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감사에서 살아남기)(46)

by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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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감사관은 감사의 결과를 감사보고서로 작성한다. 감사보고서에는 사건의 배경, 비위의 내용, 대상자와 기관에 대한 처분수위가 기재되어 있다. 각 당사자의 주장 및 증거가 나열되어 있고, 배척하는 경우에는 믿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쓰여 있다. 정부부처 감사관은 감사보고서를 장차관에게 보고한 후 종결하고, 공공기관 감사관은 감사에게 보고 한 후 종결한다.


감사의 모든 과정은 ‘감사보고서’를 작성하는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감사관은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문답서를 작성하고, 공문을 확인하고, 진술을 듣고, 서류철을 뒤적인다. 이를 근거로 받아들이는 주장과 증거를 고르고, 배척되는 주장과 증거를 덜어낸다. 감사보고서에는 이 전과정이 드러난다. 비위의 정도, 징계양정기준, 감사양정요소, 유사사례 등을 고려하여 감사보고서의 틀을 마련한다. 감사보고서의 결론 부분은 ‘징계요구’, ‘경고’, ‘권고’ 등 처분요구 사항이 기재된다. 감사보고서 결재가 끝나면 처분요구서가 작성된다.


어느 날 감사개시통보를 받으면 피조사자들은 멍해지게 마련이다. 보통 감사는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 한 달이 넘어서는 경우도 많다. 위축된 상태로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피조사자는 그동안 차가운 시선을 버텨야 한다. 현장에서 감사관이 떠난 후에 피조사자는 결과를 기다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피조사자의 주장이나 증거나 받아들여졌을지, 피해자의 과장된 주장이 받아들여진 건 아닌지 숨죽여 기다릴 뿐이다. 사실 초조하게 기다리는 건 신고인, 피해자, 피조사자 소속의 기관장도 마찬가지다.


감사관은 그동안 감사보고서를 작성한다. 감사관도 직장인이므로 보고서를 작성한 후 층층이 결재를 받아야 한다. 같은 마음이 아닐 것이니, 결재권자는 부족한 부분은 보강하도록 지시하거나, 판단이나 결론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할 수도 있다. 감사보고서는 공개자료이고, 국회에도 제출되는 자료다. 감사관은틀린 부분이나 불필요한 논쟁이 생기지 않도록 검토하고 고치고를 반복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최종결정권자의 판단으로 감사보고서가 확정되면 감사는 사실상 종결된다. 이후에는 감사보고서에 따른 후속조치가 시작된다.


피조사자의 소속기관에 처분요구서를 발송한다. 그런데 감사보고서는 통보해주지 않는다. 문책 대상이 된 피조사자는 문책 대상이라는 사실만을 통보받을 뿐 왜 문책대상이 되었는지는 통보받지 못한다. 누가 무슨 주장을 했는지, 나의 주장은 어떻게 판단되었는지, 나의 동료들은 어떤 근거로 어떻게 처분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감사결과에 대해 재심의청구를 할 수 있지만, 어떤 증거로 어떻게 판단했는지 알기가 어렵기 때문에 재심사유를 구체적으로 쓰기도 어렵다. 막연히 ‘억울하다’, ‘선처해달라’는 내용으로 재심의를 청구할 수밖에 없다. 정보공개를 청구해도 ‘감사’ 사안이라는 이유로 ‘비공개 결정’될 것이다.


법률상 감사결과는 원칙적으로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공공감사법 제26조) 감사결과 공개는 각 부처 홈페이지나 알리오(https://www.alio.go.kr/,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탑재되어 있다. 공개된 내용은 감사보고서가 아니라 결론부분인 처분요구서가 탑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감사보고서가 탑재되어 있는 경우에는 전체본이 아니라 공개본으로 요약하여 탑재되어 있다. 1쪽으로 요약하여 탑재된 경우도 있다. ‘비공개’ 사유(정보공개법 제9조 1항)는 상당히 폭넓은데, 이 경우 요약된 감사결과마저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공개 시기에 있어서도 공개한다고만 규정되어 있을 뿐이므로 한참이 지나서야 공개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그러니 공개된 감사결과를 처분에 대한 불복자료로 활용하기는 어렵다.


감사보고서를 그대로 받아볼 수 있는 있는 기관은 국회와 감사원이다. 국회에서 요구하는 경우에는 부처별 소관 상임위원회 국회의원이 아니라고 해도 익명처리 후 감사보고서를 그대로 제출한다. 피조사자가 수사를 받거나 재판을 받는 경우 수사기관의 자료협조 요구 또는 법원의 문서송부촉탁, 문서제출명령이 있으면 요청기관에 제출한다. 피조사자가 스스로 감사보고서를 받을 수 있는 단계는 결국 수사나 재판에 가서야 가능하다.


가슴졸이며 감사결과를 기다리던 피조사자는 감사결과만 받아보았을 뿐,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에 대한 자료는 받아보지 못할 것이다. 선처를 받았어도 다행이라고 생각만 할 뿐 의문은 가시지 않게 되고, 문책을 받게 되면 왜 그렇게 판단되었을까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어려울 것이다.


피해자나 신고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가해자가 왜 선처를 받았는지, 피해주장은 왜 인정되지 않은 것인지 확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해자가 엄히 처벌을 받은 경우에도 가해자가 어떻게 주장했고 그것이 어떻게 판단되었으며 어떠한 기준으로 엄히 처벌되었는지 여전히 궁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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