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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90 - 실망한 스탠퍼드 아저씨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즈음- 대학교 방학 기간에 샌프란시스코에 3주 정도 머물렀던 적이 있다. 쭈욱 샌프란시스코에만 있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무료해져서 기차를 타고 근교로 나가보기로 했다. 무작정~ 무작정~ 가다 보니 오! 그 유명한 스탠퍼드 대학교가 있다. 2010년대 초반, 스탠퍼드 대학교가 한국 내에서 사회적인 이슈로 핫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뭐,, 근처이기도 하고 어떤 곳인지 궁금했기에 가보기로 했다.
일단~ 학교에 도착해 캠퍼스 안내지도를 보는데 와- 정말이지 무지막지하게 넓었다. (원래는 말 목장이었다고 한다.) 다음 학기 수업을 등록할 때 수업이 있는 건물 간의 거리 체크는 무조건 필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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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스탠퍼드 대학교도 마찬가지지만, 대학교에는 딱 ‘대. 학. 교!’만이 가지고 있는 밝은 에너지의 분위기가 있다. 뭐랄까 어떻게 보면 현실적이지 않은, 그러나 아주 멋진 미래를 꿈꾸는 '애매한 어른'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캠퍼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대학생들을 구경하는 것은 지금도 꽤 즐겁다. 보기만 해도 나 또한 밝은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하기도 하고 또 스스로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돼서 흐뭇해지기도 하고 하하. 여하튼 간 대학교란 참 신비한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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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가 너무 넓어서 쉬엄쉬엄 구경하며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수도원 같은 건물에서는 기도도하고(앞으로는 제발 착하게 살게 해 주세요! 농담) 학교 기념품점에서는 티셔츠도 하나 샀다. 그 'Stanford University'와 함께 커다란 레드우드 나무 마크가 가슴 한가운데 대문짝만 하게 그려져 있는 티셔츠!
그다지 별생각 없이 그냥 이쁜 티셔츠로 샀고, 남은 여행 내내 이 티셔츠를 곧 잘 입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여행 마지막 날에도 무심결에 입었다.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를 타기 위해 게이트로 가는 길. 저~ 멀리서 엄청나게 반가운 얼굴로 나를 향해(원래 이쪽으로 오고 있었지만) 다가오는 어떤 아저씨가 있었다. 착각이 아니라 나를 보고 스마일~ =) 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반갑게 쳐다보지. 왠지 말을 걸 것 같은데. 난 저 사람을 모르는데. 아닌가? 아는 사람인가..? 우리 학교 교수님인가.. 아닌데.. 하는 찰나! 결국 말을 걸어왔다.
“우와~! 스탠퍼드 대학 학생이세요!?”
눈이 참 반짝반짝한 아저씨다.
“아- 아뇨..;; 여기 학생 아닌데요…;;”
“예?…아...;; 그럼 왜…;;”하며 내 티셔츠를 바라봤다.
예술하시는 분인지 감정 표현이 잘 전달되는 사람이었다.
‘왜 남의 학교 티를 입고 있니 동문인 줄 알았잖아. 이 앙큼한 녀석아! 어이가 없네 어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당연하다. 하하) 무척이나 실망해하는 아저씨의 표정 앞에 난 엄청 머쓱해졌다. 아마도 내가 스탠퍼드 동문인 줄 착각했던 것 같다. 음.. 같은 방향인지 우린 같은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그렇게 길고 불편한 에스컬레이터는 난생처음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이상하네! 난 왜 굳이 남의 학교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녔지? 게다가 난 우리 학교의 티셔츠도 안 입는데 말이야..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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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반가움 가득 찬 기대감을 괜히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고, 아저씨 실망한 표정이 아직도 생각나기도 해서 그 뒤로는 다른 학교 티셔츠는 절대 사지 않게 되었다. 역시 유명한 학교 굿즈는 컵이나 냉장고 자석 정도가 적당하다. 뭐 그렇다고 특별히 모으고 있지는 않지만.
@ 얼마 전 도쿄의 한 술집에서 제가 나온 대학교의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너무너무 반가워서 스마일~ =) 하며 인사를 건넸습니다만. 제가 어렸을 때 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대답을 들었습니다. "아- 아뇨..;; 여기 학생 아닌데요…;;" 역시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 군요. 하하.
3차원의 공간에 점, 선, 면, 도형, 공간들이 안정적이게 어우러져 있음을 발견할 때, 수학의 기하학을 떠올린다. 일상에서 발견한 기하학적 패턴을 필름사진으로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