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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Sep 26. 2019

유전자의 힘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얼굴 생김새나 하는 행동에서 남편이나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남편의 유전자를 더 많이 물려받은 모양이다.

첫째는 깔끔한 성미며 왼손잡이인 것까지 아빠를 쏙 빼닮았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기 좋아하고 뭔가에 빠지면 그것만 파고 들어가는 약간의 외골수적인 면은 나를 닮은 듯한데, 식성을 비롯해 여러 가지 면은 아빠의 성향을 더 닮았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내심 둘째는 나를 더 닮아주기를 바랐다.

그래야 균형이 맞을 것 같기도 했고, 성격이나 성향이 나를 닮았다면 공감대를 많이 형성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둘째가 지금보다 더 아기였을 때는 보는 사람마다 나를 닮았다고 했다. 쌍꺼풀 없는 눈매며 잘 웃는 모습이 엄마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둘째 역시 커갈수록 남편의 얼굴이 드러난다.

지금의 남편 얼굴을 보면 잘 모르겠는데 사진첩에서 찾아낸 남편의 아기 시절 사진과 비교해보니 OMG, 똑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닮았다.


 

왼쪽이 둘째, 오른쪽이 남편의 아기 시절



둘째가 조금 못난이처럼 나온 사진이긴 하지만 저렇게 눈을 찡긋하며 웃고 있으니 남편이 아기였을 때와 판박이처럼 닮았다. 심지어 내 스마트폰에는 자주 찍는 인물의 이름을 저장해두면 사진에서 자동으로 얼굴을 인식하여 이름 태그를 달아주는 기능이 있는데, 남편의 사진에 둘째 이름을 달아놓았다.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숱이 많고 꼿꼿하게 위로 서는 타입이라서 더운 여름을 지내며 짧게 잘라주었는데 여기서 머리까지 길러주면 딱 남편 사진 속 아기와 똑같이 생길 것이 뻔했다.

묘한 것은 첫째와 둘째는 정말 다르게 생겼는데 어떻게 둘 다 아빠를 닮은 거지...?


얼마 전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난 둘째를 데리고 방에서 나오려다 깜짝 놀랐다.

요즘 우리는 안방 침대 밑에 이불을 깔고 네 식구가 모두 한 방에서 자는데, 남편과 첫째가 똑같은 포즈를 하고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남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얼굴은 가려주었다


오른쪽 팔을 쭉 뻗고 돌아누워 긴 베개를 안고 다리를 걸치고 자는 것 까지 동일한 자세로 자고 있었다. 둘 다 땀도 많고 열이 많아서 겨울에도 옷을 가볍게 입고 이불도 덮지 않고 잠을 잔다. 나는 여름에도 이불을 덮어야만 잠이 오는 사람인데.

게다가 첫째는 아빠의 비염까지 물려받았다.

미세먼지가 심해지는 날이면 콧물, 기침, 결막염 증세가 나타난다. 유난히 미세먼지와 꽃가루가 심했던 지난봄에는 천식 증세까지 나타나서 한동안 고생을 했다.

남편은 침대 이불 패드만 갈아도 먼지 때문에 기침을 하고, 털 있는 동물은 가까이하지도 못한다. 출근 가방에 항히스타민제를 상비약으로 갖고 다니는 수준이다. 알레르기야 유전성이 강하므로 첫째의 체질은 무척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반면에 나는 알레르기 체질이 아니고 환경변화에 민감한 편도 아닌데 아직 건강상 특이할만한 점이 없는 둘째는 나를 닮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유전자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남편과 내가 만나서 만들어낸 우리의 유전자가 반절씩 들어간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많은 생각이 든다.

외모는 둘 다 아빠를 많이 닮았고 체질이나 성향은 반반씩 닮은 것 같다.

자라면서 외모는 많이 변할 테니 아마 둘 중에 한 명은 외모도 나를 닮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보면서 가끔 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내가 아이들 나이였다면 지금 가장 뭘 하고 싶을까, 뭘 먹고 싶을까,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아이들 눈높이에서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재밌고 놀고, 맛있는 거 먹고, 재잘재잘 아무 얘기라도 떠들고 싶겠지?

내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 아마 나처럼 생각할 것 같다.

아이들은 점점 더 자랄 일만 남았고, 오늘이 가장 어린 시절의 나날이다.

오늘 저녁에도 웃으며 시간을 보내고 재잘재잘 이야기 나눠야지. 나의 분신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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