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며칠 다른 사람이 쓴 세계가 넓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글을 보고 큰 공감을 했다. 나 또한 자신이 경험해 본 바가 많아 타인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그런 품이 넓은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에 했었다. 넓지 않더라도 적어도 나만큼의 비슷한 경험은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쓰다보니 나 또한 많은 경험을 해왔다고 자만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어서 반성하게 된다. 나의 세계로만 세상과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을 것. 끊임없이 열리고 넓어지려고 노력할 것.
보수적인 학교라는 직장의 특성상ㅡ이라고 썼지만 그냥 직장과 직업을 떠나서 보수적인 사람의 특성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ㅡ현실에 안주하며 자급자족하는 생각의 회로를 가진 분이 보인다. 근데 또 삶이란 것이 보통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연속이기 때문에 나 또한 현실에 안주하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
그 분과 가깝지 않았을 때는 몰랐던 부분인데, 외려 나와 그 분 사이의 거리가 예전보다 비교적 좁혀지다보니 알고 싶지 않지만 알게 되는 사고방식이 있다. 전에는 꽤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행보를 보이시는 분이 아닐까 했는데... 역시 사람은 천천히 오래봐야 더 잘 알 수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최근에 유난히 더 느껴진 바인데, 종종 나의 출신 지역이나 과목에 기반한 편견이 은은히 깔린 말들을 일상 속 대화의 질문으로 받곤 한다. 너무 적나라하게 쓰면 타인의 욕을 하는 것 같으므로 쓰지 않겠다. 그런 질문들을 받을 때마다 그렇게 안 봤는데 그 분의 세계가 참 편협하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관점에서 본인의 편견에 기반한 질문을 하실 수도 있겠지만, 또 그 하나가 전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런 편견에서 출발하는 질문들이 참 불편하다. 어쩌면 그 분은 이전에도 많은 질문을 그렇게 하셨는데 내가 불편하게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선부터 '어, 이거 좀 불편한데?'라는 느낌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다.
저 분 뿐만 아니라 오래전에 함께 근무했던 분도 내 과목이 음악이라는 이유로 공부를 못해도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기분 나쁜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본인의 자녀를 음악교육과에 진학시키겠다나 뭐라나. 그럼 본인의 자녀가 공부 머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인데 생각보다 메타인지가 뛰어나신 분일지도?
그 땐 공부 잘하는 애들이 음악도 잘한다고 되받아쳤었는데 그 때의 치밀어오르던 분노는 다시 생각해도 꽤 생생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다시 생각해도 참 별로였다. 오늘은 비슷하지만 결이 달랐던 질문에 또 다른 맥락으로 대답해서 상황을 넘겼다.
지역감정에 기반한 질문은 어차피 말해봤자 전혀 납득이 되지도 않을 것 같으니 넘겨버리는 것이 가장 수월한데, 여러모로 이런 편견에 기반한 질문들을 받으면 짜증이 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다시 보이는 것은 덤.
물론 나 또한 과목별 특성에 대한 편견이 있다. 일을 하면서 쌓여온 빅데이터의 축적이라 하자. 하지만 그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일부를 내가 경험한 것이니 그걸 통해 모든 교과의 선생님들을 일반화하지 말아야겠다는 반성을 또 하게 된다.
며칠 전에 추석을 맞아 본가에 내려갔다가 어떤 사회적 현상에 대한 반감을 강하게 표현했더니 동생이 설령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누나처럼 생각하더라도 그렇게 대놓고 싫은 표현은 하지 말라는 충고를 해줬다. 그 사람들에겐 다른 대안이 없는 선택일거라고.
그런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자신들의 삶에 주어진 선택지 중 가장 최선의 선택일 것이고, 그 또한 그들이 선택한 살아가는 방식일테니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으로 들렸다.
참 실천이 잘 안되는데 나도 어떤 점에 있어서는 타인이 볼 때 저런 논란이 되는 언행을 하는 사람일수도 있겠지. 하루하루 한 달 한 달 흐르는 시간이 내 속에 쌓여 나이테가 둘러지는 느낌이 든다. 그 사이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그냥 받아들여야만 하는 게 인생을 살아내는건가 싶고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