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이 나이에 설마 아닐 거예요.
병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겠냐만은, 나는 스스로 판단하기에 '별 것도 아닌 것'으로 병원 가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간단한 질병은 그저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면 낫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고, 가벼운 감기라도 걸리면, 내성이 생길까 봐 감기약 복용은 최대한 자제하고 따뜻한 생강차를 종일 마시며 몸이 자연 치유하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현대 의학을 반대한다던가, 종교적인 신념을 가지고 거부한다 그런 것은 아니다.
동네 의원에서 "종합병원 가라"며 소견서를 써줄 때 덜컥 겁이 났다. 종합병원에 혼자 가서 입원할 자신도 없었고 살면서 응급실이란 곳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요즘 같은 상황에선 응급실로 간다 해도 입원할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는 동네 의원 선생님의 말도 걸렸다. 장이 마비가 됐을 때 일단 물과 이온음료만 마시면서 많이 움직이는 게 좋다는 말만 믿고 집에서 자가 치유를 하기로 했다.
잘 움직이던 것이 멈춰버린다면 우리는 그것에 물리적인 힘을 가해 강제로 움직이려고 시도한다. 심지어 컴퓨터가 말을 안 들으면 발로 차버리면 된다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 말이 내 몸의 장기에도 적용되는 걸까?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도 최대한 많이 움직이라고 한다. 그 말을 나는 철석같이 받아들여 4일 넘게 물과 이온음료만 마신 채, 집에 있는 소도구를 활용해 운동하고 밖에 나가서 산책을 했다. 혹시 러닝이라도 하면 큰 물리적인 힘을 받아 장이 움직이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한 10분간 숨이 차오를 정도로 뛰어보기도 했다. 물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온몸에 힘이 없어 운동을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종합병원에서 수액 맞으면서 입원하지 않아도, 장 마비에서 극복할 수 있다고 과신했다. 물론, 그렇게 노력하니 4일째 되는 날 밤, 자는데 배에서 비정상적으로 꾸루루룩 거리는 소리가 많이 나기 시작했다. 일단 배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 기뻤다. 아, 드디어 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구나.
극심한 변비로 병원 간 사람이 되면 어쩌지?
추석 연휴라 고향에 내려갔다. 그전 주 보단 증상이 조금 괜찮아져서 음식을 조금 먹을 순 있었지만, 여전히 잘 때 배가 아파 새벽에 자주 깼다. 부모님 역시 처음엔 "변비약을 먹으라"라고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히려 내가 많이 먹지 않아서 변비가 생긴 거라며, 많이 먹으라고 권했다.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꺼지지 않았다. 배에서 소리가 나니까 장 마비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배변 활동은 일주일 넘게 없는 상태였다. 배출되지 못한 노폐물이 쌓이고 쌓여 몸속에서 온갖 가스를 만들어낸다. 시간이 갈수록 속이 메스꺼워졌고, 복통의 빈도도 심해졌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지역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나의 걱정은 "혹시 그냥 극심한 변비여서, 강제 관장하는 거면 어쩌지"라는 것이었다. 배가 아파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장에 변이 가득 차있더라라는 등 뭔가 어렸을 적 커뮤니티 유머글에서만 봤을 법한 그러한 사연이 머릿속에 떠오른 건데, 그런 망신살을 뻗치는 일은 없길 속으로 빌었다.
비행기 사고를 당한 기분이었다.
소화기 내과 전문의를 만나 진단을 받고 CT와 엑스레이를 찍었다. 이후 다시 진단실로 들어갔는데, 의사는 꽤 진지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의사가 진지해지면 오히려 긴장하게 된다. 차라리 의사가 아무렇지도 않은다는 태도로 무신경하다면 큰 병이 아니라는 거니까. 하지만, 이 의사는 매사 이러한 표정이라면? 이게 심각한 표정인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일에 열중한 표정인지 알 방법이 없다. 더욱이나 첫 만남이라면.
의사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한숨을 한번 쉬었다.
"음, 일단 장 우측 아랫부분이 조금 부은 거 같네요. 일단 약 처방해 줄 테니 약 2주 정도 먹어보고, 나중에 내시경을 할지 봐야 할 거 같네요"
그의 한숨과 다르게 이어 나온 말은 생각보다 그리 큰 병은 아닌 것처럼 들렸다. 2주 동안 약만 복용하면 충분히 나을 수 있는 질환인가? 그 와중에 강제 관장 같은 것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하면서 속으로 안도했다. 진료실을 나와 간호사의 일정 안내를 받기 위해 대기했다. 한 2~3분 정도 기다렸는데, 앞의 간호사가 "OOO환자, 다시 3번 진료실로 가주세요. 선생님이 다시 한번 보자고 하시네요"라고 알려주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진료실로 들어갔다.
"사실 아까 말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환자분이 젊으셔서 일단 이야기하는 거예요. 현재 대장 쪽에 림프종이 의심되는 게 찍혔는데 말이죠"
"림프종이요? 그게 뭐죠?"
"음... 쉽게 말하면 암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네?"
"근데 아닐 가능성이 많아요. 림프종처럼 보이긴 하는데, 이 나이에 생기는 것은 상당히 확률적으로 낮아요. 저도 책에서만 봤을 정도로"
예상치도 못한 '암'이란 단어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의사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살면서 희박한 확률의 대상자가 되어본 적도 없다. 인생의 어두운 면들을 계량화해 통계치를 낼 수 있다 하더라도, 나의 대부분 수치는 중간값이나 절대다수값에 머무를 거라 확신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날 확률이 한 자릿수 혹은 그 이하라면 그 누구도 자신에게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한 자리 수의 확률에 본인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비행기를 타면서 내가 사고 피해자가 될 거란 생각을 평소에 잘 안 하는 것처럼. 비행기 사고 확률이 0.000001%도 되지 않는데, 설마 내가 그 0.000001%에 들어가게 될 거란 걸 누가 생각할까. 그런데, 실제로 그 희박한 확률로 불행의 당사자가 된다면? 불운과 불행이 쌍콤보로 마음을 짓누르며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나는 마치 비행기 사고를 당한 기분이었다.
2024년 10월 중순, 30대 초반의 나이로 대장암 3기 확정을 받았습니다. 수술 이후 항암치료를 앞두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심리적 변화, 이후 항암을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감정적인 변화를 기록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