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쿠엘보, 데낄라 성지 방문
여행할 때 '양조장/증류소'는 매력적인 콘텐츠다. 기네스 공장이나 칭따오 맥주 공장처럼 유명 맥주 브랜드 양조장은 해당 도시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술을 그리 즐겨 마시지 않는 사람도 방문하게 만든다. 프랑스 와인 산지에서 포도밭을 바라보며 와인 마시는 경험은, 우리가 레스토랑에서 한껏 멋 부려 마시는 와인의 맛과 다르다. 스코틀랜드의 광활한 풍경을 감상하며 코를 찌르는 강렬한 피트 위스키와 굴을 함께 먹으며 잠시나마 무라카미 하루키가 되어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근사하다. 각 나라의 술은 현지 자연환경을 응축하고, 자연의 섭리에 인간의 힘을 합쳐 액체화한 산물이다. 술을 양조하기 위해선 1)깨끗한 물과 더불어 2)그곳에서 많이 나는 재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로, 여행지마다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술을 마시는 것 역시 그 곳의 자연환경을 강렬하게 경험하는 방식이다.(라고 술여행을 정당화해본다)
그렇기 때문에 멕시코 여행을 할 때 데낄라를 만드는 양조장 방문하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멕시코 하면 이름마저 경쾌해 흥이 나는 "데낄라!"이지 않는가. 손등에 소금을 조금 덜어, 가느다란 잔에 데낄라를 가득 채워 원샷한 후 손등 위 소금을 핥아먹는다. 멕시코 파티에 절대 빠지지 않는 주인공과 같은 이 매력적인 술 양조장 역시, 여행자뿐 아니라 멕시코 현지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멕시코 '과달라하라'에 가면 데낄라 마을에 가야 한다는 것 역시 멕시코 사람들의 국민 여행 코스이다. 오직, 이 데낄라 마을을 방문하기 위해 과달라하라에 오는 여행객들도 많다. 마침, 멕시코 시티에서 알게된 친구A가 데낄라 마을에 가보고 싶다며 과달라하라로 오겠다고 했다. 술 여행은 혼자보단, 동행이 있는 것이 재밌는 법. 과달라하라에서 생활하는 동안 친구A가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데낄라 마을에 가는 흥미로운 방법
데낄라 마을을 즐기는 가장 호화스러운 방법은 데낄라 호세 쿠엘보 열차에 올라타는 것이다. 호세 쿠엘보는 전 세계에 가장 많이 알려진 데낄라 브랜드인데, 데낄라 마을에 왔다면 호세 쿠엘보 증류소는 꼭 들러봐야 한다. 호세 쿠엘보는 그 데낄라의 맛처럼 화끈하게 '데낄라를 무제한으로 즐기는 전용 열차'를 운영한다. 과달라하라 도시에서 데낄라 마을까지 약 1~2시간 소요되는데 이 두 시간 동안 기차 안에서 데낄라에 대한 간단한 클래스와 함께 무제한 테이스팅을 한다. 데낄라 마을에 들어가기 전부터 기차 안에서 데낄라로 여행객의 취기를 올려 여행의 흥을 더한다.
호세 쿠엘보 열차 투어를 경험해 볼까 고민했지만, 약 20만 원에 가까운 가격에 "차라리 이 돈으로 데낄라 마을에서 숙박을 하며 1박 2일 데낄라를 즐겨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데낄라는 맥주와 달리, 많이 마실 자신도 없었고 이왕 데낄라에 취할 거라면 그곳에서 숙소를 잡는 게 경제적이었다.
그래서 과달라하라에서 데낄라마을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맨 정신으로 도착했다. 데낄라 마을은 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작은 마을이었는데, 과거 식민지 당시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중앙 광장과 작은 교회, 광장을 따라 둘러싼 식당가들까지. 걷기 좋은 작은 마을이다. 우린 도착하자마자 시장에 가서 타코로 배를 채웠다. 곧바로 호세 쿠엘보 증류소부터 들를 예정이었기 때문에 빈 속에 독한 증류주를 채우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먹어야 했다.
관광지 마을이라, 타코 맛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는데 의외로 상당히 맛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관광객보단 여기 동네 마을 사람들밖에 없다. 역시, 어딜 가나 시장에 가면 먹거리 실패는 없다. 다른 관광객들은 광장 주변 근사한 식당에서 여행 온 기분을 내고 있으리라.
"하늘을 나는 사람들"
타코를 먹은 후 호세 쿠엘보 증류소로 향하는데, 광장에서 흥미로운 의식이 펼쳐졌다. 전통의상을 입은 네 명의 남자가 최소 30m 정도 되는 하얀 기둥을 타고 올라간다.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하얀 기둥 끝까지 올라간 네 명은 다 같이 허공으로 몸을 던진다. 이들의 발에는 끈이 매어져 있는데, 마치 회전하는 놀이기구처럼, 신기하게도 그 상태에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이 아슬아슬한 곡예쇼는 '볼라도레스(Voladores, 하늘을 나는 사람들이란 뜻)'라고 불리는 일종의 제례의식이었다.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에도 등록된 이 제례의식의 기원은 아즈텍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해지는 바로는, 이 볼라도레스 의식은 신들에게 극심한 가뭄을 멈춰달라는 요청하는 기우제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엔 대부분 볼라도레스 의식이 관광 볼거리처럼 바뀌었지만, 여전히 일부 지역에선 종교 제례 의식처럼 진행된다고 한다.
호세쿠엘보 증류소 투어
호세 쿠엘보 증류소 투어는 여타 유명 술 브랜드 양조장/증류소 투어와 비슷하게 체계화되어 있었다. 투어는 영어와 스페인어로 나뉘고, 하루에도 여러 회차 진행된다. 주말 기준으로, 한 회차당 영어그룹엔 최소 30명 이상, 스페인어 그룹은 최소 50명 이상은 족히 되어 보였다. 가이드와 함께 호세 쿠엘보의 증류소 시설을 둘러보고, 역사 등을 듣는다. 솔직히, 처음 호세쿠엘보 브랜드 스토리를 제외하면 다른 것은 거의 흘려듣게 된다. 머릿속엔 그저 이 투어의 마지막이자 하이라이트가 될 "테이스팅"에 대한 기대감만 가득할 뿐.
데낄라는 선인장의 일종인 블루 아가베(용설란)로 만든 멕시코 증류주를 뜻하며, 프랑스 샴페인 지방에서 생산되는 것만 샴페인이라고 부르는 처럼, 이곳 과달라하라시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을 데낄라라고 부른다. 또한 블루 아가베를 최소 51% 사용해야 데낄라의 조건을 충족시키는데, 이 함량이 높을수록 비싸다. 즉, 데낄라를 고를 때 선물용으로 고급 데낄라를 사고 싶다면, 100% 블루 아가베를 사용했는지 확인하면 된다.
아가베 수액은 사탕수수처럼 당분이 많은데, 이 수액을 채취해 발효하면 흔히 멕시코의 막걸리로 비유되는 풀케라는 탁주가 된다. 그리고 이 탁주를 증류한 것이 데낄라의 기원이다. 데낄라는 블루아가베의 잎을 다 베어내고 남은 심인 피냐(Piña)를 구덩이에 넣고 찐 후 이 당분을 짜낸 즙으로 제조한다. 투어를 할 땐 구워낸 이 피냐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나뭇가지처럼 생긴 이 피냐를 쪽 빨아보면, 마치 사탕수수 즙처럼 달콤한 맛이 난다.
데낄라 베럴이 가득 쌓인 보관실까지 지나면, 마지막 테이스팅룸으로 도착한다. 거대한 테이블 위에 유리잔 3개가 세팅되어 있다. 가이드는 갓 정제되어 투명한 데낄라(블랑코 Blanco)부터 최소 2개월~1년 숙성되어 호박색을 띄는 레포사도(Reposado), 최소 1년 이상 숙성되어 가장 진한 호박색을 띄고 있는 아녜효(Añejo)를 따라준다. 넉넉한 멕시코 인심답게, 거의 1샷만큼 넉넉하게 채워준다.
데낄라를 올바르게 음미하는 법은 위스키의 그것과 비슷하다. 색을 확인하고, 코를 잔에 대 향을 맡고, 입에 잠시 머금은 다음에 숨을 들여 마셨다고 내뱉으면 데낄라 특유의 향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빠르게 원샷으로 털어 넣는 데낄라를 향과 그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마시니, 새로운 느낌이다.
어느 게 제일 맛있냐는 가이드의 질문에 나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들은 진한 아녜효(Añejo)에 손을 들었다. 역시 술은 오랫동안 숙성한 게 맛있는 법이다.
호세쿠엘보 증류소 투어를 마치고 데낄라 마을에서 우리만의 펍크롤링을 했다. 과달라하라로 다시 돌아갈 필요 없이 이곳에 묵을 숙소를 마련하니, 마음이 편안하다. 다양한 종류의 데낄라를 마셔, 이미 알딸딸해진 정신으로 숙소까지 걸어갔는데 마침 숙소엔 테라스가 있어 밤공기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하늘을 바라보는데 밤하늘 별이 총총 보인다.
또 다른 데낄라 증류소를 찾아서
다음날엔 소규모 브랜드 증류소에 가기로 했다. 호세 쿠엘보 증류소 투어에서 아쉬웠던 점은 광활한 아가베 농장들을 볼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었는데, 일부 소규모 브랜드에선 아가베 농장까지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호세 쿠엘보 증류소 투어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우리 둘만의 프라이빗 투어를 즐길 수 있다. 호세 쿠엘보처럼 기업화된 투어보다 소소하게 진행되고, 날것으로 진행되는 투어 느낌이라고 할까.
근사한 테이블과 잔 없이, 술이 익어가는 공간에 서서 플라스틱 컵에 시음하면 어떠리, 데낄라는 고급진 환경에 좋은 유리잔에 따라 천천히 음미해서 먹는 것보다, 서서 빠르게 휙! 하고 원샷하는 게 제 맛인 술이지 않는가.
시음까지 마치면, 이곳 증류소 가이드는 아가베 농장에서 마음껏 즐기고 가라며 우리를 풀어준다. 푸른 하늘 아래, 광활하게 펼쳐진 아가베 농장은 멕시코에서만 볼 수 있는 이국적인 풍경이다. 메마른 토양 위에 자리 잡아, 사방으로 뾰족하게 솟은 아가베의 잎은 날카로워서 실수로라도 그 위에 넘어지면 몸을 관통할 것과 같은 위협적이다. 쓸모없어 보이는 이 아가베에서 최초로 수액을 발견하고, 술로 만들어 먹을 생각한 사람은 누구일까.
작열하는 태양 아래,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아가베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과달라하라로 향하는 버스가 지나가는 길목으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은 따로 없었고, 버스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어 타야 한다) 그 와중에 도로변에 데낄라 칵테일을 만들어 도자기잔에 넣어 파는 아저씨가 있다. 멕시코 스럽게 역시, 도자기 상단에는 고춧가루가 잔뜩 묻어 있다. 기념품으로 좋겠는데? 란 핑계로 우리는 한잔씩 이 도자기에 담긴 데낄라 칵테일을 들고 버스에 올라탔다. 멕시코에선 공공장소 및 버스 등에서 음주가 허용되진 않지만, 데낄라 마을에서 과달라하라로 가는 이 버스에서만큼은 암묵적으로 허용된다. 데낄라 마을로 향하는 순간과 떠나는 그 순간까지 데낄라에 마음껏 취할 수 있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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