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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Oct 17. 2023

엘살바도르에선 정말 비트코인을 쓸까?

엘살바도르, 비트코인과 감자튀김 

이 브런치를 보시기 전에 아래 글을 읽고 오시면 더욱 도움이 됩니다. 
https://brunch.co.kr/@msk-y/151 


평화로운 엘살바도르 광장과 아점 

산타 아나(Santa ana)는 수도인 산 살바도르(San salvador) 다음으로, 엘 살바도르의 제2의 도시이다. 어젯밤 7시에 첫 조우한 이 도시의 첫인상은 '스산함'이었다. 배낭을 메고 약 20분 걸어가는 동안 터미널 옆 시장을 제외하곤 거리는 썰렁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도착한 숙소는 다행히도 할머니 호스트가 맞이해 주는 따뜻한 가정집이었다. 이곳에서 하루 숙박한 후 다음날, 다른 호스텔로 이동할 예정이다. 

엘살바도르 산타 아나 교회 

낮의 엘살바도르는 밤과 달리 평화로웠다. 도시 중심가로 갈수록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산타 아나의 메인 광장은 그리 크지 않다. 광장 중심에는 분수가 있는 커다란 공원이 있고 그 주변으로 눈에 띄는 순백의 고딕 양식 교회, 국립 극장 등 공공 문화 건물이 들어서있다. 특히 멕시코나 중남미에서 흔히 보기 힘든 네오고딕 양식의 교회는 확실히 눈에 띈다. 공원에선 사람들이 여유롭게 쉬고 있다. 사실 광장 자체는 그리 볼 게 많이 없다. 


일단 아침도 먹지 못한 터라, 아점을 해결할 곳을 찾는데 감자를 튀기는 간이식당들이 보였다. 약 6~7개 노점상들이 붙어있었고 테이블과 의자를 안에 설치해, 안에서도 먹고 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어제 엘 살바도르 첫끼로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은 터라, 오늘은 다른 걸 먹고 싶었지만, 유독 한 노점이 사람들로 붐비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꽤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노릇노릇하게 튀겨지는 감자튀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안으로 빨려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메인 메뉴는 햄버거와 토르타(바게트 빵을 사용한 샌드위치 같은 개념)였다. 토르타와 감자튀김, 콜라를 주문했다. 냉장고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미지근한 콜라를 먼저 받았고 (놀랍게도 난 미지근한 콜라와 맥주에 이미 적응해 버린 상황이다) 곧바로 감자튀김, 토르타가 나왔다. 감자튀김은 나의 취향 따윈 존중하지 않는다는 듯, 케첩과 마요네즈, 머스터드 소스, 치즈까지 가득 뿌려져서 나왔고 이쑤시개에 따로 소금봉투가 꽂혀 나왔다. 부먹과 찍먹을 가리진 않지만 소스를 과하게 넣어서 먹는 걸 좋아하진 않는 터라 조금 아쉬웠지만 불평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토르타와 감자튀김

토르타 역시 간밤에 먹은 햄버거처럼 얇은 고기 패티에 싸구려 분홍 소시지, 슬라이스 치즈, 양상추 등에 소스 범벅한 상태로 제공되어 이미 빵이 눅눅해져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소스 빨로 먹는 문화인 건가. 한 입 베어무니 다소 느끼했는데 그제야 테이블 위에 있는 피클통의 존재를 인식했다. 당근과 오이, 파프리카 등으로 만든 피클조림통은 거대했고 이것을 언제든지 집을 수 있도록 커다란 집게가 테이블마다 놓여 있었다.  피클을 양껏 집어 토르타 안에 넣어 먹으니 새콤달콤한 피클이 토르타 소스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었다. 

감자튀김과 토르타가 세트 개념이 아니라, 각각 식사 대용으로 먹는 단품 개념이라 얼떨결에 혼자서 2인분의 양을 먹게 되었지만, 이미 멕시코와 중미를 거치면서 위가 커진 지는 꽤 됐다. 뭐 어때, 어차피 그만큼 많이 걸을 생각이다. 내가 지불한 식사값은 4.15 달러였다. 




엘 살바도르에선 비트코인을 정말 쓸까? 

엘 살바도르에선 미국 달러를 쓴다. 비록 미국 화폐 정책에 큰 영향을 많이 받지만, 실패한 화폐 정책으로 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처럼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는 것보단 나은 선택으로 보인다. 대신 엘살바도르 물가 사정에 맞게 이곳에선 1달러 미만 센트를 적극적으로 쓴다. 1.29 달러, 1.44달러 식으로 소수점 두 자리까지 표기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통에 계산이 직관적으로 되지 않는다. 거스름돈도 1센트, 10센트 등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동전을 가득 받아 내가 제대로 거스름돈을 받았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엘 살바도르에서 돈 쓰려면 빠른 세 자릿수 암산 능력은 필수인 듯하다. 

엘 살바도르 흔한 가격표. 소수점 두 자릿수까지 살리는 디테일 

그렇다면 엘 살바도르가 굳이, 달러와 함께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1) 미국 달러 화폐 정책 의존도를 줄이고 2) GDP 20%에 해당하는 송금 수수료 절감 3) 신용도 부족으로 시중 은행 계좌를 못 만드는 국민들을 위한 대안이다. 2) 번에 대해서 보충 설명을 하자면 많은 엘 살바도르 국민은 미국 등 해외에서 돈을 벌어 자국 가족들에게 송금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웨스턴 유니온 등 글로벌 송금 업체를 통해 보내는데 이들이 때어가는 수수료가 꽤 많으니 (GDP 20%를 차지할 정도면 어마어마하다) 이를 비트코인을 통해 아껴보기 위함인 셈이다. 


정부는 엘 살바도르 국민들의 비트코인 사용 활성화를 위해 30달러에 해당하는 비트코인이 들어간 지갑을 모든 국민들에게 배포했지만, 여전히 비트코인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데는 어렵다. 물론, 아예 비트코인을 안 쓰는 것은 아니다. 한 쇼핑몰에서 내가 ATM기에서 달러를 인출하기 위해 기다리는 30분 동안 비트코인 ATM기를 통해 비트코인을 달러로 바꾸는 사람들을 약 3명 정도 목격했다. (비트코인 ATM기를 통해서 비트코인을 구매하거나, 역으로 비트코인을 달러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엘 살바도르에선 보유한 비트코인을 달러로 바꿔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비트코인을 가게에서 화폐처럼 쓰는 사람들은 매우 적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형 마트 등을 방문하면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한 계산대가 따로 표시되어 있고, 가게마다 비트코인 결제를 받는다는 낡은 스티커를 확인할 수 있다.

비트코인 ATM을 사용하고 있는 엘 살바도르 사람 

그럼 비트코인은 모든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실패한 정책일까? 엘 살바도르 대통령과 비트코인 자문인 맥스 카이저 등은 비트코인 보급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비트코인이 가져다줄 미래를 긍정적으로 점친다. 엘 살바도르 화산 에너지를 이용해 비트코인 채굴을 통해 국가 경제 혁신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한다. 물론 비트코인에 대해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서 이들의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 일지 혹은 정말 제대로 들어맞을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래도, 나름 실패한 통화 정책으로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는 국가보단 꽤 참신한(?) 방법으로 문제를 돌파하는 이 중미의 작은 국가의 도전이 신기할 뿐이다. 


마치, 모두에게 무시받는 언더독이 "두고 봐, 내가 다 바꿔버릴 테니"하고 칼을 가는 느낌이랄까. 한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노답 국가에서, 갱 소탕 작전, 비트코인 법정 화폐 채택 등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나라를 재정비하는 이 나라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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