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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Nov 19. 2024

역마살 가진 사람이 입원하면

주차장을 수백바퀴 돌았던 이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환자복을 입고 수액 트레이를 곁에 두고 있었다. 트레이에는 물을 포함한 금식을 해야 한다는 표시판이 붙어 있었다. 살면서 입원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상황이 낯설었다. 다른 환자들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4인실에선 ㄱ자 형태로 드리워진 커튼으로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수시로 드나들며 커튼을 제치고 환자의 상태를 점검했고, 침대마다 설치된 개인용 TV들은 낮 시간 대에는 내내 켜져 있었다. 양옆에서 들려오는 다른 TV소리에 머리가 질끈 아파왔다. 스마트폰을 보면 속이 울렁거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침대에 무력하게 누워있는 것이었다.



아직 암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대장 내시경 등을 통해 떼어낸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금방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병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조직검사 결과를 받기까지 최소 5일~1주일 이상 소요된다. 이 말은 즉슨, 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병원에서 그저 영양수액에 의존하며 끙끙 앓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시로 배가 아프고 구역감이 몰려왔지만 의사와 간호사들이 종종 진통제를 놔주는 것 말곤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상급병원으로 이동해 그에 걸맞은 치료를 받게 된다. 


새벽부터 주차장을 돌기 시작한 이유 


틈만 나면 세계 여행을 할 만큼 역마살이 가득한 내게, 병동 생활은 정신적 고문에 가까웠다. 그나마 창가 침대라면 바깥 풍경이라도 멍 때리며 바라볼 텐데, 비행기 가운데 좌석처럼 양 옆 다른 환자들 사이에 누워, 그저 ㄱ자 커튼으로 겨우 만든 이 좁은 공간에선 천장 무늬의 점 숫자를 세거나 커튼 주름 수를 세는 게 다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단순 갑갑함을 넘어서 가슴이 턱 하고 막히는 것 같은 우울감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입원당시 가방에 넣어두고 안 꺼낸 지 이틀이 지났다. 무료할 때 읽어야 지란 생각으로 들고 온 두꺼운 책은 집중을 요하는 어려운 책이었던 탓에 몇 문장 읽다가 그냥 덮어버렸다. 간헐적으로 밀려오는 복통과 구역감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음식 냄새였다. 물마저도 마실 수 없는 금식을 하는 내 입장에선 매일 아침, 점심, 저녁 다른 환자들 앞에 식사가 놓일 때마다 구역질이 날 거 같았다. 그래서 식사 시간이 되면 수액 트레이를 끌고 밖으로 향했다. 어디 산책이라도 하고 싶은데 수액 트레이를 들고 갈 수 있는 데는 지극히 제한적이었고 주변에 산책할만한 작은 공원도 없었다. 병원 앞은 주차장이었고, 주차장 밖엔 자동차가 지나가는 대로 이외에 갈만한 곳도 없다. 무엇보다 덜덜덜 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이 수액 트레이를 끌고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을 지나가는 것은 은근히 성가셨다. 보도블록이나 점자블록에 걸릴 때마다 행여나 수액이 역류할까 봐 여러 번 살펴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동반경이 제한된 상황에서 내가 바깥공기를 마시며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은 주차장이 유일했다. 참 안타까운 것은 환자들이 갑갑해서 나와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병원 건물을 따라 설치된 나무 벤치에 앉아 주차장을 조망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 주차장을 돌기 시작했다. 특히 아침 일찍 병원이 문을 열기 전, 텅텅 빈 주차장을 좋아했다. 아직 차들이 들어오지 않은 시간, 차가운 아침공기를 마시며 수액 트레이를 끌고 주차장을 계속해서 돌았다. 똑같은 동선만 하염없이 반복되다가 차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때마다 동선은 변경되었다. 약 세 시간 간격으로 밖으로 나와 주차장 도는 것을 반복했는데, 나무벤치에 쪼르르 앉아 주차장을 바라보는 환자들 앞에서 나만의 걷기 쇼가 펼친 셈이었다. 특히 낮시간 대에는 20~30명 넘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주차장을 멀뚱멀뚱 쳐다보곤 했는데 나름 그들 앞에서 쉬지 않고 계속 주차장을 걸어 다니는 내가 구경거리이지 않았을까. 매일 주차장을 돌던 내가 사라졌을 때 이들은 나의 부재를 느낄까. 그런 쓸데없는 잡념이 들곤 했다.  


여행할 땐 하루 3만~4만보를, 일상생활에서도 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1만보를 채워왔던 나는 병원에 입원하면서까지 이 1만 보 링(아이폰 내 건강 앱은 하루 목표로 지정한 운동량, 걸음수를 달성하면 '링'을 형성한다)을 꾸준히 달성했다. 주차장 걷기란 내 병동 루틴이 없었더라면, 난 이 짧은 1주일 입원을 버티는 게 더욱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혹시나 나처럼 입원과 함께 우울함의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이라면 주차장이건 어디건 걸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기분 환기가 될 뿐 아니라, 거동이 자유롭다는 것에 대해 새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1주일 고향지역의 A 종합병원에서 입원 후 조직검사 결과에 맞춰, 이후 서울 B 병원으로 이동해 약 2주 병동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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