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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Dec 03. 2024

"이젠 암도 경험하냐“

 "저 암에 걸렸어요"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

서울 한 대학병원의 암 병동에 입원하자, 비로소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이 실감됐다. 당장 배를 째고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담당 주치의 선생님의 수술 일정이 빼곡하게 잡혀 있어, 암 병동에 들어와 수술일까지 약 4일을 대기해야 했다.


그 4일간 나는 내 지인들에게 암 소식을 전해야 하나? 어떻게 전해야 하나란 고민에 빠졌다. 카카오톡이나 연락을 능동적으로 하는 편이 아니라, 더욱 그러했다. 마치 결혼을 앞두고 모바일 청첩장을 돌려야 하는 신랑 신부가, 오랫동안 잠자고 있는 단체톡방을 어떻게 깨워야 할까 고민하는 것처럼 나 역시 이 뜬금없는 소식을 지인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고민이 됐다.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는 결혼도 아니고, 그저 병에 걸렸을 뿐인데 내가 이 소식을 톡방마다 공공연하게 알려야 할까? 괜히 유쾌하지 못한 이 소식으로 분위기만 깨는 게 아닐까. 죽는 것도 아닌데, 알려야하나? 오히려 내가 유난떠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경조사 소식을 널리 전해본 적이 없다. 조부상, 조모상을 치를 때도 직장이나 당시 함께 학교 생활을 했던 친구들에게 '나의 부재에 대한 변명' 차원으로 전달하곤 했다.


직장에 알리기 / 일로 얽혀있는 이해당사자들에게 알리기

 가족과 남자친구를 제외하고, 제일 먼저 암 소식을 전해야 하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일"로 얽혀 있는 사람들이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기 때문에, 이해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에게 "당분간 일이 어렵다"라고 먼저 알렸다. 이때에도 내가 암에 걸렸다고 구체적으로 변명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몸이 좋지 않아서 입원해야 하나 고민이 됐지만, 후자를 선택했다. 암에 걸렸다는 것은 마치 "이 계약관계를 어쩔 수 없이 끝내야 할 거 같다"라는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들 내 소셜미디어를 통해 후에 소식을 알게 되었지만)


문득, 내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더욱 난감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다수의 고령 암환자와 다르게, 젊은 암환자들은 대부분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암에 걸렸다면 직장을 그만둬야 할까? 휴직을 해야 할까? 그나마 암 초기로 진단받으면 단기간 병가 혹은 휴직 신청을 하면 되는데 행여나 암 말기라도 판정받는다면? 만약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의 항암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면? 배우자가 없는 1인 가구라면, 더더욱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순간일 것이다.



나 암 이래. 얘들아, 건강 조심하렴

나는 SNS를 통해 암 소식을 올리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내 인스타그램을 통해 접하면 서운함을 느낄 거 같은 친구들에겐 먼저 직접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동면하고 있는 카톡방의 침묵을 어떻게 깰까 고민하다 담담하게 "암에 걸렸다. 너네들도 건강 조심하자" 뉘앙스로 보냈다.


평소에 선톡을 날리는 일이 없던 나는 그렇게 잔잔한 물에 돌멩이를 던졌다. 삶이 바빠 평소 답이 느렸던 친구들마저 이번엔 칼답이다. 다들 내가 암에 걸렸다는 의외성에 놀란 눈치와 함께 심심한 위로를 전했다. 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암 가족력이 있다면 더욱 조심하고, 건강검진 등은 미루지 말고 하자! 며 나는 뜻밖의 건강검진 전도사가 되었다.


살다 살다 이젠 암도 경험하냐

대부분 지인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약간의 충격과 함께 위로, 그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느껴지는 약간의 침묵. 그중에서도 가장 신선했고, 나를 웃게 했던 반응은 "이제 암까지 경험하냐"는 거였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오지 여행에, 아찔한 액티비티, 별의별 경험을 다 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경험부자였기 때문에 종종 친구들에게 본의 아니게 걱정을 끼치곤 했는데, 그 걱정스러움을 냉소(Sacarsm)의 형태로 전달한 것이다. 블랙유머를 좋아했기 때문에, 이 반응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암에 걸렸지만, 오히려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라고 할까.


"그래, 살면서 다이내믹한 경험 해왔는데,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암까지 경험해 보다니.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물론 럭키비키 원영적 사고까진 아니지만, 암에 걸려 우울하다는 생각은 점점 가시기 시작했다. 어차피 걸릴 암이었다면 지금 걸리는 게 더 낫다. 암은 결국 체력전인 만큼, 젊을 때 걸리는 암은 비록 악성일지라도 이겨낼 가능성은 훨씬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를 통해 내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불청객처럼 다가온 암이지만, 이를 통해 나는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한 때 지겹게 들었던 켈리클락슨 노래 가사가 뇌리에서 계속 맴돌기 시작했다. "What doesn't kill you make you stronger(당신을 죽이지 못하는 것은 당신을 더 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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