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구운몽

12월의 구운몽

by You n

구운몽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던

지난겨울 아이들과 ‘구운몽’ 뮤지컬을 보러 갔다.


한낱 하룻밤 꿈인 것을 그토록 애썼나..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가 그리 힘든 거였다.


그날 자정이 넘어 울리는 진동에 놀라 잠이 깼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전화였다.


내 생부는 나를 20살까지 키워주셨다.

정확히 말하면 20살에 부모님이 이혼하셔기에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


밥먹듯이 노름하고 주식해서 돈을 날리고 시도 때도 없이 직장을 바꿔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매일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에 온갖 두려움에 덜덜 떨며 잠들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구차하지 않은가?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새벽부터 밤 10시가 넘어 집에 와도 아빠는 일하러 가지 않았다.

거실에 누운 듯에 앉아 병맥주에 노가리를 먹고 계셨던 아빠가 정말 죽도록 싫었다.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딸이 늦은 시각까지 힘들게 일하고 오는데 아빠라는 사람이 저러고 있다니..

그렇게 원망하는 나날도 정말 스치듯 짧았다.

아빠는 이혼 후 떠났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으셨다.


울면서 음성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고, 문자도 수백 통 보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기억 속에 아빠를 묻어야 했고 그래야 살 수 있었다. 애증이 섞여 있는 마음으로는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친 듯이 앞만 보며 달려오다 받은 전화가 아빠의 사망 소식이라니……

사고도 아니고 지병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한 죽음.

한 페이지에 써 내려간 유서 속 한 구절.


‘너무 허망된 것들을 쫒다 갑니다.’


할머니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언니와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 별 것 없었던 유서.


끄끝네 남긴 건 빚밖에 없었고 친절히 한정상속하라고 쓰여있던 유서.


20년간의 엄마와의 결혼 생활이 아빠에게는 어떤 기억이었을까….

우리가 태어나고 우리를 바라보며 어떤 희망과 꿈을 꿨던 걸까……


부모가 되고 나니 인생사는 것이 쉽지 않고 외로움의 길을 걷게 된다는 걸 알겠더라.


내가 힘듦을 자식이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내 욕심이요,

늙어감의 허무함도 내가 감당해야 하는 무게인 것을,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아빠에겐 그토록 어려웠던 걸까?


인생에서 한탕은 없고, 눈먼 돈과 기회가 없다는 걸 마흔 이후에도 몰랐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알려줄 사람도 귀 기울이고 싶었던 사람도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정신적 치료가 필요했던 사람인데…



그렇게 어떤 원망도 듣지 않고 자유롭게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아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추운 겨울 유난히 까맣던 하늘 위로… 그곳에서라도 마음껏 꿈꾸세요.


전 현실을 살아 낼 테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