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만을 말하자. 그걸로 충분하니까.

(감사에서 살아남기)(33)

by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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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만을 말하자. 그걸로 충분하니까.>


사실을 말하라. 법을 주리라.(Da mihi factum, dabo tibi ius)


법에 대한 판단권은 당국에 있으니, 사실만 말하고 처분은 당국에 맡기라는 뜻이다. 역으로, 시민은 경험한 사실을 말하면 그뿐, 법적 판단이나 추론을 말할 의무는 없다는 뜻이다.


자백은 사실을 인정하는 진술이다. 자백은 사실조사에서 증거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추론이나 법적 판단은 다음 단계의 문제다.


감사관들이 원하는 것은 당연히 자백이지만, 더 한 것을 요구한다. 자백에 더해 추론이나 규범적 판단에 대한 동의를 묻고, 깊은 반성까지 요구한다. ‘니 죄를, 니가 알렸다’의 현대판 버전이다.


‘사실을 말하라. 법을 주리라.’가 보여주듯이, 조사받는 사람은 ‘경험한 사실’만을 말하면 된다. 생각해보면 그것밖에 말할 게 없다. 전지적 시점은 소설에서나 가능한 게 아니던가. 다른 사람의 생각과 심정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감사관들이 묻는 추론과 판단에 대한 질문은 이렇다.

‘가해자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그렇게 당한 피해자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참고인이 비위자(또는 피해자)라면 왜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나요’

‘횡령한 것은 인정하지요.’


이런 류의 대한 답은 정해져 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경험한 게 아니라 말하는 게 부적절한 것 같습니다.’

‘법적인 부분은 제가 잘 모릅니다. 당시에는 문제없는 걸로 생각했습니다.’


법정에서 검사나 변호사도 증인의 추론이나 법적 판단을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낚이면 안 된다. 당사자는 진술하지 않는 게 맞고, 유능한 변호사라면 바로 제지에 들어갈 것이다.

‘제가 경험하지 않은 것이라 잘 알지 못합니다.’

‘법적인 부분은 제가 말하는 게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재판장님! 지금 검사는 증인에게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물어보고 있습니다.’


사실조사 및 규범적 판단 의무는 감사관에게 있다. 추론이나 규범적 판단이 맞는지는 진술인에게 동의를 구할 것이 아니다. 감사관이 간접사실을 모아서 입증해야 한다. 조문의 의미는 무엇인지, 절차는 준수되었는지, 법적 요건에 해당하는지는 감사관이 매뉴얼, 유권해석, 판례를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 감사관에게 책임이 있다.


감사관이 추론과 규범적 판단에 동의를 구하는 이유는 뭘까. 조사과정에서 새로운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새로운 질문의 단초를 꺼낼 수도 있다. 추론에 대한 동의를 다른 사람 추궁할 때 유용하게 활용한다. 증거나 간접사실을 모아 판단한 책임은 감사관에게 있으므로, 동의가 없다면 감사관은 증거로 추론을 입증해야 된다. 규범적 판단 부분도 마찬가지다. 추론이건 규범적 판단이건, 비위자나 진술인의 동의가 없다면, 감사보고서 작성도 어렵고, 보고도 부담되기 때문이다.


사실만을 말하자. 그걸로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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