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서 살아남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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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비위자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듯, 실패한 사람들도 모두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성공과 실패는 선악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전쟁에는 아군과 적군이 있을 뿐 천사와 악당은 없다. 전쟁 당사국들은 모두 정의를 위한 싸움이라고 주장하고 상대를 악의 무리라고 비난한다. 전쟁 당사국들의 주장으로 보면 천사들끼리의 싸움이다. 그러니 전쟁 자체와 선악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감사를 받는 사람들을 ‘비위자’라고 한다. 감사를 받는다는 것은 ‘사실’일 뿐 거기에 어떤 윤리적 비난이나 당위가 들어가 있지 않다. 감사를 받는 것은 선악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감사관이 감사를 업무로 접근하듯이, 비위자도 감사를 업무처럼 대응해야 한다. 선악이나 정의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자존심으로 대응하면 안 된다. 감사는 선악과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못된 사람이 갑질 하는 것이 아니다. 다 ‘잘 돼라’는 조언이라고 생각하는 중에 발생한다. 을들은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니, 갑은 갑질인지 모른다. 라떼를 떠올리며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고도 스스로는 알지 못한다. 을도 진심어린 조언으로, 직장생활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다 어느 순간 선을 넘어가는, 배려를 권리로 생각하는 갑을 보게 된다. 풍선에 바람을 불고 또 불면 결국 터지듯이, 을은 웃는 얼굴로 참고 참다가 결국 한계에 다다르면 터진다. 갑질 사건이 된다. 을의 신고가 있으면 갑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을의 매복에 걸려들었다고 생각한다. 갑이건 을이건 서로 다 사연이 있다. 거기에 악당도 영웅도 없다.
부패한 사람이 청탁을 받는 것이 아니다. 청탁을 들어주는 순간 부패한 사람이 된다. 커다란 부패를 용감하게 하기보다는, 작은 부패와 부조리에 젖어 들어간다. 감사사건은 젖어들어간 부패사건이 대부분이다. 젖어들었으므로 스스로는 부패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관례와 부조리가 쌓이고 쌓이다 곪게 되고, 부패하여 결국 터지게 된다. 부패 비위자들도 태생적인 부패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감사관은 악당을 찾아내는 영웅이 아니다. 누가 악마이고 누가 천사인지는 관심이 없다. 감사관은 어떤 사실이 있었으며, 어떤 규정을 위반했는지, 비위는 어느 정도인지, 비난가능성 얼마큼인지에 관심이 있다. 이것들은 문서로 어떻게 써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이다.
감사가 시작되면 여러 등장인물이 나타난다. 감사관, 비위자, 피해자, 신고자, 참고인, 기관장. 각자의 입장이 있고, 각자의 생각이 있고, 각자의 역할이 있다. 각자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거기에 천사와 악마는 없다. 찾으려 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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