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신 케이 Feb 21. 2024

도대체 정말정말정말 귀찮은 것은

스토리포토그라피100

스토리 91 - 도대체 정말정말정말 귀찮은 것은


Rollei 35 TE Fuji C100  / Nishikasai, Tokyo - Aug


나는 여행 갈 때 기념품 사는 시간과 행위 자체를 무~진~장 귀찮아한다.

그냥 마지막 날까지 늦잠 자고 여유롭게 빈둥대거나, 가장 괜찮았던 카페에 다시 한번 가서 멍-때리거나 하는 게 제일 이상적인 여행 마무리인데-!

이게이게~ 학생이 아닌 사회생활을 하는 입장이 되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왜냐고? 몰래 여행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이나 가려고 하면 한 달 전부터 부서장한테 허락을 받아서 계획 문서를 올려야 하고(당시는 보안 관련 당직이 포함된 직종이었기 때문이다.) 또 업무 파트너와 서로 휴가를 조정해야 해서 결국 내 여행 스케줄이 그대로 공개되어 버린다.

.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이 부서, 저 부서에 금세 소문이 나버린다(지금 생각해 보니, 저에게 그렇게나 관심이 많지 않을 것 같지만 또 없지는 않았었네요. 감사합니다ㅎㅎ) 그렇게 소문이 나게 되면,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반은 농담인 듯한데 뼈가 있는 이런 부탁들이 들려오게 된다.

.

"오 케이 씨 이번에 시카고 가신다면서요? 제가 거기서 살았었는데 돌아오기 직전에 시카고 후드티를 못 사 가지고 왔지 뭐예요~ 혹시 하나 사다 주실 수 있나요?? 돈은 드릴게요!^^"

“케이 군! 간 김에 면세 담배 3보루만 부탁하겠소~~ 돈은 줄 테니-!!”

“오오 미국 간 김에 시카고 명물 천안호두과자(?) 한 봉지만 사다 줘요~ 돈은 줄 테니-!!!”

"@#$% #$%!@#(&^$%^@#$ 돈은 줄 테니-^^!!!!!!!!!!!"

.

후후.... 아직 여행 가지도 않았는데 자꾸 들으니 속이 턱- 하고 막힌다. 아마 나보고 "사회생활하는 사람이 인정머리가 참 없네요. 그 정도 부탁은 기왕 해외여행 가는 김에 들어줄 수 있는 건 아닌가요?"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귀찮게 여겨지는 것에 대해 나 나름대로의 이유가 충분히 있다. 

내일은 출근이군요. 아아~ 그렇군요. - 귀국길 공항에서-

       첫째로, 난 후드티 따위는 필요도 없는데 파는 곳을 찾고 시간을 할애해서 사다 줘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말 그대로 휴가인데.. 업무를 떠안게 되는 느낌이다. 


    둘째로, 저런 류의 부탁을 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는 것이다. 면세담배, 술, 기념품. 등등등 이게 한두 사람을 넘어 조직이 크다 보니 은근히 정말 많아진다. 이쯤 되면, 차라리 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흠.


    셋째로, 수고를 무릅쓰고 막상 부탁했던 것들을 사다 줬다고 치자, 돈 걷는 것도 엄청 귀찮다. 별로 비싸지도 않으면 달라고 하기도 뭐 하고 귀찮은데 여행 갔다 온 김에 그냥 인심 좀 써버릴까라는 고민도 하게 돼서 (속으로 귀찮음과 인심과, 확실한 경제적 관념과... 등등 하아. 혼란스럽다.) 여행 다녀와서도 피곤함의 연속이 된다. 분명 휴가였는데 말이다. 


    넷째로,  "당신의 부탁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나의 여행 철학이 이러쿵저러쿵요러쿵하니~ 이해해 주세요. 어떻게 보면 저는 참-모자란 사람입니다." 하면서 일일이 거절하는 것이... 생각보다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다(일전에 한번 시도를 해봤습니다만,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것 같더군요. 하하.) 상대방의 기념품 부탁을 거절할 때마다 이렇게 길게 설명하기도 뭐 하고, 짧게 잘라내기도 뭐 하고, 그렇다고 부탁하지 말라고 게시판에 'OO팀, 케이 군의 여행 철학' 벽보 같은 걸 붙일 수도 없고 참~ 여행 가기 전부터 이래저래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역시 학생이~ 최고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여하튼간에 일단 나도 조직 속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은 기꺼이 기쁘게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 같이 나눠먹을 수 있는 초콜릿이라던가 열쇠고리라던가 여행지 맛집 정보라던가 등은 공유하면 사무실 분위기도 훈훈- 좋아지기도 하고. 경험과 나이를 먹긴 먹었는지~ 여행 일정 중 하루를 아예 기념품 구매로 짜야 된다는 ‘생활 지혜’도 알게 되었고 말이다. 하하.


@ 아아 기념품 부탁하신다고 해서 제가 블랙리스트 같은 걸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다 =)



카메라를 항상 가지고 다니면 좋은 이유! 특별한 존재와 눈 마주침이 있을 때 바로 꺼내서 찰칵!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이 마주친다는 건 왠지 손을 스치는 것만큼 조그만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이전 10화 실망한 스탠퍼드 아저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