 1위 / 호떡 중 1위

곧 호떡과 짜이가 준비되었습니다. 호떡! 그 호떡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제주에 와서 여러 음식들을 먹었지만 그만큼 맛있었던 게 없습니다. 바나나와 치즈와 조청의 조화처럼 느껴졌는데 아무렴 좋습니다. 따뜻하고 맛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그 호떡을 먹으러 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셔서 [옛날에 제주에 왔을 때 같은 숙소에 왔던 사람이 알려줬다]고 했습니다.. 사장님은 [팔찌를 만들었다고 했냐,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냐]고 물어보셨고 저는 [팔찌를 만들며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사장님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뜨개모자를 쓰고 짙은 인아웃 쌍꺼풀을 가지셨습니다. 웃는 모습이 아름다우셨습니다. 나이도 말씀해 주셨는데 60대 중반이셨던 것 같아요. 호떡을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여행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항상 이유를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이유도 그렇지만 무언가 하나를 할 때마다 왜 이것을 하는지 무엇을 위해 하는지 어떤 목적을 위해 하는지 같은 것들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그런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첫날밤이 꽤나 고달팠는데요. 첫날의 일기를 보면 그런 이야기들이 주로 쓰여 있을 것입니다. 왜 여기에 왔지? 뭘 찾으러 왔지? 왜 왔지? 그런 이유들이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일단 낯선 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사장님께서는 [대한민국의 문제예요. 절대 친구 탓이 아니에요]라고 말해주셨습니다. 무언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하고 또 그 무언가는 어떤 무언가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 환경말입니다.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아이들로 크도록 하는 건데요. [자아가 강한 사람들은 그걸 부수죠.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찾아 소리를 지르고 내면을 탐구해요. 친구도 그런 한 걸음을 걸은 거예요. 너무 잘했어요. 잘했다고 자신을 쓰다듬어 주면 돼요.] 아. 나 여기 잘 왔구나. 내가 나다운 삶에 한 걸음 다가간 거구나. 이유 없이 목적 없이 그냥 쉬는 시간이 나서 제주에 온 것이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거창한 이유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런 생각을 했나 봅니다. [다 도망 오는 거예요. 도망쳐도 돼요. 멋지게 말하고 싶은 사람은 여행이라고 하고 조금 더 솔직한 사람은 도망이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도망 오는 거구나. 다른 사람들도 도망온 거구나. 그래도 되는 거였구나. 이 쉬운 걸 이 당연한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곧 짜이를 챙겨서 팔찌 만들기를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종종 반감이 들었지만 여기에서는 옮고 그름을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의식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사람은 의식적으로 행동할 때도 있고, 무의식적으로 행동할 때도 있는데 그것은 모두 자기 자신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꽤나 착한 척하는 제가 언제나 싫었는데요, 그것도 그냥 저였군요.


곧 팔찌 색깔을 고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물음을 달가워하시지 않을 걸 알면서도 [몇 개까지 고를 수 있나요]하고 물어봤습니다. 역시. [그런 거 생각하지 마세요. 틀은 없어요. 지금 이 순간 끌리는 색. 마음이 편해지고 보면 행복해지는 색깔을 마음껏 고르세요. 어디서 가서도 6개를 고르라고 한다고 해서 6개 고르지 마세요. 내가 4개만 고르고 싶으면 4개만 고를 거예요! 하고 말하세요. 나답게 하세요.] 저는 제가 ‘초록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사장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 좋은 색깔을 고르라고 하셨기 때문에 초록색을 다른 색들과 동일한 선상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처음에 고른 색깔은 밝은 잿빛 색이었습니다. 지금 보니 약간의 분홍색이 섞여있네요. 그때는 흰색에 가까운 회색으로 보였는데요. 희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그 색이 눈길을 끌어 처음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두 번째 줄 오른쪽에 있는 세 가지의 살구색을 선택했습니다. 가장 오른쪽에 있었던 진한 분홍색. 다른 실타래와 다른 종류여서 끌렸는지, 색이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그 색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바로 왼쪽에 있는 연한 살구색과 더 연한 살구색. 마지막으로는 반짝이는 노란색 실을 선택했습니다. [그만할래요]라고 말씀드리니 [자기 자신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세요. 진짜 끝?] 하고 물어봐주셨습니다. 나를 아끼는 방법을 닮은 물음이었습니다. 저는 여기까지 하겠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렸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는 사장님이 팔찌를 만드시면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뭔가 아등바등하며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회사 이야기를 하다 보니 S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못 하는데 열심히도 안 하시니까 밉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장님은 저에게 자격지심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생각이 부정적이라고도 말했어요. 고졸인 것도 다 네가 선택한 거라고, 사실 아무도 너에게 아무 말하지 않았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냥 나 연약한 사람이야, 연약한데 이렇게 바득바득 살아가고 있어. 너희들은 왜 그래? 하는 티를 내고 싶어서, 상처를 합리화하고 싶어서 자기 방어를 하는 겁니다. 그냥 솔직해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지적욕구가 너무 크게 부풀어있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공부하고 싶냐고 물어보셔서 처음엔 인문학이라고 공부했다가 곧 과학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과학 중에서도 물리학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진짜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은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 자리에서 생각난 것은 물리학이었습니다. 사장님은 서울에 가면 발로 뛰며 물리학 강좌를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지적 욕망의 풍선이 너무 크고 빵빵하게 부풀어있어서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한이 되고, 다음 세대에게 그 한이 옮겨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2024년의 계획을 세울 때는 꼭 이유 없는 재밌는 공부를 넣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년이 안되면 내후년에라도요. 사장님은 공부를 5개나 하셨다고 합니다.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N과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더 강한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아빠보다 제가 더 강한 유전자입니다. 과학적으로 제가 살아남은 거니까요. 그래서 아빠와 제가 닮았다고 하더라도 저는 인식하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제가 [돈을 많이 바라지도 않는다]고 했더니 [친구는 거짓말하고 있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자꾸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하시니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입고 온 셔츠와 조끼, 치마가 ‘돈’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곧 [나쁜 게 아니다]하셨습니다. [친구는 돈이 있어야, 준비가 되어있어야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야. 착한 사람, 돈 없어도 되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 거짓말하지 마세요.]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하고 갑자기 무언가가 사고 싶을 때 살 수 있는 돈이 있으면 더 잘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동의했습니다. 저는 여태 돈보다 다른 게 좋다고 말하고 다녔는데요. 맞아요 사실 그냥 그렇게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돈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제가 무언가 하고 싶을 때 돈이 없는 상황은 질색이에요.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런 상황에 놓여 본 적도 없어요. 그렇지 않도록 제가 만들었으니까요. 어릴 적 궁핍하지는 않았지만 절약하는 부모님의 습성이 저에게 발현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장님께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나답게 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어렵게 생각하는 건 모두 남 탓을 하기 위함입니다. 미움을 받기 싫어서 그런 것입니다. 인정하고 솔직하게 편하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노력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노력도 억지로 하는 겁니다. 노력 안 해도 되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내가 러닝을 했다고 내일도 꼭 러닝을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내일은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걸을 수도 있는 거죠. 저는 꽤 강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상담을 두 번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니 사장님은 마음이 힘들 때마다 상담을 찾는 건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하셨습니다. 어쨌든 죽을 때까지 데리고 가야 하는 나니까, 자꾸 의지하기보다는 한 번 자신을 돌아봤으면 이제 자기 자신과 함께 해결해 나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모습으로 바뀌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해요?] 그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가면을 쓸 바에 오롯한 나 혼자라고 살라고 하셨습니다. 가면을 쓰면, 가짜로 살면, 거짓되게 행동하면 언젠가 헤어지게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나답게 살고, 그걸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만 곁에 남으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말해주셨습니다. 그냥 만나고, 같이 취미생활하고, 여행 다니고, 가끔 섹스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너무 정형화된 틀에 내 사랑을 맞추려고 했습니다. 그냥 이렇게 사랑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애인과 언제 헤어졌냐고도 물어보셨습니다. 3월에 헤어졌다고 했습니다. 안 보고 싶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네]라고 대답했어요. 이런 제가 저도 놀랍습니다. 제가 그 애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날이 왔구나 싶어서요. 새삼 놀랍습니다. 연락이 몇 번 왔지만 다시 만나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왜냐고 물어보시는 말에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 한 것 같아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보고 싶지 않냐는 말을 들은 게 무언가 마음이 좋았습니다. 이어 사장님께서는 인간의 시작과 끝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간은 시작! 하면 끝!으로 마무리하고 다신 안 보는 것처럼 군다고. 그냥 세상을 살다가 어쩌다 보고 싶으면 연락을 하고 닿으면 다시 만날 수도 있는 거고 그런 건데 매번 인간들은 관계를 매듭짓고 뒤돌아보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장강명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서 남자가 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인간만이 시간을 한쪽 방향으로만 체험해. 볼펜이 길쭉한 모양이기 때문에 왼쪽이 시작, 오른쪽이 끝이라고 자연스럽게 인식하는 거지. 사실 그게 아니야.]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빠르게 나눴더니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눈물이 자꾸 차올랐습니다. 특히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던 말들과 / 일과 좋아하는 것을 함께 영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저를 자극했습니다. 사장님은 팔찌를 예쁘게 만들어 제 왼쪽 손에 채워주셨습니다. 평소 잘 찾지 않는 색, 그때 당시에 눈에 들어왔던 색들이 담긴 이 팔찌가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장님께서 상담은 한 번이면 됐고, 다음번에는 수다 떨러 놀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산티아고에 가기 위해 저녁에는 설거지일을 하신다고 하시더군요. 아. 이 여성은 진짜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행복한 마음을 안고 가게 문을 함께 닫았습니다. 사장님은 저를 안아주셨고 저도 사장님을 안아드렸습니다. 별 말은 안 했지만 서로의 행복을 비는 마음이 에어드롭처럼 전달되었습니다.

내 고함을 다 받아준 위미항

문을 나서서 해변을 향해 무작정 걷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그래, 잘했어. 잘 왔다. 너무 좋은 선택 했다.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걸었습니다. 위미항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리에서 소리를 지르고 해를 바라봤습니다. 얽매이지 않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위미항을 떠나며 여러 개들을 봤습니다.


그 저녁의 시간들

 90분가량 버스를 타고 세화에 다시 도달했습니다. 사리곰탕이 먹고 싶어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세화 총총이라는 술집에 갔습니다. 피트 있는 위스키를 추천받아 일본 위스키를 온더락으로 마셨습니다. (방금 이름을 찾아보니 요이치네요) 혼자 여행을 온 여성분과 남성분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중근’이라는 이름을 가진 칵테일도 한 잔 마셨습니다. 시나몬 스틱과 꿀 향이 더해져 정말 맛이 좋았습니다. 안주도 좋았어요. 58000원이 나왔습니다. 광교에 사는 29살 화장품 연구원 여성분은 2023년이 고비였다고 했습니다. 9시 30분이 되어 숙소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가게를 나오며 ‘고비였으니까 이제 곧 내리막일 거예요’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택시가 잡히지 않아 버스 막차를 타기 위해 바쁘게 걸음을 옮겼습니다. 다행히 201번 버스를 탈 수 있었고 안전하게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카페동에 사장님과 스텝분이 계셨습니다. 몸을 녹이며 여러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기타 이야기가 나왔더니 사장님이 어김없이 [기타 소리 한 번 들려주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래도 불러드릴까요?] [네 좋아요!] 어제 연습했던 [김사월 - 너무 많은 연애]를 연주했습니다. 사장님은 제 모습을 촬영하셨습니다. 목소리가 예쁘다고, 남들 앞에서 노래할 때 빛난다고 자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행복하고 따뜻했습니다.

그 저녁의 소공연

방에 들어가 지난 일기들을 좀 정리하고, 코코코에서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습니다. 또 양치하지 못하고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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