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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첫사랑 04화

난 심장이 뛰었어

넌 안 뛰는구나

by 레옹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드디어 아기공룡에게 고백을 한다

제1아지트 방장 녀석의 막냇동생이 마침 아기공룡과 같은 신입생이라 0월 0일 00시에 아지트로 데리고 오라고 미리 말해 놓았다


약속한 날 약속된 시간이 되기 전 아지트로 향하는 내 머릿속은 사실 많이 복잡한 상태였다

태어나서 이성에게 내 마음을 고백한 적이 없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뭐라고 첫마디를 꺼내야 하지?'

'괜히 겁먹고 그러면 어쩌지?'

'거절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울을 보고 표정 관리를 했어야는데...'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까?'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파도를 치는 와중에 아지트에 도착했다


잉?

00시 20분 전에 도착했는데 먼저 와서 다소곳이 앉아 있는 아기공룡!

내가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서는 아기공룡!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 마실 것 좀 사 오라며 방장의 동생을 내 보내고 둘만 남은 방 안!


"반갑다 나 고1 건터야"

그사이 키가 훌쩍 커버린 아기공룡에게 무심코 악수를 청하는 나란 놈

"안녕하세요~"

작은 목소리로 오른 손목에 왼손을 받치고 손을 내미는 아기공룡!

어쩌다 마주 잡은 손을 통해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

"우리 초면은 아니지? 그사이 키가 많이 컸네?"

지금 생각해도 나 참 멋대가리 없는 놈이었다

첫마디가 꼭 수놈들끼리 주고받는 말이나 던지다니.. ㅋㅋ

"키가 계속 자라는 중이에요"

라며 수줍게 웃어 보이는 아기공룡!

그러고 보니 신문 돌릴 때 봤던 얼굴, 등교하면서 마주쳤던 얼굴이 기억 저편으로 지나갔다

가슴도 제법 여성스러움을 뽐내려는 듯 봉긋하게 솟아있다

시선을 한 곳에 오래 두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00이 오기 전에 본론을 얘기할게"

"네에~"

"나 너 좋아!"

"..."

"지금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돼"

"..."

"난 널 처음 봤던 날 심장이 뛰었어"

"..."

"너랑 사귀고 싶어!"

"..."


혼잣말하듯 고백이 끝나갈 때쯤 심부름 보냈던 00 이가 음료수를 사들고 방으로 들어온다

00 이가 음료수를 컵에 따르고 조용히 방을 나간다

나는 대답 없는 아기공룡을 쳐다보며 담배를 입에 문다

그러고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입을 여는 아기공룡!

"제가 어디가 좋으세요?"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 날아온다

"어~ 몰라 그냥 네가 좋아 처음 봤을 때 심장이 뛰었다고..."

"그게 절 좋아하는 이유예요?"

"음~ 내 스타일이야"

"어떤 점들이요?"

오~ 보통내기가 아니다

질문들이 당차다

그때 그 시절엔 그냥' 나 너 좋아해 사귀자'하면 '네 아니면 싫어요'로 답하는 게 보통인 시절이었는데

아기공룡은 좋아하는 이유를 명확히 알고자 했다

"이쁘고, 성숙되고, 짧은 머리, 니 손! 길쭉하고 따뜻한 니 손이 좋아"


나름 곰곰이 생각해서 답을 하니 옅은 미소를 띠며 방바닥을 향했던 눈이 내 눈과 정면으로 마주친다

"죄송해요 전 아직 누굴 사귀거나 연애하고픈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어요"


'당돌하네 요녀석'


"그냥 편하게 오빠, 동생 하면 안 될까요?"

"..."

인생 첫 고백이 거절당하는 순간은 날 멍~ 하게 했다

나도 모르게 손이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실패다 아~ 쪽 팔리게...'


"제가 오빠가 없어요 알고 계시겠지만..."

"..."

"그리고 엄마는 아직 누굴 사귀고 하는 거 그런 거 절대 허락 안 하실 거예요"

아기공룡이 담배연기가 자욱해지는 방에서 고심한 표정으로 또박뽀박 내게 의중을 전한다

몇 가치의 줄담배를 피우던 나는 마지막 담배를 비벼 끄며 입을 떼었다

"좋아~ 사실 거절 당할 거란 생각은 아예 안 했던 터라 좀 당황스럽긴 한데..."

"..."

"나도 여동생이 없긴 해 너도 알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알고 있어요"

"어떻게 알아?"

"저도 오빠에 대해 여기저기 좀 물어보긴 했어요 소문도 좀 있고 해서..."

"무슨 소문?"

"건터 오빠가 저 찜했단 소문요 그거 모르고 게셨어요?"

"그건 내가 널~ 아니다 알고 있었어 너 괴롭히는 선배는 없지?"

"네에~ 입학초기엔 언니들이 무섭기도 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음~ 우리 이렇게 하자 그래, 일단은 내가 오빠 할게 넌 내 동생 하자"

"진짜요? 우와~ 내게도 오빠가 생겼다 ㅎㅎ"


'생각보다 발랄하네 난 네가 이성으로 보이는데...'


"그 대신..."

"그 대신 뭐요?"

"나중에라도 내가 이성으로 느껴지면 언제든 얘기해 줘"

"..."

"난 널 이성으로 좋아하는 거니까"

"나중에도 그런 마음이 안 생기면요?"

'어쭈? 요 녀석 보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그럼 우리 이제 X남매인 거예요?"

"그래 X남매 1일이다 대신에 오빠가 너 학교생활에 간섭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어 괜찮겠어?"

"어떤 간섭요?"

"다른 건 몰라도 연애사는 간섭할 거야"

"연애 안 할 건데..."

"암튼 그런 줄 알아 그리고 학교에서는 이제 편하게 아는 체 하고 소문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응?"

"네에~ 저도 학교생활 궁금하거나 힘든 거 있음 오빠한테 얘기할게요"

"그래~ 오빠가 너 보고 싶으면 찾아가고 할 수도 있어 괜찮겠어?"

"네에~ 대신에 집 근처에서만 가능해요"

"찾아가게 되면 전화할게 어머니가 뭐라고 하실까?"

"아뇨 엄마는 그 정도는 이해하실 거예요"


나의 첫 고백은 이렇게 실패로 끝났다

어리게만 봤던 아기공룡은 아기가 아니었다

저렇게 할 말 다하는... 진짜... 둘리 같은 녀석이었다

새벽녘 콧김을 내뿜고 신문을 기다리던 아이가 엄마가 연애는 아직 안된다고 했다고 건터의 제의를 단박에 거절하다니...

그렇게 예정에 없었던 x동생이 생겼고 난 여전히 고독한 건터로 지루한 학창 시절을 이어갔다

학교에서 만나면 매점에 데려가 간식을 사주고 학교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둘리는 어느새 나보다 키가 더 커졌으며 웃는 얼굴은 점점 더 이쁘게 변해갔다

x동생인데 자꾸 여자 친구로 생각돼서 마주치는 순간들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때 처음 둘리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 고 1 00이라고 하는데요 둘리랑 통화할 수 있나요?"

"어~ 네가 00이구나 둘리는 지금 피아노 교습 갔는데"

"그럼 언제쯤 다시 전화하면 될까요?"

"음 그전에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우리 둘리 좋아하는 거니?"

"네 좋아해요 근데 어머니가 연애는 안된다 해서 그냥 오빠, 동생으로 지내기로 했어요"

"ㅎㅎ그 얘긴 나도 들었어 우리 둘리 잘 돌봐줘서 고마워"

"아녜요 별로 돌봐준 것도 없는데요 뭐"

"연애는 커서 했으면 싶어 지금은 학생 신분이니까 공부에 열중했으면 하거든 아줌마 이해해 줄 수 있지?"

"네에~ 그 대신 성인이 되면 둘리를 존중해 주셨음 해요 주민증 나오면요"

"ㅎㅎ그래 주민증 나오면 우리 딸 의견을 존중해 줄게"

"고맙습니다 다시 전화드릴게요"

"응 00시 이후에 전화하면 집에 있을 거야"

"네 안녕히 계세요"


첫 전화통화를 둘리 엄마와 하게 되다니...

떨리는 가슴을 쥐어짜며 애써 태연한 척 통화를 하긴 했는데 역시 그녀는 보통 아줌마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행이다


내 가슴을 뛰게 했던 모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모녀!

할 말 다 하는 모녀!

그렇게 둘리와 난 서로의 집으로 전화를 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고

내게 할 말이 있거나 보고 싶을 땐 제1 아지트로 찾아왔다

나 역시 둘리가 보고 싶으면 전화해서 집 근처나 국민학교 근처에서 만나 X남매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연인 사이 같지도 않은 그런 관계를 이어간다

내 머릿속엔 '언제쯤 내가 둘리 눈에 이성으로 보이게 될까?'

생각만 가득했다

X남매가 되어서도 난 짝사랑을 이어가야만 했다




PS : 둘리네 아빠는 좋게 얘기하자면 한량 나쁘게 표현하자면 깡패(지역이 넓었던 걸로 기억함)였는데

연애사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둘리가 생기는 바람에 둘리 어머니와 이른 결혼을 하게 되었고 한 달에 2/3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만큼 집안살림에 무신경했을 테니 둘리 엄마 입장에서도 어찌 보면 나 같은 반건달 같은 학생이 달갑진 않았을 테다 그럼에도 둘리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도 하지만 둘리의 학교 생활엔 나름의 철칙을 가지고 둘리를 케어한 것이다

둘리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되어 갔고, X동생을 짝사랑하는 나는 점점 더 고독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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