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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신 케이 Feb 23. 2022

인생 강연에 참석당한 적이 있습니까

스토리포토그라피100

스토리 75 - 인생 강연에 참석당한 적이 있습니까


Fuji Simple ACE ISO 400 / Nippori, Tokyo, Japan - Oct


옛날에 한창 혈기 왕성하던 시절- 일본 오사카에서 2개월쯤 살았던 적이 있다.

교포분이 운영하시던 민박집에 2달치를 비용을 한꺼번에 내고서, 뭐 한국에서 할 백수생활을 그냥 오사카에서 했었다. 일본어를 공부한다던가, 알바를 한다던가 등의 아무런 계획도 없이 정말로- 하루 종~일 자전거만 타고 돌아다녔다. 저녁때가 되면 근처 큰 마트에서 도시락과 맥주를 사 가지고 집에 돌아와 영화나 책을 보며 먹었다. 꿀꺽꿀꺽- 캬아-! '맥주는 참 시원하다.'

그리고 늦잠 자고 또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고의 반복 생활. 참- 자랑도 아니고 오히려 한심한 이야기지만 아무튼 그랬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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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어머니의 지인이었던 한국인 이모가 근처에 사셨었는데-

어느 날 이모가 어디 좀 같이 가자고 연락이 왔다. 내가 먹고 싶다던 콩국수도 만들어주시고.. 자전거도 구해주셔서 그동안 감사했기에 알겠다고 하고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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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조금 나와있는 작은 동네의 한 호텔이었다.

1층의 강연장으로 들어가니 오- 웬걸 한국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큰 행사 같은 분위기. 이것저것 나눠주고 과자와 음료 간식 팸플릿 등도 주고 그랬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리고 슈트를 잘 차려입은 한국 아저씨가 단상 위에 나타나며 드디어 강연 같은 것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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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로 시작해서 현재의 성공한 삶에 대한 이야기-

보편적인 인생에 대한 얘기... 아~ 삶이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노후는 어때야 하는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대한 얘기... 그리고 어떤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 다이아몬드? 본인의 높은 등급? 과 다른 높은 등급? 회원? 들의 사례? 에 대한... 엥? 여기서부터는 뭔가 이상했다.

갑자기 무슨 차트가 펼쳐지며-

다이아몬드와 골드 등급을 획득하면 월 소득이 이 정도다! 등급을 높여가기 위해서는 지금은 어렵지만 열심히! 활동하면 조만간! 금방! 골드나 다이아몬드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월 3천만 원까지도(정확히 불로소득 개념으로) 수익이 생겨 현재 본인과 같은 멋지고 안락한 인생을 살 수 있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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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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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런 게 뉴스에서 보던 다단계라는 거구나! 이건 다단계 종교가 아닌가? 우와~ 신기하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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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강연장을 바로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는 근처의 카페로 가서 커피 한잔을 시켰다.

"후 당할 뻔했다. 하하."

사실 그 강사? 아무튼 영업하시는 분의 말솜씨에- 또 그 회사의 완벽한 불로소득 시스템과 '나도 이룰 수 있다-!'라는 뭐랄까 종교의 포교 혹은 최면 비슷한 느낌의 분위기에 빨려 들어갈 뻔했다.

하지만 당시엔 돈버는 것보다 하고 싶은 다른 것들이 많았기에, 누군가 설계해주는 삶의 코스가 그냥 별로였다. 그래서 더 듣지않고 강연장을 나갔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하하.

-

-

2시간쯤 지나서 다시 호텔로 갔다. 이모가 나를 보더니 화를 내신다-

"얌마 어딜 갔었냐! 네가 그렇게 중간에 나와버리면 어떻게 하냐! 얼마나 좋은 강의였는데... 으휴 참!" 강연장 중간자리에 혼자 20대 초반의 청년이 앉아있었어서 그런지 나갈 때 눈에 많이 띄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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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나도 한 30년 넘게 살아봤는데, 평생 뭐가 뭐가 뭔지 모르는 게 인생 아닌가 싶다. 하하.

여하튼- 오사카 백수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화다.


@ 벌써 8년이 지났는데 지금쯤 무슨 등급이실까. 일본에서 먹은 그 콩국수는 엄청 맛있었습니다~ :)



프레임 안에 프레임을 나눌 때, 중간 비율로 나눠버리면 대체 그 사진이 뭘 말하고 싶은 지, 주제가 뭔지 모르게 되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사진에 글(이야기)을 추가해서 '주제가 뭐가 뭔지 모르겠는 것' 그 자체를 하나의 주제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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