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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자를 위한 매뉴얼

(감사에서 살아남기)(2)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120644040


<실패한 자를 위한 매뉴얼>


법대를 다니면서 깨달은 게 있다. 법대생이건 법조인이건 법과 규정을 잘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법을 어겼을 때 어떠한 효과가 발생하는지 연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지켰을 때의 불이익과 어겼을 때의 이익을 비교하는 사람들이었다. 약속은 지켜져야 하지만, 지키지 않아도 되는 약속은 어떤 것이며, 지키지 않는 게 더 유리한 약속은 어떤 것인지 구분하는 사람들이었다.



공직생활을 하면 수 많은 매뉴얼 만난다. 요리책의 레시피처럼 이럴 땐 이렇게 해라, 저럴 땐 저렇게 해야한다고 자세히 써 있다. 그런데, 매뉴얼대로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려주지 않는다. 어떠한 방식으로 조사받고, 어느 정도 처벌받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부당한 대우와 차별적 문책에 어떻게 대응할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이미 문책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조사받을 때 느꼈던 억울함, 서운함을 물어볼 수 없다. 감사관은 감사매뉴얼을 가지고 조사를 하지만, 감사받는 사람을 위한 매뉴얼은 없다. 수 많은 매뉴얼 중 실패한 자를 위한 매뉴얼도 한 권쯤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실패는 그림자처럼 항상 삶에 붙어 있다. 문책사유가 있던 경우이건, 비위가 없다고 종결된 경우이건 감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작은 실패에 맞닥뜨린 것이다. 실패를 일부러 경험할 수는 없으니, 시뮬레이션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시뮬레이션을 하면 지난 번 감사, 문책받았던 선배, 티비에서 보았던 사건들이 떠오를 것이다. 감사받는 상황도, 그들의 입장도 조금은 더 이해될 것이다. 그들이 무슨 악의적 결단을 해서 비위를 범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실패의 매뉴얼을 읽었다고 실패를 관리할 능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실패의 매뉴얼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진 않는다. 각자 처한 상황과 받아들일 각오도 다르다. 전투가 시작되면 적은 예상과 달리 움직인다. 작전계획은 바로 무용지물이 된다. 그럼에도 군인들은 작전계획을 세우는데 최선을 다한다. 작전계획을 세우면서 많은 시뮬레이션을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작전에 대한 직관이 점점 정교해지기 때문이다.



감사는 실패의 매뉴얼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감사가 시작되면 예상대로 되지 않는 일 투성이일 것이다. 또 다시 어떠한 매뉴얼도 없는 상태에서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어가며 감사의 상황과 여러 사람들의 입장이 그려질 것이다. 머릿속에 다양한 시뮬레이션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만큼 감사에 대한 직관이 점점 정교해질 것이다.


https://blog.naver.com/pyowa/223101037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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