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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Nov 21. 2024

50년 전통 시장표 "미친 샌드위치"

라 토르타 로카 (La torta loca) , 플라우타 (Flauta)

"과달라하라에서 맛있는 거 먹으려면 시장을 가봐. 산 후안 데 디오스(San juan de Dios) 추천해" 

 과달라하라에 한 달 동안 살면서 가장 많이 방문한 단골 타코 노점 할아버지는 인상이 좋았다. 스몰토크 제왕이라서 첫날부터 이것저것 나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는데 스페인어 연습도 할 겸, 말동무가 되곤 했다. 보통 타코는 앉은자리에서 빨리 먹고 가는 음식인데, 나는 태평하게 의자에 앉아 한 20분 넘게 주인장이랑 노가리를 떨곤 했다. 


과달라하라에서 한 달 동안 뭐 할 거냐는 질문에 나는 그저 "글쎄요, 맛있는 거 많이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시장에 꼭 가보라는 주인장 할아버지의 추천에 구글맵에 일단 표시를 해두었다. 언젠가는 가겠지. 


이 혼잡한 시장 속에서 찾은 "미친 샌드위치"

산 후안 데 디오스 시장(San juan de dios)은 단순 동네 일반 시장이 아니었다. 멕시코를 넘어 라틴 아메리카 통틀어 가장 큰 실내 시장이며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곳이다. 현지 친구 말에 의하면 멕시코 타 지역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물건을 저렴하게 공수한다고 한다. 하지만 워낙 규모가 크고 혼잡한 곳이기 때문에 혼자 가면 길을 잃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산 후안 데 디오스 시장은 낮 시간대는 괜찮지만, 해 질 녘 이후엔 인근에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이기 때문이다. 


이미 시장 쪽은 현지 친구와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엔 나 혼자 간단히 훑어보고 음식들을 파는 곳들을 찾기 시작했다. 식당가가 따로 있었는데, 오늘은 시장 식당이 아니라 이곳에서 먹을 수 있는 길거리 음식들을 찾아왔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헤매야했다. 


우연히 들어간 구역에서 "아 이곳이다"란 확신이 생겼다. 우리나라 순대타운, 곱창골목처럼 한 가지 음식으로 여러 가게들이 모여 있는 모양이었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커다란 샌드위치를 들고 먹고 있었다. 여기서도 나름 원조격에 해당하는 집이 있었는데 1970년부터 이곳에서 이 샌드위치를 팔았다고 한다.


 토르타 로카 (Torta loca), 직역하면 미친 샌드위치이다. 왜 미친 샌드위치일까란 궁금증은 그 비주얼을 보는 순간 사라진다. 그야말로 비주얼이 미쳤다. 집집마다 내용물이 많아 뚜껑을 제대로 닫을 생각조차 하지도 않는, 거대한 샌드위치들을 철판 위에 가득 올려두고 있었다. 푸짐한 것도 좋은데, 이왕이면 야채를 조금 예쁘게 얹었으면 좋았을걸이란 아쉬움이 절로 들면서도, 오히려 이게 참 멕시칸스럽다란 생각이 들었다. 예쁜 비주얼보단 그냥 맛있으면 됐지하며 무심하게 토마토 하나 더 얹어주는 그런 멕시칸 인심이 느껴진달까. 

토르타 로카 

토르타 로카는 과달라하라 지역의 비로테(Birote) 빵으로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비로테는 짭짤한 맛과 바삭한 질감을 가지고 있는데 바게트와 맛이 비슷한 편이다. 이 빵을 베이스로, 고기와 각종 야채, 소스를 정말 말 그대로 아낌없이 때려 넣은 샌드위치이다. 무엇보다 시선을 강탈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크기이다. 기본 사이즈가 빅맥 3개를 나란히 이어 붙인 수준이다. 샌드위치를 주문하면 이 거대한 샌드위치를 반으로 잘라 주는데, 대부분 두 명이서 각각 먹어도 배가 부른 수준으로 양이 많다. 사실상 기본 2인 샌드위치인 셈이다.  


아쉽게도 1/2 사이즈로 판매하진 않아서 혼자서 이 샌드위치를 주문해야 했다. 가격은 한화로 약 5천 원 조금 안 되는 수준이었다. 용량만 보며 햄버거 3개는 합친 수준이니 상당히 혜자스러운 구성이다. 고기에 수많은 야채들, 살사 소스를 아낌없이 넣고 빵 위엔 마요네즈 베이스 소스를 아낌없이 뿌려서 준다. 맛은 사실 예측 가능한 수준이지만, 한 입 먹을 때마다 입안에 내용물이 가득 차 만족도가 높았다. 처음엔 "이걸 혼자 어떻게 먹지, 포장해 갈까" 고민했던 나는 어느 순간 나머지 1/2개도 집어 입에 넣었다. 오늘 첫 끼인데 저녁을 먹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샌드위치로 배가 터질 거 같이 불러본 적이 없었던 거 같은데. 누군가가 "왜 저녁 안 먹어?" 물어본다면 "오늘 과식했어. 샌드위치 먹었거든"하면,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물론 어떤 샌드위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또 다른 시장 맛집 발견 

저녁 먹을 수 있을까란 고민은 기우에 그쳤다. 멕시코에서 지내며 위가 늘어난 것인지, 오늘 많이 걸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약 5시간 정도 지나니 나도 모르게 간단하게 때울 저녁거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엔 또 다른 시장이었는데, 여긴 규모는 작고 먹거리 위주로 판매하는 동네 시장이었다. 마침 초저녁때라서 사람들이 상당히 꾸역꾸역 밀려들어오고 있었는데, 대부분 시장 먹거리 앞에 사람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Mercado Corona 

타코부터 샌드위치, 국물 요리 등 다양한 음식들이 있었는데 가격들은 저렴한 편이었다. 뭐 먹을까 고민을 하며 줄을 섰다가 마음을 바꿔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반복, 그러다가 그냥 줄이 가장 긴 곳에 섰다. 60년 넘게 자리를 지킨 이 식당은 다른 곳보다 유독 가족단위 손님들이 많았다. 오랜 역사만큼 3대의 추억을 아우룰 수 있는 맛집이라 그런 걸까. 


주력 메뉴는 '치킨 플라우타(Flauta de pollo)'였다. 플라우타는 또르띠야에 고기 속과 치즈를 채우고 이를 돌돌 말아 튀긴 음식으로 타코의 변형 중 하나이다. 보통 타께리아나 식당 등에서 타코와 함께 곁다리(?)처럼 판매를 많이 하는 음식인데, 이곳처럼 플라우타를 주력 메뉴로 내세운 곳은 처음이었다. 

Flauta de pollo 

5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줄은 음식 특성상 회전이 빨라 빠르게 줄어들었다. 치킨 플라우타 3개에 그린 살사와 묽은 치즈 크림소스를 잔뜩 뿌렸다. 여기에 튀긴 또르띠야 칩도 얹어준다. 치즈 크림소스는 '묽은 크림 제형'에 가까운 크림치즈 정도로 생각해 주면 좋은데 멕시코 사람들은 이 소스를 참 사랑한다. 

플라우타도 플라우타지만 이곳만의 그린 살사와 치즈 크림 조합이 상당히 훌륭했다. 느끼한 치즈 크림을 매콤하면서 개운한 맛까지 있는 그린 살사가 제대로 잡아준다고 할까. 3개 말고 더 주문할걸 후회가 들었을 정도였다. 



<방문한 시장 맛집 정보>

 

01.Torta loca (Mercado San juan de dios) 

https://maps.app.goo.gl/imF3RR9H6ku3uzT18 


02.Rosticerías Rizo (Mercado Corona)

https://maps.app.goo.gl/cmPAr4xHa6oWc5Uj8




오랜만에 다음메인&브런치 추천 아티클에 선정되었어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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