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고 문답서는 남는다.

(감사에서 살아남기)(37)

by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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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가고 문답서는 남는다.>



모든 행위는 목적이 있다. 감사, 수사, 재판 모두 목적이 있다. 감사관, 수사관, 재판관도 각자의 목적이 있다. 감사의 각 절차에도 그에 맞는 목적이 있다. 감사관은 절차에 맞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움직인다.



감사는 감사보고서 작성이 목적이다. 종합감사는 성과가 무난할수록 좋고, 특정감사는 클수록 좋다. 감사관은 특정감사에서 더 기민하게 움직이며 문답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대부분 특정감사다.



감사관의 문답은 문답서 작성이 목적이다. 진실발견, 정의구현 같은 것은 궁극의 목적이 그렇다는 것이고, 일단은 문답서를 얻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을 혼동하고 있다면 그 감사관은 무능하거나 초보다.



사람은 가고 문답서는 남는다. 조서가 반드시 읽히는 것처럼, 문답서도 반드시 읽힌다. 다른 자료는 개략적으로 보아도, 문답서는 문장 한 줄 한 줄이 읽힌다. 핵심 증거다. 문답서는 감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후 진행될 징계, 수사, 재판 모두에서 읽힐 것이다.



조사가 끝나면 문답서가 출력된다. ‘진술한 것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라는 말을 들으며 문답서를 건내 받는다. 피조사자는 의자를 뒤로 밀치고 조금 편히 앉는다. 손끝에서 막 출력한 종이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읽는다. 살다살다 조사도 받아보고, 내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나하는 갑갑한 생각이 든다. 다른 감사관들은 감사장을 왔다갔다하고, 끝났으면 얼른 서명하고 가시라는 눈치다. 문답서는 서명해야 끝이난다.



대부분의 피조사자는 문답에는 집중하고, 설명하고, 흥분하면서도 정작 문답서 확인은 순식간에 끝내고 서명한다. 문답서가 목적이었던 감사관은 서명된 문답서가 손에 들어온 순간 한껏 평온해진다. 노려보며 추궁했던 감사관은 다시 친절한 사슴이 된다. ‘오랫동안 고생하셨습니다.’라며 사슴의 눈빛으로 말한다.



피조사자는 감사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으려면 어느 덫에 걸릴지 모르니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문답이 끝나면 피조사자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서명이다. 서명하면 끝이니 서명하기 전에 이것저것을 요구해야 한다.



감사관 입장에서 좋은 문답서와 피조사자 입장에서 좋은 문답서는 다를 수밖에 없다. 감사관은 피조사자나 피해자를 위한 문답서를 만들지 않는다. 오로지 사건처리를 위한 문답서를 만든다. 그러니 추궁하게 된다. 감사관이야 핵심질문에서만 집중하면 되었지만, 피조사자는 무엇이 강약인지 알 수 없으므로 계속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조사가 끝날즈음 피조사자는 기진맥진해 있을 것이다. 갑자기 불렀다면 더욱더 당황한 상태일 것이다. 조사 받는 것도 처음이고, 어떻게 진행될런지 별의별 상상을 하면서 오랫시간 조사를 받았으니 머리는 멍해져 있을 것이다. 조사받아 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조사받는 순간 지능이 평소보다 떨어진 것 같다고 한다. 누구라도 얼른 그 자리를 나오고만 싶을 것이다.



감사관의 공격에 오랜시간 방어를 해왔다면, 문답서 확인은 짧은 시간이지만 피조사자에 돌아온 공격의 시간이다. 정신 차려야 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 화장실에 다녀와도 되겠고, 다른 장소에서 먼 산을 보며 잠시 쉬어도 좋겠다. 10분 정도 있다 확인하겠다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오자. 조금 늦게 돌아와도 되겠다. 돌아와 차분히 문답서를 읽자.



실컷 이야기 했는데 한 줄도 안 써주었을 수도 있다. ‘아’다르고 ‘어’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이야기한 내용의 뉘앙스가 오해되도록 쓰여 있을 수도 있다. 감사관이 의도적일수도 있고, 그럴 의사는 없었지만 그렇게 쓰여 있을 수도 있다. 아직 서명하기 전이니까 문답서의 첨삭가감에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자. 방금 끝났지만 뭐라고 답변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메모하면서 문답을 받았는가. 메모하면서 조사를 받았다면 메모를 보며 기억을 떠올리고, 메모를 근거로 수정 가감해 달라고 하라. 주장에 더 힘이 실릴 것이다.



‘아까 그렇게 말했는데요’라고 말해도 ‘이런 취지의 말이 아니었으니 추가해주세요.’, ‘이건 빼주세요.’, ‘조사를 바꾸어주세요.’라고 적극적으로 말하자. 순환보직인 감사관들은 엄청난 전문가들은 아니다. 아마도 상당부분 반영해 줄 것이다. 반영해 주지 않아도 본전이고, 기어코 반영해 주지 않으면 마지막 하고 싶은 말에 포함해서 써달라고 하자. 그것은 반드시 해주는 것이니까. 어떤 피조사자는 마지막 하고 싶은 말에 한 쪽 가까이 진술하는 경우도 있다.



문답하면서 말했던 사진, 문자메세지, 녹취록 같은 자료를 제출하면서 조서에 첨부해 달라고 하자. 조서에 첨부된 사진이나 자료는 꼭 읽힌다. 불리한 자료는 당연히 제출해선 안 된다.



문답서는 복사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조서를 확인하면서 메모할 수 있는 것은 메모하자. 문답서는 질문순서대로 기재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 질문의 내용 뿐만아니라, 진술의 문답서 반영 정도, 추가 질문 횟수, 구체성 등을 보면 감사관의 의중이 읽힌다. 목표로 삼은 쟁점과 비위건명, 부족한 증거, 다툼있는 사실들을 알 수 있다. 변호사가 함께 본다면 조금을 나을 것이다. 조사 후에 문답서를 공개해 달라고 요청해보자. 확보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문답서 확인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감사관은 긴장하고 짜증이 베인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밀려 후퇴하면 안 된다. 최대한 맑은 정신으로 감사관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문답서를 차분히 여러 번 읽자. 다 읽고 원하는 수정이 끝났다면 이제 서명하자. 서명한 후 사슴의 목소리와 눈빛으로 ‘감사관님, 오랫동안 고생하셨습니다.’라고 말하자. 문답서를 남기고 떠나오자.



방심도 안 되지만, 지나친 몰입도 금물이다. 경기는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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