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차
조식으로 떡국을 먹었습니다. 1월 1일에 떡국을 먹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날씨가 조금만 미워서 다행이었습니다. 전기 자전거를 빌려서 오늘은 우도봉에 갈 작정이었습니다. 아침을 잘 정리하고 어제 가까워진 M과 길에서 만나면 인사하자는 아침 인사를 나눴습니다. 어제와 다른 방향으로 해안도로를 달렸습니다. 우도봉이 한눈에 보이는 검멀레 해수욕장에 자전거를 세웠습니다. 해안동굴을 보러 내려갔습니다. 검은 모래 해수욕장이라 검멀레인가 봅니다. 삼양이 생각났습니다. 2년 전 출장 겸해서 삼양으로 혼자 여행을 갔었는데. 제가 혼자 여행을 간 걸 보고 부러워하던 전남자친구는 혼자 제주여행을 가겠다며 나섰다가 바람을 피우고 돌아왔습니다. 그냥 그랬던 기억이 갑자기 나네요. 멋진 풍경을 봤습니다. 지나가던 부부 사진을 찍어드리고 저도 한 장 건졌습니다. 혼자 또 네컷사진을 찍었습니다. 화장이 잘 됐거든요. 조랑말을 봤습니다. 사람들이 조랑말을 타고 산을 올라가는 체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키지 않았습니다.
근처 유채꽃밭이 보이는 카페로 가서 우도 땅콩 디저트와 커피를 취했습니다. 2023년 회고를 시작했습니다. 회고를 하다 마주친 많은 작년의 나날들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카페를 나와 우도봉으로 향했습니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어 다시 한번 전기자전거에게 고마웠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자전거에게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우우웅도]입니다. 맘에 듭니다.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도봉에 도착하니 꽤나 빗줄기가 거세졌습니다. 우산을 주머니에 넣고 비니를 썼습니다. 흐린 우도봉을 올라갔습니다. 괜히 사람들이 도전하지 않는 경사진 길로 걸음을 옮겼는데, 점차 경사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하산하시는 아저씨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아, 저는 송전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중간에 가다 보면 등대로 빠지는 샛길이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니 제 어깨를 두드리시며 ‘난 도민이야’라고 하셨습니다. 오. 신빙성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샛길은 또 저를 인디아나 존스로 만들었습니다. 풀을 헤치고 말똥을 피하며 숲길로 들어왔습니다. 푸른 숲길이 펼쳐지니 또 제주에 온 게 실감 났습니다. 3년 전쯤 혼자 제주에 왔을 때 4.3 공원 가는 길에 만났던 숲길이 떠올랐습니다. 걷다 보니 등대에 도착했습니다. 이제는 운영되지 않는 옛날 우도등대가 있었습니다. 1906년에 설치되어 97년간 운영되다가 노후되어 2003년 11월에 폐지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97년이나 같은 일을 한 등대에 이상하게 마음이 쓰여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뒤 고생했다고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곧 가족 관광객이 와서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등대에게 전해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구) 등대 옆에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우도 등대가 있습니다. 등대 박물관처럼 운영되고 있기도 해서 둘러보았습니다. 그곳에서 “한용태”씨가 받은 인사발령통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1956년에 유인등대로 변한 뒤, 한용태 씨를 기공수로 임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등대 근무를 하는 나를 상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건물 불이 꺼졌습니다. 비가 와서 문을 닫으려고 한다고 관리인 아저씨가 말씀하셨습니다. 거의 다 봤던 참이라 럭키!라고 생각했습니다. 관리인 아저씨랑 같이 하산하며 조금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무례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등대지기는 공무원인가요?]라고 여쭤봤습니다. 그렇다고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등대 얘기를 나누다가 헤어졌습니다. 하산해서는 짐을 보관해 주신 슈퍼 아주머니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주머니는 어떻게 내려가면 되는지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오늘도 몇 번이나 친절함을 마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우도봉 근처에 있는 조용한 카페에 갔습니다. 가장 사람이 없을 것 같고 가장 고즈넉한 카페를 찾고 찾아 향한 거라 가면서도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주차하고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좌식 카페였습니다. 컨버스 하이 딱 한 켤레만 갖고 온 저를 또 한 번 돌아보았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갔는데 매장 안의 사람들이 다 저를 바라보는 것 아니겠어요? 심지어 웃으면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주목받은 저는 당황했습니다. 그러다 제 다리를 스치는 무언가를 느끼고 아래를 쳐다보니 커다란 진돗개가 저를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나를 본 게 아니었구나 + 강아지 귀엽다 는 마음을 가지고 주문을 한 뒤 자리를 잡았습니다. 2023 회고를 이어서 쓰고 있었는데 가족 손님들이 진돗개를 두부라고 불렀습니다. 알고 보니 그 강아지의 이름은 흰둥이였습니다. 두부는 그 손님들 집 강아지 이름이었습니다. 사장님은 흰둥이와의 놀이를 위해 간식을 테이블마다 가져다주셨습니다. 흰둥이는 간식을 먹기 위해 가족 손님들 주변을 맴돌며 손, 코, 앉아 등을 보여주었습니다. 제 간식을 그 가족들에게 드렸습니다. 저는 흰둥이에게 앉으라고 하고 싶지도 손을 달라고 하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그래도 혹시 몰라 3개 정도의 육포를 빼두었습니다. 곧 가족 손님들이 그들의 “두부”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저는 남은 간식을 그냥 흰둥이가 먹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글을 계속 쓰고 있는데 숙소에서 “저녁에 방어 먹을 사람을 구한다. 인당 3만 원 주류 별도”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원래 회를 찾아먹지 않는데 제주도 방어는 먹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5시 50분까지 숙소로 가겠다고 말씀드린 뒤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카페를 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배실배실 웃으며 자전거를 타는 M을 마주쳤습니다. 첫날에도 저 사람을 봤는데 자전거를 탈 때 이가 다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자전거를 타더군요. 귀여워서 몇 번 놀렸습니다. 숙소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은 뒤 횟집으로 갔습니다. 횟집 이름은 [회양과 국수군]. 정말 웃깁니다. 하지만 음식은 우습지 않았습니다. 인당 3만 원에 이런 구성이라니. 방어회 + 특수부위 + 회국수 + 무슨 생선튀김 + 매운탕 + 방어머리까지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저녁을 먹으며 서울에서 이렇게 먹으면 13만원 나온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잘 모르지만 공감이 되었습니다. 숙소 직원분들이 아닌 게스트끼리 함께하는 식사였습니다. 저는 이 식사자리를 두고두고 기억할 것 같습니다.
올해 기준으로 25살 A,29살 M,33살 C,47살 D,56살 여성 E 그리고 제가 함께 했습니다. C와 E는 모녀로, 함께 우도에 여행을 왔다고 했습니다. 25살-56살, 31년의 세월을 두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주 많은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56살 여성 E의 첫째 딸 이야기였습니다. 23살, 군인과 결혼한 E는 딸을 셋 낳았고, 그중 첫째가 장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관련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 함께 그 책을 검색했습니다. 이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E가 20대 3인방에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으셨습니다. 셋 다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인천에서 온 A는 저와 한 살 차이가 나고 치과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상형 이야기를 하다가, A는 귀여운 남자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E가 그 이야기를 아주 재밌게 듣고 계시길래, 제가 냉큼 [이런 남자는 만나지 마라, 이런 거 있나요?] 하고 물어봤습니다. E는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허세 있는 남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지나온 삶들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E는 딸, 그러니까 C를 절대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계속 저와 A와 M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늘은 어쩌면 아픈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저에게도 그렇듯이 56세의 E에게도 그렇겠지요. 그리고 보통 그런 이야기들은 딸에게 할 수 없는, 위대한 어머니가 아닌 그저 한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E가 C를 쳐다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는 자꾸만 마음이 시큰거렸습니다. E는 꽤 하드코어 한 시집살이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첫 딸 이름을 “나라”로 지었다고 하셨습니다. 시집살이도 없고 힘든 일도 없고 우울도 없는 좋은 나라에 살라고 그렇게 지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사랑이 너무 애틋하고 순수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요… 하고 조용히 내뱉기도 했습니다. 이어 그녀를 닮은 딸을 볼 때마다 [조금만 아파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아프지 않을 수는 없는데, 그걸 E도 아는데, 아파하는 딸을 볼 때마다 조금만 아파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데 곧 M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M은 엄마 생각이 난다고 했습니다. 저도 곧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M이 울기 시작하고 M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김해에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교육직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저와 M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자그맣고 아기자기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C, D, E는 그녀가 인기가 많을 것 같다고 추측했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그녀는 솔직한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지난 이별과 사랑, 결혼에 대해서요. M의 행복을 잠시 바랬습니다. 회국수와 방어머리가 나왔습니다.
곧 저는 화장실에 다녀와서 [저는 인기 없을 것 같나요?] 하고 농담을 했습니다. 술을 마셨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그냥 자존감을 올리고 싶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상형을 물어보시길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전적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바다를 보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과 사귀는 것이 어렵다], 는 등의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저보고 바다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냐, 여쭤보시기에 저도 모르게 [빠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해버렸습니다. 그녀들은 가만히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지난밤들 제가 바다를 보고 들었던 생각들, 이번 비양도 배에서 느꼈던 생각들, 살기 싫다는 마음이 묻어있는 생각들을 뱉어버렸습니다. A가 울었습니다.
E는 제 얘기를 듣고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곧 시집살이를 하고, 아이 셋을 키우며 우울증이 와 쥐약을 먹고 죽어버리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여전히 C를 절대 바라보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쥐약을 먹으려고 비닐을 뜯었는데 그 영롱한 초록색 빛 쥐약을 보고 [이걸 먹으면 초록색으로 몸이 변할 것 같아서 싫다]고 생각하며 먹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와하하 웃으면서도 눈가에 눈물을 매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와 돌아보니 내가 그 때 죽어버렸다면 우리 세 딸들이 얼마나 더 아파하면서 컸을까 싶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D도 중학교 때 죽어버리려고 저수지에 갔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러다 물에 빠져 못나게 죽기 싫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작은 방에 백합을 수백 송이 놓고 가만히 숨을 쉬면 자는 것처럼 죽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이후에 그런 꿈을 꾼 적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저보고 물에 빠지지는 말라고 하셨어요. 퉁퉁 불면 안 예쁘다고. E의 남편은 군인이라 익사한 사람을 건져봤는데, 그 모습이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고 하셨습니다. D와 E는 그런 이야기들을 하며 저보고 한 번 살아보라고 하셨습니다. 기질이 자신들과 닮았다며, 앞으로 살아가는 게 여전히 힘들겠지만 그래도 살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아픈 것도 있지만 좋은 것도 있더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들꽃… 들꽃 얘기도 했습니다. 사실 살아오면서 "계속 살다보면 좋은 일도 생겨” 와 비슷한 말들을 수백 번 어쩌면 수천번 들었겠습니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저는… 시간을 건너 40대의 나, 50대를 나를 미리 만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 처음 가보는 횟집에서 술도 별로 마시지 않은 채로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D와 E도 울었습니다. C는 E의 쥐약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울고 있었습니다. A와 B도 자꾸만 눈을 훔쳤습니다. 우리끼리 “우도 방어회 오열팀”이라 이름 붙이며 깔깔 웃었습니다. 1월 1일을 이토록 좋은 여성들과 좋은 대화를 하며 보낼 수 있음에 벅차오르는 밤이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M과 함께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J라서 2024 계획을, 저는 P라서 2023 회고를 각자 작성했습니다. 그녀와 저는 비슷한 일을 하고 비슷한 곳에서 왔기 때문에 서울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 생겼습니다.
1월 1일. 해는 못 봤습니다. 상관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아직 364개의 해가 남아있으니까요.
사실 1000개도 넘는 해가 남아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