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들은 걸음마를 일찍부터 했습니다. 보통 돌 즈음에 걷는데 이 친구는 9개월쯤 걸었으니까요. 어찌나 날쌘지 어린이집 시절부터 별명은 '날다람쥐'였습니다.
남자아이 특유의 허세와 경쟁심이 많아 이것저것 다 도전하고 해 보는 스타일입니다. 그렇다고 막 행동하지는 않아요. 은근 겁쟁이라 정말 위험하게 행동하지 않더라고요.
물건을 자주 떨어뜨리거나 앞을 못 보고 걸려 넘어지는 딸과는 다르게 아들은 주변을 잘 살피고 행동반경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다치지 않고 컸어요. 위험할 것 같은 상황에 미리 주의를 주는 남편의 잔소리도한몫했던 것 같네요.
잘 다치지 않아서 마음을 놓았던 걸까요.
집이라서 신경을 덜 쓴 걸까요.
아니면 그냥 사고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라 그런 걸까요.
누나랑 방에서 알콩달콩 놀던 아들은 피아노 의자에서 까닥까닥하다가 앞으로 고꾸라져 책상 모서리에 앞니를 찧었습니다. 피가 철철 흐르던 모습에 잇몸이 찢어졌나 했는데...
오! 마이! 갓!
윗앞니가 통째로 빠져버린 겁니다.
7~8살 무렵에 빠져야 하는 윗앞니가 6살에 빠져버렸습니다. 너무나도 평온했던 주말 저녁이었습니다. 사고는 한순간에 났고, 평온했던 주말저녁은 난리가 났어요.
정신없던 우리 부부는 식염수에 넣어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진정시키고 우리 마음도 가라앉히느라 바빴거든요.
아이들이 다치면 이상하게 화가 나요. 부잡한 아들에게 화 한번, 신경을 못쓴 우리 부부에게 화 한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마음을 다스리기까지 참 힘들었습니다.
다음 날, 치과에 갔더니 다행히 깨끗이(?) 잘 뽑혀서 영구치 손상은 없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옆에 이가 멍든 것처럼 변색될 거고, 빠진 앞니 자리가 조금씩 줄어들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이가 빠지면 새 이가 나서 그 자리를 메꿔줘야 하는데, 아들은 이가 나려면 한~~~참이나 남아서 자리가 좁아질 수도 있다고 하네요.
빠진 이도 문제였지만 잇몸이 많이 찢어져서 한동안 오리처럼 입이 부었습니다.
그래도 좋다고 배시시 웃는 개구쟁이 아들.
엄마랑 아빠는 속이 터집니다. 어휴...
그 뒤로 아이가 의자에 불안하게 서있거나 앉아있으면 심장이 덜컹 내려앉습니다. 사고 후얼마동안은 집에 있는 피아노 의자 근처에도 못 가게 했어요. 중심이 잘 안 잡히는 의자는 되도록 앉히지 않았고요. 아이가 놀다가 다친 곳을 또 다칠까 봐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이가 빠진 모습을 볼 때마다 속이 상했습니다. 옆에 이도 조금씩 흔들려서 아기 때처럼 과일을 작게 잘라서 주고, 딱딱한 음식은 먹지도 못했어요. 영구치가 이상하게 날까 봐 걱정도 되었습니다.
'아빠 닮아 건치 미남 될 줄 알았는데 물 건너갔네. 갔어!'
'에휴.. 교정해야지 어쩌겠어...'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지. 이가 부러졌어봐 봐. 더 힘들었을 거야.'
'신경에 손상이 가서 영구치도 변색되면 어쩌지?'
이가 빠진 아들을 볼 때면이런저런 생각이 폭풍처럼 거칠게 드나들었습니다.
아이가 크게 다치면 부모 가슴은 새가슴이 됩니다.
조금만 다칠 것 같아도 지레 겁이 났어요. 아이는 괜찮다는데 제가 안 괜찮더라고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듯이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불안한 눈빛을 지켜보던 아들도 스트레스를받았을 겁니다. 전보다 엄마, 아빠의 잔소리가 많아졌으니까요. 새가슴이 된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조심하라고, 이건 위험하다고 자꾸 아이를 말리게 되더군요.
물론 이 불안과 염려증은 시간이 지나니 사라지긴 했습니다.
이제 곧 8살이 되고, 또래 친구들도 하나씩 윗앞니가 빠지고 있습니다. 1년이나 빠르게 이가 빠진 아들도 이제 곧 이가 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