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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신 케이 Jun 27. 2020

선 넘은 고양이씨

스토리포토그라피100

스토리 24 - 선 넘은 고양이씨


Yashica T4 Safari, Fuji Premium 400 / Nishi-kasai, Tokyo - Mar


몇 달째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좀 쑤시고 지겨웠는데 이젠 적응도 하고 수면시간이 늘어나니 뭔가 삶의 퀄리티가 많이 올라갔다(확실히 그렇겠죠? 하하.) 게다가 방도 사무실 형태로 바꿔놓으니 업무 생산성도 높아지고 아무튼 간 꽤 괜찮은 생활을 하고 있다. 

집 앞에 큰 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의 산책길을 쭉- 따라 걷다 보면 20분 정도면 바다까지 갈 수 있다. 그래서 점심 먹고 공상이나 하면서 걷다가 돌아오고는 한다. 그런데 걷다가 보면, 아니 동네에 왜 그렇게 고양이들이 많은지. 어느 정도냐면, 어디를 가든 심지어 한쪽 눈을 감던 여하튼 간 눈앞에 보이는 모든 풍경 어딘가에 고양이 한 마리는 꼭 들어가 있을 정도이다. 그중에 내가 특히 자주 지나다니는 길에서 보는 녀석들은 무늬도 특이해서 이미 눈도장도 찍힌 상태이다. 

어느 날, 오후 업무가 한가해서 조금은 여유를 부리면서 벤치에 멍-하게 앉아있는데 눈에 익은 고양이가 나의 시야 구석탱이에 또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인사를 시도해보았다.

"쭈쭈쭈 일로 와바 냐옹 야옹 애옹 이옹 야아옹 쭈쭈쭈"

"..."

"..."

다시 시도. 이번엔 온갖 외국어로 "하이 헬로 안녕 곤니찌와 니하오 챠오 본조르노 도브뤼젠 봉쥬르 싸바? @$#%"

"..."

"..."

아~~ 이런 게 고양이 무시구나. 이야- 근데 뭔가 이전부터 느낀 거지만, 고양이의 저런 시크한 자세는 참 매력 있다고 생각한다. 

'아 시끄럽네 거-. 난 펫이 아니야. 나는 나야. 어디 인간 주제에. 흥'이라는 듯한 눈빛. 멋지다. 매력적이다.

도도, 시크, 엣지, 섹시, 당당, 주체적, 정체성, 여유, 흔들리지 않는 프레임! 고양이는 이 단어들을 다 가진 것 같다. 사실 생각해보면 딱히 나한테 피해 주는 것도 없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서로 그냥 이 동네의 그저 그런 구성원일 뿐이다. 음- 그렇군. 뭐 그다지 위아래가 없다면 상호 존중해야겠구나라는 결론으로 언젠가부터 '고양이씨'라고 부르고 있다.     


@ 근데 연애 상대도 '너 아니어도 잘 지내 걱정 마'하는 사람에게 갑자기 매력을 느끼지 않나요? 굉장히 뜬금없지만. 하하.



고양이씨가 아무리 불러도 움직이지 않으시(?)길래, 인간이 한참을 기다렸다가 찍은 사진이다. 내가 고양이에게 느꼈던 도도한 주체성을 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고양이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해버리는 식'의 주체적 행동으로써 선을 넘어주기 바랐다. 계속 상상하면서 고양이를 위치시킬 적당한 구도를 잡고 기다렸다. 그리고 상상이 실현되는 순간 재빠르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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