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트빌리시, 4월 9일 공원에서
이미 눈치채신 분들께 변명을 먼저 늘어놓자면 -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분들께 귀띔을 던지고 시작하자면-, 위에 적어놓은 이 토막 여행기의 제목은 사실 나의 것이 아니다. 보스니아 출신의 소설가 사샤 스타니시치의 작품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 (Wie Der Soldat Das Grammofon Repariert)>의 제목을 훔쳐다 살짝 고쳐 쓴 것이다.
저 위대한 작품의 표제를 감히 이런 졸고에 가져다 붙이는 용기를 낸 것은, 그저 저 매력적인 작명이 샘이 나도록 부럽고 탐이 나서 만은 아니다. 내가 아래에 쓰고자 하는 이야기 역시 저 소설 속의 장소와 그리 멀지 않은 곳, 그러니까 동구권(東歐圈: 동쪽 구라파 권역)이라는 이름으로 지리적 동질성을 갖는 곳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 게다가 고작해야 일이 년의 차이로 현대사의 연대표 상에서도 거의 같은 지점, 그러니까 지구 상 이곳저곳의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들이 연이어 붕괴되던 시기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 그리고 군인들의 손에 쥐어진 채 이야기에 등장하는-또는 등장시키지 않기로 한- 무기가 러시아의 군인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1947년에 개발한 자동소총(AK-47)이라는 점 등의 유사성이, 두 이야기를 접붙이려 드는 나의 만용에 대한 여러분들의 판결에 정상 참작이 될 것이라 변호해본다.
그렇다면, 그 시절에 그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나. 1989년에 접어들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결속은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연방의 그늘 아래에 있던 많은 공화국들이 이제 그만 러시아의 손을 놓고자 했고, 러시아는 조금이라도 더 그 손을 쥐고 있고 싶은 미련에 시달렸다. 고작 몇 달을 교제한 어린 연인들의 이별에도 술에 취해 울고 불고, 서로 뺨을 때리고 침을 뱉는 소란으로 밤 골목이 시끌벅쩍한데, 하물며 국가 간의 절교가 순조롭게 조용히 진행되었을 리 없다. 연방 공화국 여기저기서 소요사태들이 연달아 벌어지기 시작한다.
아내와 나는 조지아의 주요 관공서와 미술관이 늘어서 있는 루스타벨리 거리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삼십 년 전의 봄에 우리는 각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떠올려 보려 애썼다. 퍼뜩 대답이 생각나지 않는 우리와는 달리, 아마도 조지아인들의 입에서는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되는 수많은 장면들이 구연되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들의 기억과 기록을 빌려, 1989년 4월의 조지아로 돌아가 보자. 온기를 머금은 바람이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를 오가기 시작하며 기나긴 겨울이 끝났음을 알릴 즈음, 트빌리시의 시민들이 루스타벨리 거리로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많은 대로와 광장들이 있었겠지만 시민들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그곳을 향한 이유는, 아마도 거기에 그들의 하소연을 직접 들어야 할 소비에트 연방의 정부청사 건물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길 건너편, 그러니까 루스타벨리 7번지, 조지아 현대미술관 앞에 서서 맞은편 8번지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는 구(舊) 국회의사당 건물을 멀리서 조망해본다. (굳이 구(舊)라고 표기를 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여행했던 2018년 10월에는 국회의사당이 이곳이 아니라, 조지아의 제2도시 쿠타이시(ქუთაისი Kutaisi)에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는 헌법 개정을 거쳐 이듬해인 2019년 1월에 다시 트빌리시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이 건물은 2018년에도 중요한 정부기관의 거점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고, 정부를 향한 많은 시위들도 이곳의 정문과 계단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이 건물은 다른 CIS 국가에서 볼 수 있는 구소련 시대에 지어진 정부청사 건물과 다르다. 공공건물 어디서나 보이는 당당한 풍채는 과시하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고 말할 만한 그 허풍스러운 견고함이나 위압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담하고 따뜻한 색조를 풍기는 이 아름다운 건물의 전면부 파사드는, 올드타운에서 자주 보았던 오래된 집들의 기둥 많은 발코니를 닮아있다.
다만, 그날 트빌리시 시민들이 바라본 건물의 모습은 오늘과 조금 달랐을 것인데, 지금은 긁어내어 사라지고 없는 소련의 국장이, 건물 정면 높은 곳의 페디먼트에 동그랗게 새겨져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이 거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노골적으로 선언하고 있었다.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수십 년간 이어진 소비에트 연방의 폭정을 이제 그만 끝내고, 자신들의 고향의 이름 뜻 그대로 ‘따뜻한 땅’을 다시 회복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인간이 어떻게 자신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을 그리워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곳을 향해 목숨을 건 항해를 떠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조지아인들은 어떻게 그들이 독립국이었던 시절을 기억하고 그곳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일까? 이들의 조국이 러시아의 10월 혁명으로 결성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에 (당시에는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 합쳐진 자캅카스라는 공화국의 국호를 달고) 원년 구성원으로 가담한 것이 1922년의 일이었으니, 무려 육십칠 년의 세월이나 지나는 때인데 말이다. 그 이전의 날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죽어 사라지거나 어렴풋한 기억이나마 우렁차게 외칠 목청에 힘이 다 빠져버렸을 텐데. 사람들은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올 그 손님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바라며 겨울의 냉기가 채 가시지 않은 거리로 몰려나온 것이지 않은가.
따라서 그곳, 루스타벨리 거리는 혁명을 끝내기 위한 반혁명을 궐기하는 또 다른 혁명의 현장이었다. 그러니 쉽게 예측되는 이후 사건의 향방은, 혁명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폭력을 압도하는 더 큰 폭력의 등장이어야 마땅하겠으나, 두 개의 큰 파도가 정면으로 부딪쳐 잔잔한 물비늘로 숨을 죽이기라도 한 듯, 시위는 역설적으로 평화롭게만 진행되어 나갔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그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화염병이 아니라 고작 작은 촛불 하나씩 뿐이었던 것이다.
조지아의 독립을 요구하는 반(反) 소비에트 시위였으므로, 거리 반대편에는 당연히 소비에트의 군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위대가 늘어날수록 군인의 숫자도 늘어나면서, 트빌리시 시내에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 조만간 이 루스타벨리 거리가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릴 것이라는 것을 예견한 조지아 정교회의 총주교가 시위대 앞으로 나섰다.
이토록 가슴 아픈 장면에 흥미롭다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큰 죄책감이 불러오는 일이긴 하다만, 역사의 유사한 장면이 변주되는 순간을 발견하고도 전혀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위선을 말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내가 기억해 낸 이 장면의 원작이, 러시아의 ‘피의 일요일’이니 말이다.
1905년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성난 군중들 앞에 나선 사람도 러시아 정교회의 신부였지 않은가. 폭동의 기운을 감지한 가폰 신부는 군중의 분노를 잠재워보고자 황제에게 전할 청원서를 들고 겨울 궁전을 향해 행진을 하자고 제안했다. 짜르의 군대가 평화롭게 노래를 부르는 그들을 향해 총과 대포를 발사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말이다.
루스타벨리 거리에 나선 조지아 정교회의 총주교는 아마도 역사의 이 장면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그런 비극만은 막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위에 나선 시민들에게, 이제 충분히 뜻이 전해졌을 테니 그만 해산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간절히 권고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파괴적이고 무자비하게 자신의 갈 길을 간다. 총주교가 아니라 예언자 본인이 강림하였더라도 그 흐름을 막아 세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민들은 그 후로도 며칠 동안 물러서지 않고 머리수를 불리며 합창의 목소리를 키워만 나갔다.
그리고 4월 9일에 이르러, 시위대를 감시하고 있던 소비에트 군대에게 다소간 상충되어 보이는 두 가지의 명령이 한 번에 하달된다.
첫째, 절대 총을 발사하지 말 것.
둘째, 반드시 시위대를 해산시킬 것.
만약, 인간이 컴퓨터에게 명령을 내리는 경우라면, 이 두 가지 명령은 더블 앰퍼샌드(&&)로 연결될 것이다. 즉, 첫 번째 명령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두 번째 명령도 수행되지 않으면서 에러로 기록된다. 그러니까, 시위대에게 총을 발사하지 못하고 군중에 밀리면서, 결국 시위를 해산시키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투철한 무데뽀(無鐵砲) 정신으로 무장한 소비에트 군인들은 저 융통성 없는 컴퓨터와 달리 인간적인 유연성을 발휘하여, 두 명령을 동시에 완수할 생각의 길을 결국 찾아내고야 만다.
‘그래, 총 말고 다른 걸로 시위대를 진압하면 되겠군!’
그래서 그들은 AK-47 소총을 잠시 넣어두고, 야전삽을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특별히 시위대의 머리와 얼굴을 노려 휘둘러 때리고 내리찍었다. 지옥, 그 지옥 같은 현장에서 스무한 명이 삽에 맞아 죽었고 수백 명이 다쳤으며 그 대부분은 여성들이었다. 수많은 시위 참여자들의 증언뿐만 아니라 당시 촬영된 많은 비디오에서 확인된 바, 군인들은 시위대를 소산시키기보다는 걸음이 느린 약자들을 사냥하듯 쫓아가 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움직였다.
아니다. 어쩌면 그들은 처음부터 소비에트 특수부대(스페츠나츠, spetsnaz)가 편애하는 무기인 참호용 야전삽을 꺼내어 들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시건방진 것들이 감히!’ 하고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마치 축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며칠 째 같은 소리만 반복하며 외쳐대는 저 조지아인들의 입을 틀어막는 데에 이만한 무기가 없으리라 확신하며, 삽의 날을 날카롭게 벼려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것도 아니다. 애초에 당으로부터 내려온 그 두 가지 명령은 야전삽을 사용하여 원시적인 야만성으로 공포를 심어주라는, 구체적 지령이 분명하게 적시된 소비에트식 암호 지령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비극 이후, 조지아인들의 저항은 오히려 더욱 거세져만 갔고, 이년 뒤인 1991년 4월 9일, 마침내 소비에트 연방에서 탈퇴하여 독립을 선언한다.
“그는 마치 거위를 잡듯이 자기 몸 뒤로 감추고 있던 축음기의 나팔 모양 확성기 부분을 붙잡아 끌어내더니 문지방으로 들어 올린다. 그의 커다란 손에 들린 축음기가 마치 장난감 같다. 어서! 제군들! 그가 왼손에는 세아드 아저씨의 축음기를, 오른손에는 반짝반짝 광을 낸 칼리시니코프 소총을 들고서 소리친다. ‘어서, 어서, 어서’ 하는 소리가 계단에 울리고, 무장한 사람들이나 사슬에 묶인 사람들이나 모두 그 소리를 듣는다. 세상에서 머리가 가장 큰 그 장교가 픽업을 레코드판 위에 올려놓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시건방진 게 감히! 그는 고함을 지르더니 축음기를 내리치고 발로 찬다. 제군들, 내가 당장 고치겠다! 그는 단추를 눌러보고 스위치를 켜보고 픽업을 흔들어보고 레코드판을 살펴보고는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나팔에 총신을 찔러 넣는다.”
- 사샤 스타니시치,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 中
루스타벨리 거리의 국회의사당 건물 건너편에 있던 알렉산더 공원은 이후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4월 9일 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루스타벨리 거리를 따라 트빌리시 오페라 극장까지 둘러본 우리는, 다시 걸음을 돌려 내셔널 갤러리를 잠깐 관람한 후, 4월 9일 공원 안으로 들어가 본다.
내셔널 갤러리 건물이 큰 도로의 차음벽 역할을 해주면서 공원은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한가한 목요일 오후, 공원에는 살아 있는 사람보다 살아있는 척하는 조각상의 수가 더 많다. 그래,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할 뿐, 이 공원은 별로 특별할 것이 없다. 야전삽을 휘두르며 쫓아가는 군인도, 피를 흘리며 달아나는 여자 아이도,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공원 안에 가득한 많은 조형물들을 하나씩 감상하며 천천히 공원을 따라 내려간다. 녹지는 좁은 길 하나를 건너 조지아의 시인 이름을 딴 기오르기 레오니제(Giorgi Leonidze) 공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우리의 앞에는 아직 걸어야 할 길이 한참 허락되어 있다.
이 글은 여행을 다녀온 2018년을 시점으로 작성되었다. 그로부터 8개월 후인 2019년 6월, 이 거리에서는 또 한 번의 반(反) 러시아 시위가 유혈사태로 이어졌다. 조지아 출신의 러시아 하원의원이 조지아 의회를 방문하여 의장석에서 러시아어로 연설을 한 것이 조지아인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경찰과의 충돌에서 시위자 수백 명이 다치고, 두 명은 실명을 하기까지 했다.
장미 혁명 이후 조지아는 꾸준히 EU와 NATO의 가입을 갈망해왔으나, 전쟁까지 불사해가며 이 지역의 영향력을 놓지 않으려 드는 러시아가 여전히 제1교역국일만큼 쉽게 그 그늘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2022년 3월의 지금, 우크라이나를 징벌하려 드는 러시아는 마찬가지의 명분을 꺼내어 들어, 이번에는 남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조지아에 또다시 침략 전쟁을 벌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미 캅카스 산맥 너머로 수차례 군대를 내려보낸 전적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