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숫자로만 설명된다.

(감사에서 살아남기)(35)

by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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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숫자로만 설명된다. >



감사보고서에서 숫자는 대부분 돈이다. 돈은 부패의 대명사다. 부패 처벌 수위는 끊임없이 높아졌지만, 부패에서 자유로운 시대는 없었다. 돈의 매력은 어떠한 처벌도 뚫어낼 만큼 치명적이다. 돈을 만지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선의를 넘어 공정성을 객관적 자료로 입증해 보일 수 있어야만 한다.



감사관의 입장에서 살펴보아도, 돈에 대한 비위는 숫자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주장만을 가지고 비위자의 면책을 쓸 수는 없다. 돈은 결국 숫자이므로, 돈에 대한 부조리는 숫자로 쓰여진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정당성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금전비위는 엄벌한다. 액수가 크면 감사로 끝나지 않고 수사로 전환된다. 다른 비위의 징계시효가 3년임에 비해 금전비위의 징계시효는 5년이다. 공무원이라면 문책이나 수사결과에 따라 징계는 물론, 공직자의 신분과 연금수급권이 박탈된다.



‘관례였다.’, ‘억울하다’, ‘내 주머니에 10원 한 푼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소연 해봐야 비위자의 사연에 관심 있는 사람은 없다. 숫자는 숫자로, 돈은 돈으로 설명되어야만 한다.



시스템적으로 자주 확인하는 분야는 금전비위가 적다. 금전비위는 좀체로 확인하지 않는 분야에서 ‘관례야’, ‘아무도 모르겠지’ 하면서 발생한다. 동기회, 상조회, 연구비, 강의료, 기부금, 기금 같은 곳에서 자주 발견된다. 특정한 분야를 한 번도 감사하지 않았다면 거기엔 요령이 생겼을 것이고, 편법이 존재할 수 있다. 특정한 분야에 마땅한 매뉴얼이나 규정이 없는 경우 비위자는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금전비위’가 아닌 ‘업무노하우’라고 스스로를 속일 것이다.



동기회 같은 경우에도 총무가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다면 동기회 통장을 자신의 이른바 ‘저수지 통장’으로 활용하면서 회비를 뺐다 넣었다하며 총액만 유지하고 있을 수 있다. 뺐다 넣었다 하는 순간 즉시 횡령이 되는데도, ‘아무도 총무 하지 않아서 자신이 총무로 봉사하고 있다’고 합리화할 것이다.



시스템으로 확인되는 예산 같은 분야에서도 단가를 부풀리거나 리베이트를 받는 등 대담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조직의 다른 목적을 위해 임의로 사용하는 경우에도 횡령·배임이 될 수 있다. 사업이 확대되어 추가로 돈이 필요하여 업체로부터 받아쓰고, 다른 납품건에 허위로 추가납품하였다고 대금을 임의지급하기도 한다. 납품업체가 조직의 다른 편의를 봐주었다는 이유로, 다음 계약에서 단가를 높게 계산하여 주기도 한다. 허위의 복수견적이나 계약서 없는 납품이 일어나기도 한다. 금전 수수만이 금전비위가 아니다. 품목을 임의변경하거나, 공사방법이나 납품기한을 연기하는 등 업체에게 이익을 주는 것도 금전비위다.



큰돈의 뇌물은 뭐 생각할 것도 없이 수사 후 재판을 통해 엄하게 처벌하여야 한다. 업무에서 발생하는 다수의 금전비위는 소액으로 일정기간 반복된 비위다. 티비에서 담당공무원이 떡값 500만원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면 ‘어떻게 공직자가 그럴 수 있는가’하고 혀를 차는 경우가 있다. ‘관례’였다고 하소연하면, ‘어떻게 500만원이 관례인가’하며 비난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납품업자가 명절에 30만원어치 직원들 밥 사주라고 식당에 사전 결재해 놓고, 20만원은 사무실비에 보태쓰라며 봉투에 넣어주었다고 가정해보자. 한 번에 합계 50만원, 일년에 명절이 2번이니 5년이면 500만원 뇌물이 된다. 이런 부조리가 관행이 된 조직에서 관행을 끊어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유난떤다’, ‘전임자는 뭐가 되느냐’는 등의 보이지 않는 눈초리를 버텨내야 한다. 관례였고, 개인적으로 10원 한 푼 쓰지 않았다고 소명해본들 뇌물로 판단된 500만원의 성격이 바뀌지 않는다.



감사관은 감사보고서 숫자의 아귀를 반드시 맞춘다. 신고자, 비위자, 결재권자, 감사원, 국회 등 모든 참여자와 감독기관이 감사보고서에 있는 숫자를 더해보고 맞나 확인할 것이다. 감사관은 일람표에 날짜별, 항목별로 정리해 분류한 후 합산하고 검산한다. 항목별로는 10만원, 20만원 등 직무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정도로 작다고 볼 여지도 있지만, 일람표 마지막에는 ‘합계’로 기재되어 직무상 대가관계인 뇌물로 판단될 것이다. 합산액에 따라 수사의뢰나 문책수위가 결정될 것이다.



숫자가 나열된 일람표에 개략적으로 정리되면, 감사관은 증거와 정상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비위자가 모두 인정한다고 해도 언제 진술을 바꿀지 모르고, 큰 비위를 숨기기 위해 작은 비위를 자백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꼼꼼히 진술과 증거를 모은다.



비위자로서 책임을 면하거나 선처를 받으려면 감사관이 감사보고서에 쓸 수 있는 유리한 증거와 정상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불리한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며, 찾을 수 있다면 우호적인 법령, 판례, 유권해석을 문서로 제출하여 감사관이 감사보고서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 비위자는 소명과 하소연을 오가며 바삐 움직여야 한다. 감사는 감사관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비위자의 시간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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