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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Aug 14. 2019

클래식 라디오를 듣는 시간  

초보자도 쉽게 듣는 클래식 FM  


두 번의 육아휴직 기간에 나와 항상 함께했던 것이 있으니, 바로 아침에 듣는 라디오 방송이다.

아침에 일어나 부엌으로 나오자마자 일단 아이패드에 설치된 라디오 앱을 실행시킨다. 일어나는 시간에 따라 흘러나오는 방송이 조금 다르지만 채널은 항상 클래식 FM으로 고정되어 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클래식 애호가이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어릴 적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며 연주하려고 들었던 음악 외에 따로 작곡가 별로 찾아 듣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사실 학교 다닐 때 배우는 정도의 유명한 작곡가와 대표곡 말고는 잘 모른다.


사회 초년생 때 큰 맘먹고 고가의 BOSE 오디오를 구입한 기념으로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클래식 100선'이라는 굉장한 이름의 8장짜리 CD를 산 적이 있는데 사실 몇 번 듣지도 않고 그대로 보관 중이다.

클래식에 대한 책도 여러 권 읽었는데 읽을수록 어렵다는 생각만 들었다.

한 곡에 제목이 여러 개가 붙거나(내가 알고 있는 그 곡 이름이 이게 아니야?), 작품번호를 표기하는 방법도 다르고 작품에 얽힌 이야기와 작곡가의 생애까지 알려니 쉽지 않았다.

당시는 스마트폰이 막 나오기 시작했을 때라 스마트폰 음악 스트리밍 앱에서 나오는 최신 가요와 당시 선풍적으로 유행했던 EDM 같은 장르 음악이 훨씬 듣기 편하고 신이 났다. 결국 클래식을 가까이하고자 했던 나의 열망은 거품처럼 사그라들었고 항상 클래식에 대한 로망은 있지만 좀처럼 다가가지 못하고 있던 셈이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출산을 하고 아기와 함께 조용하고 적막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루해 틀어놓기 시작한 클래식 FM이 의외로 너무 재밌는 것이었다.

라디오 진행자는 알아듣기 쉬운 해설로 곡을 소개해주었으며, 방송을 꾸준히 듣다 보니 반복해서 나오는 곡은 이제는 귀에 익기 시작했다.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사연을 소개해주기도 하는데 특히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울컥해져 하던 일을 멈추고 가만히 진행자의 멘트와 음악에 귀 기울이고 있을 때가 자주 있다.


오전 시간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은 오후 프로그램에 비해 더 활기가 있고 대중적인 클래식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진행자마다 색깔이 뚜렷한 편인데 오전 7시 ~ 12시 까지 방송되는 세 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한다.

오전 7시~9시까지 방송되는 <출발 FM과 함께>는 김승휘 아나운서가 진행하는데, 이 남자 아나운서의 외국어 발음이 정말 아름답다. 언젠가 프랑스어로 된 곡을 소개하는데 부드럽고 유려한 그 발음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아이들이 늦게까지 자는 주말에 혼자 커피 한잔을 놓고 방송을 듣고 있으면 귀가 호강한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 수 있다.

오전 9시~11시까지 방송되는 <김미숙의 가정음악>은 배우 김미숙 씨 특유의 안정되고 차분한 진행이 매력적인 프로그램이다. 첫째 육아휴직을 하던 2014년 무렵에는 <장일범의 가정음악>이라는 타이틀로, 음악평론가 장일범 씨가 진행했는데 그때도 톡톡 튀는 목소리와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묻어나는 진행이 좋아서 열심히 들었다. 이 방송에서는 좀 더 대중적인 클래식 음악을 소개한다. 동요나 가곡이 나오기도 하고, 영화음악이 흘러나올 때도 있다. 클래식을 쉽고 편하게 듣기에는 정말 이만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초보자도 얼마든지 즐겁게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11시부터 12시까지, 딱 1시간 방송되는 신윤주 아나운서의 <KBS 음악실>은 클래식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게 알아갈 수 있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너는 피아니스트가 직접 스튜디오에 나와 라이브 연주를 들려주는 '살롱 드 피아노'.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연주자' 입장에서 곡에 대해 설명을 듣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연주를 하는지를 들으며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음악을 들으며 행복한 시간. 이 방송을 듣고 출연한 연주자의 공연에 다녀온 적이 있을 정도로 내게는 '클래식 선생님' 같은 프로그램이다.


왜 음악을 듣느냐 하면, 음악은 사람의 기분을 좌우하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

신나는 음악, 차분한 음악, 이런 단순한 리듬의 특성에 따라 기분이 변하기도 하지만 그 음악을 언제, 누구와 들었는지, 어떤 기분으로 들었는지, 왜 들었는지 하는 경험들이 그대로 묻어 나오기도 한다.

오늘 아침 <김미숙의 가정음악>에서는 오프닝곡으로 동요 '반달'이 나왔다. 오프닝 멘트는 방학을 맞아 외국에서 집에 놀러 온 언니와 조카들이 반가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활의 리듬이 깨져 불편하다고 느끼는 순간, 라디오에서 어릴 적 언니와 함께 듣던 음악을 듣고 나니 이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멘트가 종료된 후 나오는 음악 '반달'.

푸른 하늘 은하수~ 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어릴 적 나도 내 여동생과 함께 손바닥 맞추는 놀이를 하며 참 많이도 불렀다. 동생과 지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면서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복직을 하면 출근 준비하랴, 아이들 등원 준비하랴 아마 지금처럼 클래식 FM을 들을 여유가 없을 것이다. 틀어놓는다고 해도 지금처럼 한 곡 한 곡 마음에 담아 가며 들을 수는 없겠지.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휴직 기간의 큰 기쁨 중 하나가 바로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듣는다면 음악에서 행복과 여유를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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