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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Oct 29. 2024

장염이 아니라, 암이라고요?

01. 장이 마비된다는 것 

2024년 10월 중순, 30대 초반의 나이로 대장암 3기 확정을 받았습니다. 수술 이후 항암치료를 앞두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심리적 변화, 이후 항암을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감정적인 변화를 기록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씁니다. 


2024년 9월 1일에 뭐 먹었냐고 하면, 캘린더를 보지 않고 즉각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할 수 있는데, 이날 이후 나는 거의 1개월 넘게 식사 다운 식사를 하지 못한 채 거의 단식을 했기 때문이다. 


일요일이었던 이 날, 나는 오랜 대학 친구들과 함께 평화롭게 훠궈를 즐겼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는데 참을 수 없는 구역감이 몰려왔다. 두유에 데운 오트밀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는데, 결국 1시간도 지나지 않아 화장실로 가서 다 토해내야 했다. 두통과 함께 온몸에 힘이 빠졌는데, 식중독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멕시코의 한 시골마을에서 비슷한 증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식중독은 장염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먹지 않고 1~2일 푹 쉬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9월 첫 번째 월요일과 화요일을 침대에서 보냈다. 화요일 저녁 쯤되니, 구역감은 사라졌고 살짝 허기가 졌다. 죽처럼 소화하기 편한 것을 찾는데, 집에 크림수프 분말이 있었다. 죽을 사러 나가기는 귀찮았는데, 수프라면 괜찮겠지 하고 간편하게 끓여 먹고 다시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또다시 아침에 구역감이 몰려왔고 없던 복통까지 생겼다. 이 정도면 약 처방이라도 받아야겠단 마음으로 근처 내과에 방문했다. 


"혈액 염증 반응이 있네요, 장염이에요. 물이나 이온 음료만 마시고 당분간 쉬세요" 


설사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장염이란 말에 의아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환자에 따라 설사 등을 하지 않아도 구역질을 하거나 오히려 변비를 겪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차라리 설사를 하는 게 더 나을 텐데... 배 많이 아프죠?" 

의사는 대수롭지 않는다는 듯, 한 3일~4일 약 먹고 푹 쉬면 나을 거란 말을 덧붙였다. 





 장염이 이렇게 오랫동안 갈 일인가 


단순 장염이라 진단을 받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혼자 식중독일 거라 추정하면서 끙끙 앓을 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는데, 의사가 별 거 아니라는 듯, 장염이라고 말해주니 후련해진 셈이다. 


처방된 약을 먹고 집에서 계속 누워서 책도 읽고 영화 보면서 쉬니 조금 나아지는 듯싶었는데 다시 금요일이 되니 증세가 악화됐다. 물만 먹어도 토하게 됐고 복통이 극심해진 것이다. 걸을 힘이 없을 정도로 기운이 빠진 상태라 병원에 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저 하루만 더 푹 자고 일어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토요일에 눈을 떴지만 뭔가 이상했다. 구역감과 복통은 더욱 심해져 의원으로 기어갔다. 


다시 찍은 엑스레이를 본 의사는 깜짝 놀라며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 장 마비가 왔는데요? 종합병원 입원해서 수액 맞으셔야 할 거 같아요. 근데 요새 상황이 그런지라... 입원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일단 소견서 써드릴게요" 


장이 마비가 되었다는 것은 정상적으로 활동해야 할 소장과 대장 활동이 멈췄다는 것을 뜻한다. 조금 더 심각해지면 마비성 장폐색으로 발전한다. 24시간 움직여야 할 장이 마비가 됐기 때문에 배변 활동 및 가스 배출마저 되지 않는다. 


가스가 배출되지 못하니, 배가 주기적으로 부풀어 오르는데 이건 마치 누군가가 내 구불구불한 창자에 빨대를 꽂아 있는 힘껏 불어 창자가 터질 거 같은 고통이다. 물만 먹어도 구토를 하기 때문에 장 마비, 장폐색 진단을 받으면 일단 종합병원 입원해 하루종일 수액 및 영양수액을 맞으며 장의 마비가 풀릴 때까지 일단 기다려보는 게 첫 번째 단계이다. 


장염 핑계 대고 일주일간 누워만 있어서 잠시 마비됐나 보다고, 조금 더 열심히 움직이면 장 마비가 풀릴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은 큰 오산이었다. 게다가, 요새 의료 공백 문제로 입원이 쉽지 않을 거란 의사의 말에 종합 병원에 갈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주말인 데다가, 혼자 가서 기약 없이 병원에 입원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 내가 내린 최대의 실수는 나의 증상을 경증으로 지레 판단해 버렸다는 것이다. 


대장암 초기 증상으론 갑작스런 배변 활동 변화로도 나타난다. 가령, 변비가 자주 없었는데 갑자기 변비가 심하게 걸렸다던지, 이유없이 설사를 계속 한다던지. 혈변이나 흑변을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증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점 유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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