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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선묘가 안타깝다.

(부석사, 김훈의 자전거여행)(10)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273685864



부석사에 들를 때마다 나는 대목수가 생각한대로 꺽이고 휘어진 길을 오른다. 부석사 안양루 밑에 이르면 대목수의 의도대로 석등을 바라보며 계단을 올라간다. 대목수는 어떻게 이런 기획을 했을까. 임금의 지원으로 지었을 터이니 돈이 모자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라 당시에는 도시에 절이 많았다. 도시의 절은 대칭이 필요하지만, 산사는 자연 그대로를 살리는 것이 정석이었던 모양이다.


조선의 산사였다면 어떻게든 대칭을 만들고, 터가 좁으면 대칭이 되는 작은 터를 여러개 만들어 연결했을 것이다. 일주문부터 대웅전 앞까지 자유롭게 꺽이는 절은 없다. 꺽이는 각도에 무슨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목수는 대칭이나 균형 다 필요 없고, 필요한 것은 아미타불을 생각하며 차분히 걷다 아미타불을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불교의 모든 진리는 중생의 구제를 위해 만들어진 것 아닌가. 중생의 깨달음과 무관한 아름다움이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부석사의 아미타불은 대웅전 앞마당을 보고 앉아 있지 않다. 드넓은 소백산맥을 조망하고 있지 않다. 옆 문으로 들어오는 중생을 바라보고 있으며 동쪽 작은 옆산을 보며 기도하고 있다.



의상을 사랑했던 당나라 선묘의 꿈은 의상과 함께 사는 것이었다. 의상은 자신을 만나지 않고 당을 떠나 신라로 돌아갔다.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 젊은 날의 선묘는 살아 있는 의상을 가까이보면서, 대화하면서 곁에서 살고 싶었다. 거기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의상이 좋았을 뿐이다. 그래서 죽었다. 신라로 돌아간 의상은 부석사에 선묘각을 지었다. 젊은 날의 선묘가 안타깝다.



귀공자인 의상은 당나라에서 공부했던 집주인의 딸 선묘와 사랑이야기가 남았고, 시장통에서 굴렀던 원효는 요석공주와 연인이 되었다.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계절이 왔다 가는 것 같아도, 봄여름가을겨울은 결국 한 몸이다. 봄은 여름을 예정하고 있고, 가을에도 봄의 씨앗이 남아 있다. 계절은 반복되며 이어지므로 나누어 끊을 수 없다. 사람은 변하다 사라지지만, 계절은 커다란 원통처럼 결국 하나다. 나이가 들수록, 남아 있는 계절이 얼마남지 않을수록 계절의 힘과 영원이 실감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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