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2학기 끝자락, 우리 반 남학생 한 명이 4학년을 넘어5학년 수학 과정에 들어간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이 정도 선행은 교실에서 흔하다. 수학 머리가 있는 친구들은 최소 1년 이상은 선행을 하고 있다.
수학을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마다 학습 수준 차이가 심하다는 걸 체감한다. 어떤 친구는 5학년 과정을 하고 있고, 곱셈과 나눗셈 연산 속도도 아주 빠르다. 선행은 나가지 않아도 현행을 잘 따라오는 친구도 있고, 겨우겨우 따라오는 친구도 있다. 반면, 구구단도 되지 않아서 현행은커녕 2학년 과정을 공부해야 하는 아이도 있다.
선행을 하는 친구들이 단원평가에서 항상 100점을 맞는 건 아니다. 모르고 틀리는 경우도 있지만, 단순 계산 실수가 많다. 문제를 제대로 읽지 않고, 뭐가 급한지 빠르게 풀고 시험지를 제출한다. 천천히 검토하라고 해도 후다닥 보고 제출하는데, 채점하다 보면 어이없는 실수를 해서 안타까울 때가 있다. 계산을 다 하고 답을 옮겨 적지 않거나, 번호를 쓰지 않기도 한다. 문제에서 기호를 쓰라고 했는데 다른 걸 쓰거나, 부등호 표시를 하지 않아틀리기도 한다.
간단한 실수니까 그냥 넘길 수도 있지만, 이게 패턴이 된다면 단순 실수가 아니라 그 아이의 실력이 아닐까. 그래서 개인적으로 수학은차분하게 문제를 읽고 계산 실수를 줄이며,문제에서 요구하는 답을 정확하게 해결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공부 목표는 '학교 공부에 잘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만 하자'이다.
수학은 심플하게, 연산과 교과 문제집을 매일 1장씩 풀고 있다. 그렇게만 했는데도 저절로 선행의 길로 들어섰다. 꾸준히 풀다 보니 학기가 끝나기 전에 다음 학기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현행을 한번 더 복습할까, 선행을 할까 고민하다가 수학이 어려워지는 3학년부터는 선행을 하게 됐다. 기본 개념을 먼저 익히고, 학교에서 선생님과 함께 배운 후, 집에서 복습까지 한 학기 공부를 3회씩 한다. 3회씩 하다 보니 개념이나 연산 등이 탄탄하게 잡혀간다는 느낌이다.
아이 자체도 수학에 재미를 느끼고, 자신감이 높아졌다. 수학 공부를 미루지 않고 즐겁게 하는 편이며,'나는 수학을 잘하는 아이'라는 공부자아상이 생겼다. 사실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에게 명함도 내밀지 못할 수준이나, 아이는 자신 스스로 수학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이 자신감이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반면 5학년 1학기 선행을 나간다는 우리 반 남학생은 수학에 대해 부정적이다. 선행을 나가기 위해서 하루에 수학 문제를 많이 푼다고 한다. 놀고는 싶고, 수학 문제는 많으니 점점 급하게 풀게 되나 보다. 기본 성향자체도 급한 면이 있는데, 수업 시간에도 점점 후다닥 빨리 끝내려고만 한다. 좀 더 창의적으로, 좀 더 완성도 있게 활동하지 못하고 빨리 해치우는 게 습관이 된 건 아닌지 걱정이다.
"4학년 과정 쉽지 않은데, 공부하는 데 어렵지 않았어?"
"어려워요. 문제도 많이 풀어야 해서 지겨워요."
공부하느라 어려웠겠다고 물어보니 수학이 지겹고 어렵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아이를 보며, 하루에 적정한 공부량과 선행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졌다. 물론 수학을 좋아하고 잘 따라가는 친구의 경우 선행을 더 나가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와 맞지 않은 선행은 수학을 더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 반 친구처럼.
그래서 우리 집은 선행은 딱 한 학기정도만 한다. 그 정도가 수업 시간에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자신감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선행을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책을 읽고 문해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수밖에 없다. 나중에 어떤 공부를 하더라도 내용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우선이다. 그 시간을 무리한수학 선행에 빼앗기고 싶지 않다.
긍정적인 공부자아상과 탄탄한 문해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점점 더 어려워질 수학을 아이가 잘 넘어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