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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삐약이 Jun 08. 2023

인생 첫 소개팅, 다들 뭐 드셨나요?

소개팅 쓰레기 콜렉터라는 오명의 빛나는 이야기들

언젠가 한번은 꼭 풀어보고 싶었다. 나의 소개팅 쓰레기들의 이야기를! 내 친구들에게 말해주면 미친거 아니냐고 어쩜 그런 인간들만 나오냐고 진짜 말이 되냐는 반응만 수없이 반복된다. 그게 말이지..


나의 어둑한 학교생활 직장인 라이프에 대한 글은 잠시 접어두고 분위기 전환을 꾀하도록 해보겠다. 내 소개팅 역사는 꽤나 된 편인데, 승률이 높아진 것은 최근 몇 년 한정이다. 분명 대학교 다닐 때부터 소개팅을 아주 간간히 하긴 했는데 잘 된 케이스는 하나도 없다.


돌이켜보니 나의 첫 소개팅 또한 기록적인(?) 사람이 나왔다. 컴퓨터 공학과였나 어디였나.. 나름 괜찮은 대학교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었고 거기서 공대니까 똑똑하겠지 라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소개팅은 똑똑한 거랑은 살짝 별개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


찐한 남성호르몬이 지배하는 그 곳에서 살던 그는 만나기 전에 내게 먹고싶은 게 있냐고 물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소한 결정은 뭐든 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무난한 파스타 등을 제안한다면 그 쪽으로 가야겠다 싶은 차였다. 그리고 소개팅이란 걸 생전 해본 적이 없는데 무슨 선호가 있으랴. 친구들이 으레히 조언해 준 대로 대한민국 소개팅 식사의 디폴트 값인 파스타를 생각했고, 그 또한 무난하게 파스타를 제안했다.


하지만 고된 공부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던지, 그는 소개팅을 직전에 돌연 내게 인도음식을 먹고싶다고 인도음식점은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그 당시 나도 대학에 입학하면서 인도음식에 대해 눈을 뜬 상태였기 때문에 소개팅으로 인도 음식이라니... 난은 어떻게 뜯어서 카레에 찍어 먹을 것이.. 뭘 어떻게 조합해서 시켜야 하나 등 고려해도 답이 잘 나오지 않아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흔쾌히 그의 제안에 응했고 그렇게 우리는 네팔 현지인 출신 사장님이 운영하는 인도 음식점에서 처음 만났다.


연애 경험이 많지 않았던 탓인지 매우 긴장한 그는(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뻘뻘 흐르는 땀으로 상의를 적시며 나와 함께 서둘러 메뉴를 골랐다. 하지만 수많은 날이 지난 지금 내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커다란 원형 접시를 마치 무늬처럼 수놓은 열두 개 이상의 탄두리 치킨, 그것도 닭다리들이었다. 그도 메뉴가 그것인지 몰랐던지 실제로 접시가 세팅되기 시작하자 상당히 당황한 눈치였다. 나 또한 첫 만남에 닭다리를 뜯자니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고, 나는 그가 고개를 숙여 닭다리를 신나게 뜯을 때를 틈타 몰래 조금조금씩 커리와 닭다리 살을 포크로 겨우 떼내어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이라도 하듯 빠르고 신속하게 찰나를 틈타 입으로 욱여넣었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소개팅에서 2차는 꼭 사야한다는 사촌오빠의 스쳐지나간 조언에 기대 비록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도 우리는 까페로 자리를 옮겼고, 그 이후에 뭔가 지난한 대화들이 이어졌던 것 같다는 희미한 기억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 다음 그는 아주 쿨하게 본인의 기숙사였나 열람실이었나 어딘가로 향했고 나 또한 나의 단과대학으로 떠나면서 스피디한 내 인생 첫 소개팅이 끝났다. 그 이후로 나도 그를 부러 찾아보려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졸업 때까지 한 번도 마주치는 일 없이 그렇게 끝나버렸다.

 

물론 오해는 하지 마시라. 이 분은 쓰레기가 아니셨다.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물론 탄두리 닭다리 12개의 충격은 사실 소개팅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연관 검색어로 내 뇌 속에서 굳어져 대학시절 내내 나를 압도하긴 했다. 진짜 쓰레기 이야기를 쓰려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탄두리치킨 소개남 이야기를 잠시 써봤다. 내가 왜 쓰레기라고 언급하냐면 참 어떻게 소개팅 첫날이나 극 초기에 그렇게 한번 해보려고 애들을 쓰시는지.. 각양 각색의 케이스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 지뢰들을 피해가는 데 도움을 받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차근차근히 풀어가보려고 한다. 다들 기억에 남는 소개팅 상대들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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