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서 살아남기)(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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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는 만들어지고, 조서는 꾸며진다.>
논리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객관적인 논리는 없다.
감사가 시작되면 감사관은 비위사실을 읽고 듣는다. 비위사실이 어떤 ‘규범’을 위반했을지 직관적으로 파악해본다. 목수가 나무를 맞춰가듯 규범을 이러저리 대어보고 끼워본다. 맞춰지지 않으면 다른 잣대를 대어보며 논리를 조금씩 바꿔간다. 논리는 만들어진다.
논리가 세워지면 사실을 모은다. 찰흙 놀이를 하듯 논리라는 뼈대에 사실을 하나둘 붙여 간다. 뼈대에 사실이 붙지 않으면 다른 사실을 찾아 붙여본다. 이물질이 있으면 떼어낸다. 조사는 끊임없는 사실 찾기다. 사실 찾기가 끝나면 조사는 끝난다. 사실찾기의 정점은 조서작성이다.
조서는 꾸며지는 것이다. 객관적인 조서는 없다.
조서에는 규범이라는 논리에 사실을 맞춰가는 것이다. 방향성이 있다. 감사관은 ‘필요한 사실’과 ‘무익한 사실’과 ‘불필요한 사실’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조사는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보고서든, 결정문이든, 판결문이든 최종 문서에 쓰일 사실을 남기는 것이다. 머릿속에 감사보고서의 개략적 틀이 없다면 감사관의 질문은 방향성을 잃고 길어지기만 할 것이다. 질문과 답변만 쌓여갈 것이다. 보람차고 뿌듯하긴 할 것이다.
‘꾸민다’는 말은 ‘조작한다’ 말이 아니다. 조서는 감사관의 궁금한 호기심을 채우거나, 비위자의 하소연을 적는 문서가 아니다. 조서의 질문은 어느 규범의 어느 요건에 해당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유능한 감사관은 질문의 항목마다 명확한 질문의 취지가 있다. 질문의 순서가 규범의 논리대로 진행된다. 감사관은 흩어진 사실을 규범의 요건에 맞도록 재배치한다. 감사관은 멋지게 꾸며진 조서를 완성한다.
조사를 받는 비위자는 감사관의 질문 선택이나 조서작성에 간여할 수 없다. 조사의 전과정 그대로가 조서에 남는 것도 아니다. 일부는 생략될 수도 있고, 일부는 순서가 조정될 수도 있다. 비위자는 감사관의 질문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기도 어렵다. 규범에 대해 물어보는 것인지, 사실에 대해 물어보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한편, 대부분의 감사관은 순환보직으로 임무를 수행하므로 전문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 그들도 어색하고 주저하며 조사한다. 규범과 사실이 구분되어 있지 않거나, 질문의 취지나 배치가 논리적이지 않은 경우도 꽤 있다.
역으로, 거기에 비위자의 살아날 길이 있다. 논리에는 감사관이 모르는 유리한 규범, 판례, 유권해석을 제시하고, 사실에는 감사관이 감사보고서에 쓸 수밖에 없는 새로운 사실, 모순되는 증거와 증인을 제시하는 것이다. 고민해보면 대응할 수 있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감사관이 논리를 바꾸고, 조서의 방향을 수정할 수밖에 없도록 허들을 곳곳에 세워놓는 것이다. 반성의 빛은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잊지말자.
논리는 만들어지는 것이고, 조서는 꾸며지는 것이다.
심헌섭, '존재에서 당위는 추리되는가'. 경희법학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