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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Feb 15. 2023

비 오는 날엔 우육면이 생각난다.

10. 오랜만에 만난 대만, 타이베이 우육면 연대기 

비 오는 날, 우육면의 추억 

대만 음식 중 가장 좋아하는 걸 꼽으라면 우육면이다. 10년 전 첫 대만 배낭 여행할 때였다. 당시 난 대학생으로서 무게 20kg 가까이 되는 배낭을 메고 대만 뚜벅이 여행을 하고 있었다. 카우치 서핑을 이용해 여행을 할 경우  단점은 호스트 시간에 맞춰야 한다는 거다. 항상 개방되어 있는 호텔, 게스트하우스와 달리 호스트들이 자신의 집 일부 (게스트룸 혹은 말 그대로 카우치)를 여행자들에게 내주는 것이기 때문에 호스트 퇴근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날 역시, 어느 지역이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대만 중부 지역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호스트와는 오후 8시쯤 만나기로 했는데, 난 그날 아침부터 다른 곳에서 여행을 하고 이 지역에 막 도착했던 참이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바깥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당시 우산을 챙기지 않았던 터라 우산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만나기로 한 호스트가 스쿠터를 타고 날 픽업하러 왔는데 커다란 배낭으로 무게 중심이 뒤로 쏠리는 것을 악착같이 버티며 스쿠터 뒷자리에 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수준이 아니었다는 거. 호스트는 "밥은 먹었냐"라고 묻더니, 한 식당 앞에 스쿠터를 댔다. 


꽤 넓은 식당이었는데 사람들은 한 절반 정도 차 있었다. 당시 난 중국어를 하나도 못했기 때문에 이게 무슨 식당이지 감도 못 잡고 있었는데 이 친구는 "소고기 국수(Beef noodle)"을 먹으러 왔다고 했다. 어리바리하게 앉아 있으니 이윽고 그 친구와 내 앞엔 갈색 진한 국물에 큼직한 고기가 가득 들어있는 우육면이 나왔다. 나의 첫 우육면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국물부터 떠먹어보았는데 이걸 맛이 있다고 표현해야 할지, 맛이 없다고 표현해야 할지 애매했다. 당시 나는 중화권 음식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대만 여행하면서 먹는 음식 하나하나가 새로웠다. 맛이 있고 없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라, 머리표에 물음표가 가득 생기는 맛. 그리고 한참 후에 그 맛이 생각나면 그제야 "아 그 음식 맛있다"라고 느끼게 되는 거다. 


어찌 됐건 나의 첫 우육면은 한국 육개장처럼 막 얼큰한 것도 아닌데, 국물은 담백하면서 진한 맛이다. 한국의 소고깃국 하면 고기가 되게 작게 나오는데 우육면의 고기들은 손가락 길이만큼 큼직하고 잔뜩 들어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 날 먹은 우육면이 다시 생각난 시점은, 한국에 돌아와서 한참 지난 후였다. 그날도 비가 내렸다. 


그때 먹었던 우육면을 찾아서 

이후 지극히 토종 한식 입맛에서 다양한 중화요리, 향신료의 맛 세계에 눈을 뜨고 살면서 먹어 본 음식이 꽤 다양해지고, 글로벌해진 시점. 우육면이 미치도록 당기기 시작한 시점은 코로나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이었다. 당시 코로나 때문에 있던 약속도 계속 깨지던 때였는데, 종로에서 지인을 만나기로 했는데, 직전에 바람을 맞은 거다. "미안, 남자친구가 코로나 걸렸다고 해서 지금 나도 검사받으러가" 란 문자에 딱히 질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코로나 초기 시절엔 "코로나 확진/증상/의심"은 변명계의 마법 키워드였으니. 


어찌 됐건, 난 종로에 이미 도착한 후였다. 심지어 비가 온다. 그냥 집에 돌아가기엔 애매해서, 혼자라도 식사를 하고 가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 혼자 먹기 적합한 곳을 찾다가 예전에 한 중국인 친구가 추천한 우육면집이 생겨서 방문했다. 사람이 꽤 많았지만, 혼자 와서 그런지 약 5분 정도 대기한 끝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정말 유명한 우육면집이었기 때문에 음식이 나오기까지 난 기대에 부풀어 가슴이 벅차올랐다. 친구와의 약속이 깨진 것에 대한 실망감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오히려, 이 우육면을 만나기 위한 일종의 복선이 아닐까란 혼자만의 망상에 잠시 빠졌을 정도. 


그렇게 내 앞에 등장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육면 국물을 떠먹었을 때 내 머릿속엔 느낌표가 아닌 "..."이 가득했다. 이게 내가 알던 우육면 맛인 건가? 살짝 혼란스러웠다. 혹은, 한국 사람들 입맛에 맞춘 우육면인가. 가게 설명 등을 참고하면 대만 현지에서 직접 비법을 배워와 만들었다고 하는데, 내 혀가 기억하는 우육면과는 사뭇 달랐다. 아, 물론 '우육면'이란 사실을 가리고 본다면 이 국수는 맛있는 음식이 맞다. 담백한 일본 라멘류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틀림없이 이 우육면도 좋아하리라. 내가 기억한 첫 우육면은 강렬할 정도로 국물이 진한 검붉은 색이 돌았는데, 내 앞에 놓인 면엔 붉은 기가 없다. 


이후, 난 한국에서 우육면 맛집을 계속 찾아다녔다. 1주일에 1번 정도는 우육면이 생각나서, 집 근처 우육면 맛집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디 새로운 지역 갈 일이 있으면 그곳 근처 우육면 맛집 있는지 검색부터 해봤다. 하지만, 결국 코로나 기간 동안 난 만족스러운 우육면집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대만에서 처음 먹었던 우육면의 기억이 오랜 세월을 거쳐 퇴색되고 나만의 환상이 만들어낸 게 아닐까 스스로 착각이 들었을 정도다.


1일 1 우육면 결심  


대만 하늘길이 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생일 기념으로 대만 타이베이행 비행기를 탔다. 대만 가는 것 자체가 설레서 대만에 가면 할 것들 5개를 막 써서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그중 하나가 "1일 1 우육면 하기"였다. 


한국에서 오후 1시쯤 비행기를 타고, 숙소에 체크인, 환전에 다음날 아리산행 버스표 구매까지. 이것저것 다 처리하다 보니 어느덧 오후 8시였다. 어중간한 시간에 먹은 기내식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여서 출출했다. 먹구름만 가득한 날씨가, 해가 떨어지니 빗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구글맵을 켜서 근처 "우육면"을 검색했다. 그 와중에도 맛있는 곳을 찾고 싶어서 현지인 리뷰와 후기가 많이 달린 곳 위주로 찾았는데 눈에 들어온 곳이 있었다. 토마토 우육면이 시그니처라고 하는데,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아 여기로 가야겠다" 생각했다. 토마토 육수를 베이스란 우육면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난 토마토탕, 토마토로 만든 국물요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왜 우리나라는 토마토를 국물 우려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란 생각이 들 정도로 해외에선 토마토 베이스 스튜도 많고, 중화권이나 동남아시아 등 꽤 많은 나라에서 토마토 국물 요리가 참 많다. 토마토로 국물을 내면 토마토 특유의 감칠맛이 있는데 이게 꽤 중독성이 있다. 


내가 찾은 토마토 우육면 맛집은 걸어서 15분 거리. 우산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우육면집을 향해 돌진했다. 인기 많은 곳이라더니 줄로 추정되는 사람들 무리가 보였다. 아, 이거 기다려야 하는 건가 살짝 절망하다가 일단 번호표를 뽑아야 하나 싶어서 안에 가서 기웃거렸는데 사장님이 "몇 사람"이냐고 물었다. 내가 혼자 왔다고 하니, 아 마침 1명 자리 비웠다며 바로 안내해 줬다. 


물론 한 테이블에 합석하는 형태인데, 우리나라의 널찍한 테이블과 달리 대만 조그마한 식당의 테이블은 정말 말도 안 되도록 좁다. 그 와중에, 자리마다 유리막이 쳐져 있어 더 좁은 느낌이다. 내 앞엔 두 남자가 자신들의 우육면을 기다리면서 작은 반찬류를 먹고 있다. 난 얼른 주문표를 체크해 사장님에게 건넸다. 


워낙 장사가 잘되는 곳이라 우육면 나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던 거 같다. 내 앞의 두 남자들이 이미 자신들의 우육면을 반쯤 먹었을 때 내 앞에 그릇이 놓였다. 

토마토 우육면 

처음엔 "어라?" 하고 내 주문표를 다시 한번 살펴봤다. 면발이 왜 이렇지? 일반 흰색의 국수 수타면이 아니라, 아주 가늘고 투명한 당면이 들어가 있었다. 아까 면 종류를 선택하는 난이 따로 있었는데 일반면과 이 당면을 선택하는 것 중 내가 착각하고 당면을 체크한 것이었다. 그래도, 사실 국수를 먹을 때 면보단 국물 파라서 사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냥 당면은 면에 국물맛이 잘 안 베이는데.. 란 살짝의 아쉬움이 있을 뿐. 


대신 국물맛이 그 아쉬움을 완전히 없애주었다. 토마토 감칠맛이 잔뜩 들어간 이 국물 맛은, 그동안 내가 먹어본 우육면 국물과는 완전히 달랐다. 담백한데 토마토 감칠맛이 있고, 소고기도 잔뜩 들어가 있어. 아, 그래 이게 우육면이지. 하면서 호로록 감탄하면서 먹었다. 


기다린 건 한 20분이었던 거 같은데 우육면은 거의 10분 만에 먹은 듯싶다. 면도 미끄러운 당면 재질이라 더 입안에 빨려간 느낌. 살짝 머쓱한 느낌으로 사장님에게 계산을 하는데 남자 사장님이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물었다. 


-한국인이에요?

-네, 한국인이에요! (말투에서) 티가 나나요?

-한국 연예인 OOO 알아요? 

-아 제가 한국 연예인을 잘 몰라요... 


원래 한국 연예인을 잘 모르는데, 그걸 중국어 발음으로 들으면 누군지 감잡기 정말 힘들다. 그나마 해외에서 정말 유명한 배우들 (김수현, 전지현, 송중기 등) 중국어식 발음만 유추해서 아는 정도랄까? 어찌 됐건 이 사장님은 나에게 왜 뜬금없이 한국 연예인 누구를 아냐고 묻는 건가 싶어서 왜 묻냐고 되물었다. 혹시, 그 연예인이 이곳에 방문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걸까. 


-그 사람이랑 닮았어요. 

-??????? 누구요????? 

-그 한국 연예인이랑


더 묻고 싶었는데 여전히 가게는 바쁘고 대기하던 사람들을 안내해줘야 하기 때문에 결국 더 묻진 못하고 나와야 했다. 살면서 연예인 닮았다 얘기는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괜스레 더 궁금해졌다. 대체 그 사장님이 말하는 연예인은 누구였을까. 


융캉제 유명한 우육면은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한국 사람들의 대만 타이베이 맛집 동선을 짤 때 대개 "융캉제에선 우육면"이 공식화되어 있다. 난 여태 대만에 와서 융캉제에서 우육면을 먹어본 적은 딱히 없는데 찾아보니 융캉제 근처에 우육면집이 많다. 어차피 융캉제에 갈 일이 있었던 터라, 겸사겸사 나도 남들처럼 우육면을 융캉제에서 먹어보기로 했다. 


눈여겨본 집이 있는데 워낙 유명한 곳이라 점심때 가면 웨이팅이 길다고 해서 차라리 오전 11시쯤을 노리기로 결심했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융캉제까지 약 25분 정도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융캉제 우육면 하면 제일 유명한 집인 데다가 미슐랭 인증도 받고, 무엇보다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11시인데도 이미 내부는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이번에도 딱 1 사람을 위한 자리가 있어서 대기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격표를 보니, 어제 먹은 우육면 가격의 거의 3배 수준이었다. 미슐랭 인증받은 만큼, 그에 맞는 값어치를 하는 걸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우육면집 평균 가격이랑 비슷한 수준. 비싼 만큼 맛있겠지 하고 소힘줄과 쇠고기가 들어간 우육면을 택했다. 


어제와 달리 우육면은 거의 주문하자마자 3분 만에 튀어나온 듯했다. 거의 단일 메뉴라서 그런가 주문 나오면 그냥 바로 내올 수 있는 수준. 일단 비주얼은 엄청났다. 어제 먹은 우육면의 그것보다 고기 덩어리부터 압도적이었으니. 국물 색깔도 진한 검붉은 색인 게, 10년 전 먹은 내 첫 대만 우육면이 연상되었다. 

끊임없이 고기가 나왔던 우육면 

와, 이건 진짜다 하고 면을 집어 입에 넣는 순간, 이게 뭐지 싶었다. 면에서 밀가루 냄새가 강했다. 국물 맛이 면에 배기는커녕, 국물과 면이 완전히 따로 놀고 있었다. 빨리 나오는 만큼, 그냥 끓는 국물에 준비된 면을 넣고 그냥 바로 내온 걸까란 의심이 들 정도. 국물맛에도 괜히 그 밀가루 내가 배여 나오는 거 같아 맛이 반감되는 느낌이었다. 전통도 오래되고 유명한 우육면 맛집이고 대만 우육면 가격의 2~3배 가격이었기 때문에 실망은 더욱 컸다. 이상하리만큼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잘 먹는다. 


면엔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아 고기와 국물만 계속 먹었다. 고기는 확실히 엄청 많다. 먹어도 먹어도 고기가 끊이지 않는다. 비싼 가격이 다 이 고깃값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고기와 국물만 먹다 보니 마지막엔 결국 면만 한가득 남은 모양이 되었는데 누가 보면 "어제 술 거하게 달리고 해장하러 왔구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대만 도착한 지 이틀째, 1일 1 우육면의 결심은 이 융캉제 우육면으로 인해 와장창 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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