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서 살아남기)(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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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거부할 수 없다. 겪어낼 뿐이다.>
운명에는 이유가 없다. 다툴 수도 없다. 운명은 개인의 사정 따위엔 관심이 없다.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운명이고, 우리는 운명을 어떻게 겪어낼지는 결정할 수 있으니까.
어느 날 자이툰 부대(이라크 사단) 전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경계부대 대대장이었는데 다급하고 겁먹은 목소리였다. 강단있고 침착하셨던 분이라 나도 놀랐다.
“어제 총기사고가 났어. 여러 명이 죽었어. 사망사고 여러 번 처리했다고 해서 전화해봤어.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야? 난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먼저 위로를 했다. 희생자와 유족의 상실감에 비할 수 없지만, 20살부터 자유를 국가에 반납하고 20년간 헌신한 군인으로서 성취도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순간이었다. 총기사고는 운명처럼 일어나는 것이니 너무 억울해하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라고 말했다.
여러 명이 죽었다면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반드시 처벌될 것이다. 총기사고 난 후 처벌받지 않은 대대장은 없었다. 어떤 총기사고는 5차 상급 지휘관까지 처벌했다. 소대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는데 군단장이 보직해임되고, 감봉처분을 받았었다. 당시 군단장은 4만 명이 넘는 병력에 대한 지휘관이었다. 지휘책임은 위로 갈수록 옅어지는데, 400명의 지휘관인 대대장이 처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처벌 받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필요가 없다. 말을 맞추지도 말고, 기록을 만지거나, 고쳐선 안 된다. 그런 행동 때문에 더 크게 처벌 될 수도 있다.
총기사고조사반이 감사반처럼 내려올 것이다. 그들이 빈손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언론이 자극적 기사를 쏟아내고, 국회의원은 국방장관을 질책할 것이고, 국방장관은 총장에게 경위를 따져 물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사반의 재량은 극도로 줄어든다. 조사반의 보고서에 대대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사고는 운명처럼 온 것이라고 쓸 수 있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대대장이 최선을 다했고, 과실이 없다며 다투기 시작하면 조사반은 조사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갈 것이다. 휴가를 안 보냈다거나, 너무 많이 보냈다거나. 규정에 있는 면담을 하지 않았다거나, 순찰을 규정대로 돌지 않았다거나,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들 말이다. 총기관리, 탄약관리가 소홀했다는 것들 말이다. 관례였는지 무관하게 규정과 공문을 들이대며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확인해 나갈 것이다.
대대장이 어쩔 수 없었고, 최선을 다했다고 다툰다면, 그 이야기에는 부하, 상관, 상급부대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대대장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조사반은 대대장의 진술이 근거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부하, 상관, 상급부대까지 조사하게 된다. 다투다 보면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상급자나 부하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꼴이 된다. 대대장이 다툴수록 조사의 범위는 넓어지고 처벌받는 사람은 하나 둘 늘어갈 것이다.
최선을 다했다고 한들 그것만으로 과실이 없다는 게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혼자의 책임이 아닌 게 인정된다고 한들, 책임진다는 사실이 달라지지 않는다. 책임지는 사람이 늘어난다 한들 대대장에게는 아무런 이익이 없다. 일부 사실이 아니었음이 확인되어도 그 부분만 빠질 뿐 처벌받을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애시당초 하위 지휘관부터 최상위 지휘관까지 문책받는데, 중간 지휘관인 대대장을 빼고 문책할 수는 없다.
군에서 철책이 뚫리는 경계실패 책임도 마찬가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건,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건 거기에는 반드시 문책이 따른다. 우선 국민들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휘관은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나는 대대장에게 한 문장으로 조언했다. ‘지휘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책임을 통감한다고 없던 책임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있던 책임이 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처벌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당당하게 책임지는 자세라도 보이는 게 중요하다.
조사반은 나와서 보고서에 준비할 것이다. 보고서에는 ‘지휘관으로 모든 책임을 통감한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쓸 것이다. 대대장이 처벌 받겠다는데 뭘 더 따지고 뒤지겠는가. 조사반도, 상관도, 최종 결정하는 사람도 군인이다. 자신이 그 위치에 있었어도 사고를 막기 어려웠고, 지금 대대장에게 닥친 운명이 그의 인생에서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도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대대장이 대견하면서도 안타까울 것이다.
시련의 운명이 있어도 삶은 계속 되듯이, 총기사고의 대대장 임무가 끝나도 군복무는 이어진다. 전역할 때까지는 여전히 군인이니까.
대대장은 형사처벌 없이 경징계를 받았다. 진급의 경쟁에서 한 발짝 물러났지만 조사의 과정에서 명예, 신망을 잃지 않았다. 이유 없이 닥쳐온 운명을 당당하게 겪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