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데 쿠바의 길 위에서
산타 이피헤니아(Santa Ifigenia) 묘지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밖으로 나선다. 도보로 35분 정도라고 하니, 평소의 컨디션이라면 도시 여기저기를 기웃거려가며 걸어서 가볼 수도 있는 정도의 거리지만, 아침부터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 때문에 그늘 밖으로 고행의 길을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11월의 마지막 날 아침인데도 말이다.
산티아고 데 쿠바는 아바나에서 동남쪽으로 760km 정도 떨어져 있고, 적도에는 350km가량 더 가까워지는 곳인 만큼, 떠오르자마자 머리 꼭대기에 매달려 활활 불타오르는 태양의 맹렬함을 더 힘들게 견뎌내야 한다.
그냥 걸어서 가다가는 오늘 저녁 신문에 한국에서 온 순교자 부부로 부고기사가 뜰 거야. 택시를 타고 가자.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북적대는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 마르떼 공원의 큰 도로변에서 택시 탑승을 시도해 보지만, 이 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산티아고 데 쿠바는 좁은 언덕길이 대부분이어서인지 유독 오토바이가 많이 다니고, 그나마 지나가는 승용차라도 (쿠바 어디든 그렇듯) 택시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서, 땡볕에 끓어오르는 아스팔트 위로 한 발짝 나가서 눈치껏 손을 흔들어 봐야 하는 것이다.
정 안 되면 오토바이 택시 두 대로 아내와 나눠 타고 달리는 수밖에 없겠지만, 영 불안한 심정이 들어서 매캐한 매연 속에서 운전자들과 눈맞춤을 계속 시도한다.
한참 동안 이어진 도전의 결실로, 마침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오던 합승 택시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추었다. 그 택시를 보고 나는 잠시 혼란스러워졌는데 그 감정을 설명하기는 무척 어렵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 엄습한 어지러움증은, 한참의 시간을 되짚어 올라가 최초로 자동차를 본 사람의 그것과 비슷한 것이리라 짐작되므로, (1909년 <런던 그래픽 뉴스> 기사를 참고하여) 구한말 역사의 한 대목을 재구성해보자.
“오늘 종로에 나갔다가 기괴한 물건을 보았네. 사람들이 무서워서 길에 쓰러지고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난리도 아니었어.”
“대체 어떤 것을 보았기에 그러시오?”
“커다란 소리를 내면서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쇠로 된 말이었네. 어찌나 놀랍고 신기하던지.”
이처럼 자동차를 본 적이 없는 이에게 그것을 설명하려 하는 경우를 가정해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가 않다. 그러니까 직렬 6기통 엔진이니, 광폭 타이어, 자동 변속장치, ABS 브레이크 따위의 말은 전혀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오로지 본질을 가리키는 말만이 남을 텐데, ‘사람이 올라타 달리고 서는 기계’, 이것이 전부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오직 그것이, 그 순간 내게로 온 것이다.
자동차의 순수한 목적에 기여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안전과 편의, 안락한 승차감, 환경, 미적 만족을 위한 부분은 모조리 떨어져 나간, 오직 달리는 것만을 그 목적으로 하는 기계. 폐차장에서 고철로 압축되기 직전에 사악한 소서러가 흑마술을 부려 숨을 불어넣은 것 같은, 차마 죽지 못한 폐자동차에 가까운 택시 한 대가 나의 탑승을 기다리며 눈앞에 서 있다.
쿠바에서 흔하게 보는 올드카 중에서도 이 정도의 상태인 자동차는 처음이라, 이대로 얼마 못 가 차를 뒤에서 밀어야 하거나 아예 한 떨기 버섯구름을 피우며 폭발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울 수준이다.
태양이 더욱 뜨거워진다. 이 차를 보내면 또 언제 우리를 구원할 택시를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이 자동차에, 아니 자동차의 이 순결한 본질에 탑승을 하자.
그런데, 자동차의 존재론적 본질에 동참하는 첫 단계, 사람이 올라타는 부분에서부터 다소간 문제가 생긴다. 뒷좌석의 문손잡이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뻥 뚫린 구멍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No puedo abrir!”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진 공백의 공간을 허망하게 헤매던 손으로 문을 통통 두들기며 문을 못 열겠다고 외치자, 택시기사가 옆 자리에 앉은 다른 승객에게 무언가 지시를 하달한다. 그러자 조수석의 아주머니가 힘겹게 몸을 돌려 안쪽의 철사줄을 힘껏 잡아당기고, 텅하는 소리와 함께 이제 문이 삐그덕 열린다.
파상풍을 암시하는 튀어나온 스프링과 녹슨 철골을 피해 가며 겨우 뒷좌석에 앉고 보니, 이것은 즉물적으로 ‘자동차는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택시 기사가 무언가를 조작할 때마다 각 부품의 작동방식과 역할을 쉽게 감 잡을 수 있게 되는데, 기어는 어떻게 연결되어 엔진의 동력을 바퀴로 전달하는지, 자동차 유리문은 어떤 원리로 오르내리는지를 직접 눈과 귀를 통해 배울 수가 있다. 물론, 기사 발치에 매달린 프로펠러처럼, 왜 저 물건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지 알 수 없는 부품들도 있지만.
자동차 회사의 전시관 같은 곳에 설치된 절반만 투명하게 만들어진 자동차 모델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 이 경우는 실제 도로 위에서 작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자동차공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는 꽤 도움이 될지 모른다.
십여 분을 타고 묘지공원을 향해 달리면서 나는, 인류 최초의 자동차이자 동시에 최후의 자동차인 것 같은 이 택시가, 화석연료가 아닌 다른 영적인 어떤 에너지로 달려가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이제 우리는 희망봉을 헤매 도는 유령선 <플라잉 더치맨>호와 같이, 이 유령 택시에서 내리지 못하고 영겁의 시간 동안 산타 이피헤니아 묘지 주변을 빙글빙글 헤매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쓸모없는 망상에 이르렀을 무렵, 택시는 무사히 우리를 묘지 입구에 내려다 주고, 다시 털털털 길을 달려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