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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감있는 그녀 Oct 27. 2024

연약한 에너자이저

마들랜 3화: 어린이


검은 백마



검고 하얀 말이라니 말이 되지 않.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형용모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 가까이에 형용모순적인 존재가 살고 있답니다. 누군지 맞춰보실래요?



그들을 한 마디로 표현하연약한 에너자이저입니다.



그들은 쉽게 지치는 법이 없습니다.

포기를 모릅니다. 무한 반복을 즐깁니다.

잘 걷지 않아요. 뛰는 걸 좋아합니다.

새로운 모험을 좋아하고 다치는 걸 겁내지 않습니다.

상대의 잘못을 잘 용서해 주고 포용해 줍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이죠.



그들은 무리하면 잘 아픕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쉽게 앓아눕습니다.

 다치고 자주 넘어집니다.

울고 투정을 부립니다.

스스로 하지 못해 옆에서 챙겨줘야 합니다.



누구를 말하는 건지 눈치채셨을까요?

이 형용모순적인 존재는 바로 어린이입니다.

저는 어린이를 17년째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교사로서 엄마로서 가르치고 보살피죠.



어떻게 보면 연약한데 그 누구보다도 강한 존재가 어린이라고 생각해요. 작고 여리고 미숙한 생각을 가졌지만 땅 속의 씨앗처럼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가졌지요.



대학교 4학년,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가 떠오릅니다. 귀여운 1학년 아이들과 함께 실습을 했었어요. 반에서 제일 잘 뛴다는 여학생 한 명이 저에게 달리기 도전장을 내밀어 시합을 하게 되었죠.

결과는 참패! 1학년에게 질 줄이야.

아이는 정말로 잘 뛰더군요. 통통 튀는 에너자이저 같았어요. 지치지 않는 밝은 에너지가 참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를 보면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눈빛은 멍해지고, 의욕도 없어지고, 움직이는 것조차 싫어하는 친구들이 늘어갑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는 환경 때문일까요.

공부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 때문일까요.

아니면... 결핍 없는 삶을 살아서일까요.



미디어 매체를 통해 아는 것은 많아졌지만 그만큼 순수함을 잃어갑니다. 집중력은 짧아져가고 웬만한 걸로는 그들의 흥미를 끌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과제와 학원 수업으로 뛰어놀 시간은 없습니다. 꿈꿀 시간도 여력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어린이의 모습에 어른으로서 어떻게 해줘야 할지 생각이 많아집니다. 연약해도 에너지 넘쳤던 그들이 그냥 연약지기만 할까 봐 걱정이 됩니다.



어떻게 해야 그들에게 다시 활력을 돌려줄 수 있을까요?

떻게 해야 밝고 에너지 넘치는 어린이들이 많아질까요?



저는 그들에게 시간을 주고 싶습니다.

마음껏 뛰놀며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자유시간을.

어른이 다 챙겨주고 도와주지 않고 혼자서 낑낑대며 해결해 보는 고민의 시간을.

자신의 취미와 관심사를 찾아갈 수 있는 여유시간을.

힘들어도 부족해도 견딜 수 있는 인내의 시간을.



그런 어린이를 바라보며, 불안한 눈빛이 아닌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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