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 타닥’ 키보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감사에서 살아남기)(36)

by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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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 타닥’ 키보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감사장에 도착하면 손님을 맞듯 담당 감사관이 반겨 나온다. 친절한 목소리로 ‘여기 앉으시죠’하며 간이의자를 가르킨다. 감사관은 자리로 돌아가 목받침이 있는 폭신한 의자에 앉는다. 피조사자가 간이의자에 앉으면 감사관은 ‘편하게 얘기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한다. 이솝우화의 학이 여우에게 ‘많이 드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기울어진 대화다.



감사관의 책상은 보통의 사무용책상이다. 컴퓨터, 모니터, 키보드가 있고 서류가 쌓여 있다. 모니터에 가려 감사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가렸다기보다 책상과 모니터 뒤로 감사관이 숨겨져 있다. 필요할 때만 빼꼼하고 나온다. 피조사자는 감사관 책상 앞에 덜렁 앉아 있다. 의자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모니터에 가려진 감사관의 자리에선 피조사자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훤히 보인다. 답변하며 손끝이 긴장하는지, 다리를 떠는지 알 수 있다.



상설감사장에는 감사관이 여럿이 있다. 담당감사관이 피조사자를 조사하는 동안에, 다른 감사관은 그들대로 일을 한다. 전화를 받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커피를 마시러 나간다. 일하면서, 지나다니면서, 가끔 조사받는 피조사자를 힐끗 본다.



피조사자는 생전 처음 받는 감사관의 문답과 뭔가 싸늘한 감사장 분위기에 위축되고 멍해진다. 볼 수 있는 거라곤 모니터 뒷면과 감사관이 질문할 때 빼꼼 나타나는 감사관의 눈동자를 볼 뿐이다.



시작하자마자 감사관은 이름, 주민번호, 주소 따위를 묻는다. 이런 걸 처음보는 사람에게 답변하면서 피조사자는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된다. 잘못이 있건 없건, 참고인이건 비위자건, 피조사자다. 감사관은 답변을 강요하거나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진 않는다. 여전히 친절하다. 피조사자는 자유롭게 답할 수 있고, 심지어 답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다그치지도 않는다. 법전에 나오는 임의적인 방법이다. 조사는 언뜻 자유롭고 평등해 보인다.



피조사자는 임의적인 방법으로 답변할 수 있지만, 감사관도 임의적으로 질문할 권한이 있다. 임의적으로 조서를 작성할 권한은 막강한 것이다.



감사관은 준비해온 질문을 한다. 예상된 답변까지 계산해서 질문을 준비하기 때문에 감사관의 질문은 매섭고, 막힘이 없다. 가물가물 기억이 나지 않으면 감사관은 서류를 보여주며 기억을 되살려낸다. 피조사자는 눈감고 복싱을 하듯 어디로 날아올지 모르는 질문에 긴장한다. 당황스럽고, 어려운 질문이 날아오면 당황한다. 모니터 뒷면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한다. 버퍼링이 발생한 것처럼 정적이 흐른다. 피조사자는 감사관과 문답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감사장의 다른 모든 것은 아웃포커싱 되듯이 뿌옇게 변하고 소리마저도 문답외엔 아련하게 들린다.



답을 하면 곧이어 키보드 소리가 타닥타닥 이어진다. 감사장을 두리번거리는 것도 이상하고, 둘러보다 다른 감사관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흠칫 놀라게 된다. 피조사자는 다시 모니터 뒷면을 보며 키보드 소리를 듣는다. 키보드 소리를 들으며 ‘답변은 잘한 건지’, ‘언제 끝날 건지’ 막연한 생각이 머리를 채운다. 답을 하지 않으면 '답하지 않을 건가요'를 묻고 곧이어 키보드 소리가 난다. 키보드 소리를 들으며 다음 질문을 기다린다. 아마도 감사관은 답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질문이 계속될수록 피조사자는 점점 위축된다.



'서류 뒤적이는 소리 - 질문 - 정적 - 답변 – 키보드 소리'가 반복된다. 어느 순간 문답에 감정이 실린다. 타이핑의 강도와 속도에서도 감사관의 감정이 읽힌다. 피조사자는 말한 것이 어떻게 글자로 찍히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감사관이 잠깐 기다리라면서 문답서를 여기저기 수정한다. 피조사자는 키보드 소리를 들으며 기다린다. 감사관이 ‘다 되었다’며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프리터에서 조서가 출력된다. 피조사자는 자신의 답이 어떻게 쓰여 있는지 불안하므로 꼼꼼히 문답서를 읽는다. 말한대로 쓰여진 것은 맞는지, 다른 사람에게 불리하게 쓰여지지는 않았는지 별생각이 다 든다. 피조사자는 얼른 감사장을 나가고 싶을 뿐이다. 여러군데 서명을 했다. 문답서를 받아든 감사관은 다시 밝고 편안한 표정이 된다. 고생하셨다며 친절하게 사무실 밖으로 안내해준다. 피조사자는 감사장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멍하니 한숨을 한 번 쉬었다. ‘타닥 타닥’ 키보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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