걘 건들지 마
첫 고백의 실패감은 내 삶에 활력을 빼앗아갔다
'못난 놈!'바보!''멍청이!'
나를 자책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새 18세가 되었다
시골의 쪽빛 하늘을 쳐다볼 때마다'아~ 이 깡촌 하루빨리 떠나고 싶다'란 생각만 머릿속 가득해져 왔다
'둘리'는 '건터'의 보이지 않는 비호아래 낭랑 청춘을 잘 보내고 있었고, 여기저기 승냥이들의 군침 흘리는 모습만 좇던 나는 점점 더 모난돌에 날을 세우는 일상이 계속된다
'둘리'를 좋아한다는 녀석들은 내 레이더 망에 걸려 어김없이 혼쭐이 나고, '둘리' 옆엔 얼씬도 못하게 된다
중학교 아니, 이 깡촌에서만큼은 아무도 '둘리'를 건들 수 없다 (언젠간 내 애인으로 만들 테니까)
고등학교 입학할 때 직접선배 중 복학한 형이 한 명 있었는데 그동안 서로 배려하고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이 형이 난데없이 '둘리'를 소환한다
"건터야~"
"네~형"
"그 갈빗집 딸내미 말이야"
"?"
"우리 친구 중에 @@ 이가 호감 있다는 거 같던데..."
"그 호감 접으라 하시죠"
바닥에 침을 찍~하고 뱉은 선배는
"야~ 그 @@ 이가 네가 접으란다고 접겠냐? 너 지금 도발하는 거냐?"
"도발이 아니고요"
"도발이 아니면?"
"목숨 거는 거죠"
"아니~ 니들 사귀는 사이도 아니라면서"
"더 크면 사귈 거예요 걔 엄마한테도 허락받았고요"
(허락받지 않음)
연거푸 피워재끼던 담배꽁초를 엄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던져버린 복학생 선배는
"니들 오늘 집합해야 할 것 같다"
"..."
그날 저녁 패거리 친구들은 갈빗집 딸내미를 꼬투리 삼은 1년 선배들의 아지트로 불려 갔다
친구 놈들과 언쟁이 없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야~ 건터야 계집애 하나 때문에 우리까지 이게 뭐냐?"
"미안하다 근데 나 걔한테 목숨 걸었다"
"아~놔~ 그깟 계집애가 뮈..."
퍽~!
"말 가려서 하자 니 형수 될 수도 있는데..."
친구 놈 한 명과 결국은 주먹다짐을 했고, 그날 저녁 선배의 아지트에 불려 간 우리는 단체로 주먹맛을 봐야 했고 도발성이 꼬투리가 된 만큼 난 좀 더 주먹맛을 봐야 했다
'아~ 맞짱 뜨면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항상 그렇듯 선배들의 폭행뒤엔 소주로 샤워하듯 뒤풀이가 있었고, 집에는 어떻게 들어갔는지 필름도 끊겨버렸다
목숨을 걸었던 만큼 그 누구도 '둘리'는 거들떠보지 않는 것으로 일은 마무리되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둘리'를 소환한 건 유인책이었다 @노므 쉐이들..)
몇몇 친구 놈들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니들이 사랑을 알아? 자식들아~'
깡촌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오고 주말이면 친구들 몇몇과 이 골짜기 저 골짜기로 천렵을 다녔다
불판을 가지고 갈 때도 있었지만 계곡의 널찍한 돌을 주워다 돼지고기 돌구이를 해서 낮술을 들이켰다
그날은 유치원부터 쭉~ 동창인 우리 학년 얼짱+쌈짱 미코진(별명:미스코리아 진)과 함께였는데 이 녀석은 중학교 때부터 손편지며 선물공세를 해왔던 녀석인데, 그날따라 날 쳐다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았다
"미코야~ 너 오늘 왜 이렇게 눈빛이 뜨겁냐?"
"..."
이 녀석은 목욕탕만 같이 안 갔을 뿐 부@친구 같은 녀석이었다
"야~ 봄햇살도 눈 부신데 너까지 왜그냐?"
(낮술을 술술 마시더라니...)
"건터야~"
"왜?"
"너~ 00 갈비가 그렇게 좋아?"
"응~ 미치도록 좋아 ㅎㅎ"
"그냥 엑스동생이라며?"
"응~ 현재로선"
요 녀석은 사랑에 목마른 사슴 같은 녀석이다
집에서 주는 사랑만 받아도 행복할 것 같은 녀석이 항상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걸 즐긴다
교제도 꽤 여러 번 했지만 오래가는 스타일이 아녔다
중학교 2학년 이후 우리 아지트에서 함께 한 시간들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그냥~ 나랑 사귀자"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
"웬 가족?"
"너랑 나랑 11년째 붙어 다녔는데 가족이지 뭐냐?"
"넌~ 다 좋은데 사랑을 몰라"
"뭘 몰라 U~c"
"미코야~ 너 저번에 이웃도시 00이놈이랑은 어째 금세 끝난다 했다"
"하나같이 짐승 같은 놈들밖에 없어 이 깡촌엔~"
"야~ 사내자식들은 다 짐승이야"
"아닌 놈도 있더라"
"누구?"
"너~"
"뭐래? 아호~"
늑대 소리를 내 보지만 미코의 표정엔 변화가 없다
"건터야?"
"응~"
"사랑하는 거 같아~"
미코의 얼굴을 쳐다봤다
'뭐야? 진심인 거야?'
"사랑하는 거 같으면 그냥 사랑해~ 난 빼고"
"짝사랑하라고~?"
"나도 짝사랑하고 있잖아 ㅋㅋ 넌 사랑 없인 못 살아?"
"어! 난 뜨겁게 사랑하며 살고 싶어"
"미코야~"
눈가가 촉촉해진 미코가 말없이 나를 쳐다본다
"사랑해~C-바"
'사랑해 사랑한다고 근데...'
미코의 얼굴이 다가온다
"Stop! 친구로 사랑한다고~ 아~놔!"
"야~ e-c 사랑이 장난이냐?"
"어쩌라고? 심장이 안 뛰는데 아~ 진짜!"
또 거짓말 남발하는 나란 놈!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따라 안주도 안 먹고 원샷하는 미코.
'하아~ 괜히 데리고 왔나?'
뒤늦은 후회를 한다
"건터야~"
"..."
"내가 '둘리'데리고 얘기 좀 해 볼까?"
"야~2c 너! 걔 건들면 죽는다~ c"
부@친구 같은 미코는 졸업 후 30살 즈음에 만났었다(미코의 미모는 연예인 뺨쳤음)
'그냥 그때 니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미코는 수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왜 그런 건지 묻지 않았다
'천상에선 사랑받는 미코로 살길 기도했다'
내게 '유안진'을 알게 해 준 미코!
다음 생엔 우리 사랑하자~ **아~ ㅠㅠ
PS : 가까운 친구라도 사랑한다고 들이대는데 나라고 뭐 흔들리지 않았겠어요
그래도 난 처음으로 심장이 뛴 '둘리'랑 꼭 연애하고 싶었거든요
말이 좋아 엑스남매지
관계가 애매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어요
엑스 오빠라고 소소한 모든 일에 관심을 두고 참견하고,
특히 남녀 관계에 대해선 사소한 것도 용납이 안 됐거든요
'둘리'가 중3이 되면 꼭 애인으로 삼고 싶었어요
하지만 '둘리'는 나를 남자로 봐주질 않았죠
키가 나를 앞지르고 나선 더욱더 그랬던 거 같아요
하지만 키가 나보다 커졌다고 포기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건터'는 시간이 흐르면서 '스터'가 되어 갔어요 (스터 = 스쳐도 터져)
'둘리'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을 거라 생각했어요
우린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죠
'둘리'도 사춘기를 겪고 있었으니까요
고2 겨울방학엔 창원 친척집에 40여 일 있으면서 편지를 몇 통 보냈는데 창원 주소를 잘 못 기재하는 바람에 아파트 옆동에 가서 며칠을 편지만 기다린 적도 있었지요
방학 내내 독서실에서 한 거라곤 '둘리'를 위한 '나만의 노트' 만들기로 시간을 다 써버린 것 같아요
거기엔 '둘리'이름 빨간펜으로 천 번 쓰기부터 시작해서 시, 그림, 희망사항, 프로필(백문백답) 등등...
그 노트 아직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긴 하네요
나의 자작시 '바보가 되고 싶다'를 읽고
"오빠! 바보!"라고 말하는 게 꿈에 나왔을 정도니
저 바보 맞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