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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3시간전

가속노화한 이후에야 깨달은 것

무리한 갓생 살다가 가속노화 

암 수술 하기 전, 애용했던 병원 앞 산책로

 암 환자들은 수술 이후엔 주기적으로 걸어야 한다. 의사와 간호사 모두, 하루 최소 1시간 이상 걸어야 하기를 권장한다. 걷기 어려운 상태여도, 당장 죽을 거 같아도 지지대를 잡고서라도 걸으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이 또 언제 기능을 멈출지 모르기 때문이다. 배에는 소위, 핏물 주머니 (배액 주머니: 수술 후 몸에 고인 배액을 꺼내는 목적)가 대롱대롱 달린 상태로 수액 트레이를 끌고 암병동을 걷는다. 바깥 풍경은 차단된 채, 암병동만 빙글빙글 돌다 보면 자연스레 각 방마다 붙은 환우들의 이름과 나이에 눈길이 간다. 33세, 김OO. 


60~90대들 위주인 이 대장암 병동에서 나는 최연소에 해당했다. 그래서 나는 새로 들어온 환우들 중 나와 비슷한 또래는 없는지를 의식적으로 찾게 된다. 암병동 2주 입원하는 동안, 20대 2명, 30대 3명 정도 본 거 같다. 그들의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동질감이 느껴지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우린 왜 이토록 젊은 나이에 암을 얻은 걸까? 가속노화라도 한 것일까? 


 새롭게 깨달은 노화의 개념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노화'하면 주름도 많이 생기고, 허리도 굽고, 머리도 점점 가늘어지는 등 주로 외관상 변화를 먼저 떠올렸다. 보통 피부미용과 관련해 노화가 많이 언급된 탓이라고 생각하는데 몸이 약해지는 것을 무서워하기보단, 지금보다 덜 매력적인 외모로 변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가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래서 한창 저속노화 열풍이 있을 때 솔직히 아니꼽게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오랫동안 살고 싶을까?" 당시의 나의 삐딱한 시선은 여전히 '노화=외관상 변화'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다. 알고 보면 노화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 내부 신체기관의 건강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말이다. 


모든 생물체는 시간이 지나면 생리적으로 변화하고 기능이 저하된다. 주로 고령의 환자들이 암에 취약한 이유는, 신체 기능이 저하되면서 면역력이 약해지는 것과 주로 관련이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젊은 암환자가 매우 드물었다면, 요샌 젊은 암환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자주 볼 수 있다. 


암에 걸리고 난 이후에야, 난 저속노화 관련된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퀴노아나 통곡물 위주로 건강한 식습관을 형성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잠을 많이 자는 것. 저속노화 개념을 알린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가 등장하는 영상들의 대부분 메시지는 비슷하다. 우리가 결코 몰라서 하는 게 아닌, 지극히 상식적으로 알려진 건강한 생활 습관들. 그중에서 우리가 그 중요성을 간과하기 쉬운 게 바로 '수면'이 아닐까. 


건강한 식습관이나 운동은 누구나 하면 좋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반면, 바쁘고 하고 싶은 게 많은 현대인들에게 수면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면서, 자기 계발을 하거나 좋아하는 것에 빠지게 되는데 이게 결국은 가속노화, 즉 내 몸이 빠르게 망가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미처 의식하지 못한다. 


 잠을 갉아 만든 갓생루틴이 오히려 독이었을까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은 내가 꾸준히 영위하던 것이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바로 '수면'이었는데 나는 한때 하루 4~5시간 수면 습관을 유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수험생활에도 4당5락같은 소리를 무시하고 하루 8시간 쿨하게 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4~5시간 수면 습관이 시작됐다.


바쁜 회사 생활을 하고 퇴근하면 곧바로 운동을 하러 갔다. 저녁 운동의 장점은 하루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이라면 수면에 영향을 줄 정도로 활력 있는 정신 상태를 만들어준다는 것이었다. 물론, 운동 전에도 새벽 1시~2시에야 겨우 잠드는 올빼미형이긴 했는데 주 5일~7일 거의 운동에 집착하기 시작했을 때엔 새벽 2시~3시 돼서야 억지로 잠들곤 했다. 그 와중에 난 매일 아침 7시~7시 반에 일어나 전화중국어를 했다. 중국어 까먹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만든 루틴이었는데, 일어나는 것은 힘들지만 나름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중국어로 수다 떨다 보면 금세 활력이 생겨 곧 출근 준비로 이어지곤 했다. 그나마 오전 10시 출근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생활이긴 했다. 


난 이 생활을 난 거의 3년 넘게 지속했다. 잠은 조금 덜 잤지만, 운동을 해서 활력이 좋은 편이었다. 낮에 조는 일은 거의 없었고, 주말에 10시간씩 몰아자는 것으로 나름 수면 합의를 봤다. 회사에서 독립한 이후에야 수면 시간을 6시간 이상으로 늘릴 수 있었다.


근력 운동을 하면 잠을 많이 자야 근육도 생기고, 면역력이 강화된다고 했는데 난 그저 밥 잘 먹고 운동 잘하면 되겠지라고 안위하며 가장 중요한 '잠'을 간과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식단과 운동량에 비해 근육 생성이 왜 그렇게 더디었는지 이해가 간다. (단백질 섭취와 근력운동에 집착하던 시기가 있었다) 


어쩌면 난 당장의 자기 계발을 위해 시간을 조금 당겨 쓰다가 가속노화하는 지름길에 들어선 게 아닐까. 더 나은 나를 위해 포기했던 수면 시간들이 오히려 내 총수명을 단축하는데 기여를 했다는 것이 서글프다. 수면부족이 내가 암에 걸린 직접적인 원인은 아닐지라도, 면역력 저하엔 큰 일조를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더이상 청년들에게 잠을 포기하고 갓생을 살아가라고 강요하는 사회는 없었으면 좋겠다. 겉으론 말짱해 보이더라도, 속에선 이미 가속노화가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겉으로 보이는 활기도 미래의 에너지를 모두 다 끌어다 쓴 결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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